2020. 12. 3. 09:58ㆍ선교칼럼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의 교훈
조귀삼 교수(전 한세대 선교학)
성경에 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대부분 타인의 주머니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내 주머니에 채우느냐를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세속주의적 사고들은 때로는 인간관계와 비윤리적 행동을 동반하여 사람들과 동료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서구의 기부문화에 비해서 아직도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현상이다. 이러한 때에 훈훈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자가용 없어 40분 걸어와… 10억 기부”이다. 언론사가 소개한 기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82세 유휘성 씨가 고려대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소유 중에서 기부금액만 모두 64억이라고 했다.
사실 유 씨가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까닭이 있다. 자신도 역시 누군가의 도움 덕에 이만큼 살아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 씨는 어린 시절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읜 뒤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충북 진천에서 먹고살기도 막막했지만 주변에서 도와준 덕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유 씨는 “언제나 마음속엔 나눔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아왔다”며 “200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평생의 소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1970년 건설사를 창업한 유 씨는 평생 열심히 일하며 견실하게 회사를 지금껏 이끌어 왔다. 하지만 해당 업체 역시 코로나 19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보다 매출이 1000억 원가량 줄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유 씨는 “사정이 어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렵다고 기부를 멈출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큰 부를 일군 재산가지만 유 씨의 삶은 소탈하다. 3일 열렸던 기부식에도 도보 40분 거리를 걸어서 찾아갔다. 운전기사를 고용해도 될 만한 형편이지만 자가용도 없다. 2017년 자녀들이 독립한 뒤엔 2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하기도 했다. 그때 원래 살던 50평형대 아파트를 고려대에 기부한 것이다.
큰돈을“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 코로나로 지친 의료진에 써달라”,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요.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유 선생님은 자신이 기부한 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의료계가 힘든 시기에 기여하는 금액으로 쓰여 지기를 원했다. 유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소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을 보며 항상 고마움을 느껴 왔다”며 “코로나19“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지치고 힘든 상황일 텐데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을 돕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황상 이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업가라고 판단된다. 왜냐 하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에 관한 용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분의 선행은 믿음을 소유한 필자에게도 부끄러움을 주고 있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갖고 있는가? 이러한 때에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선한 대중을 코로나 환자의 전염이 극대화할 수 있는 광장으로 내 몰아 버리는 기독교계의 지도자도 있지 않는가?
언론에 의하면 유 씨가 기부한 돈은 고려대의 ‘인성기금’을 마련하는 기반이 됐다. 유 씨의 어머니와 할머니 성함에 있는 ‘인(仁)’ 자와 본인 이름의 ‘성(星)’ 자를 따와 이름을 지었다. 고려대 측은 “이번 기부금 역시 코로나 1919 극복을 위한 의학발전기금과 심혈관질환 연구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친구는 가장 어려울 때에 돕는 것이 친구다. 코로나로 인한 삶의 체계가 무너진 지금이 타인을 돕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소유의 1/1000 이라도 기부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부금이란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과는 구분된 것이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선한 사역을 하는 기관에 이름 없이 기부하는 것이다. 즉 오른손이 하는 것은 웬 손이 모를 정도의 모습이다. 이는 고급스럽고 휘황찬란한 호텔의 음식점에서 최고급 요리와 함께 현수막이 걸린 곳에서 생색내기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2020년 11월 22일 "교회션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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