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8. 11:28ㆍ선교칼럼
변혁적 리더십을 통한 선교적 삶
조귀삼 교수( 한세대 선교학)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의 시대적 진단은 작금의 현실을 리더십의 부재로 보고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계 망라한 진단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신앙인으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한 것은 참된 영적지도자 이다. 참된 지도자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줌과 아울러서 관계를 맺으며 그들로 하여금 따라오도록 설득할 수 있는 자이다.. 미국의 헨리에타 미어즈(Henrietta Mears) 여사는여사는 20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여러 분야에서 많이 배출하였다. 즉 오늘날 세계 최대의 선교 기관을 이끌다가 작고한 CCCCCC 총재인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 빌리 그래함 등이 그녀의 영적 영향력 아래 지도력을 배양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지도력과 임무도 많이 변하고 있다. 농경 시대의 사역자는 교인들의 집과 병원을 심방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유가족을 상담하며, 신생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젊은이들의 결혼 주례를 섰다. 이는 리더자가 모든 것을 주관했다는 의미 이다. 그러나 현대는 지도자가 추종자들을 움직여 목적을 성취시키는 변혁적 지도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선교 현장에서도 변혁적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역은 그 리더십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 오늘날 선교 현장에서도 영적 리더십을 계발시키지 못한다면 사역과 부흥이 침체하는 근원이 된다.
전통적 리더십은 대개 거래적 리더십 (transactional leadership) 이다. 거래적 리더십이란 지도자와 추종자 사이에 어떤 교환(exchange)이나 거래(transaction)가 일어나는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새로운 리더십의 패러다임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변혁적 리더십 (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다.이다. 변혁적 리더십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집단의 이해관계로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가 발전하는 것이다. 즉 어떤 보상 때문에 동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 높은 조직의 목적과 가치 때문에 동기가 부여되는 관계이다.
우리는 이러한 리더십을 구약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이다.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538년에 제1진이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유다로 돌아왔다(스 1:1-2:2). 수년이 넘도록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귀환자들은 결국 주전 515년에 예루살렘에 제 1차 성전을 재건하였다. 수년이 지난 후에 주전 458년에 유대인의 두 번째 귀환이 있었다. 그리고 에스라가 귀환한 지14년이 지난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귀환을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을 정돈하였다..
느헤미야는 탁월한 행정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민족에 대한 애정, 그리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회복을 향한 피나는 노력의 소유자였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무기력하고 흩어진 백성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외부의 반대와 백성 내무의 중상모략을 이겨내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을 중수한 과업 지향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 관계지향적인 리더십 요소와 변혁적 리더십 요소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느헤미야는 소명을 받은 후에 자신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되며, 누가 그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도자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는 문제점을 직시하는 방법,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 문제점을 바라보는 방법, 문제 해결을 시작하는 방법, 문제해결을 끝마치는 방법이 필요하다.
느헤미야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하게 조화시켰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 안에 맡겼을 때에 모든 문제들은 문제일 수 없게 된다.
두 번째 특징은, 느헤미야는 계획하고 기도하였다. 그에게서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 과목이었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느 1:4).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진지한 대화이다.. 참된 대화는 하나님과 내가 서로같이 이야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따라서 참된 기도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각을 취하고 그 말씀에서 얻은 내용으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진정한 기도의 힘이 생기게 된다. 느헤미야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 하였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느 1:8-9).”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것이 결국 넉 달 후에 정확히 성취되었다.. 세 번째 특징은 느헤미야는 관심을 표명하였고 용기를 보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그가 아닥 사드 다왕 앞에서 지혜롭게 모든 불합리한 요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 하급자가 상급자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자신의 개인 문제가 아닌 국가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생명에 지장이 있을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 느헤미야 당시에 일개 종으로서 왕 앞에서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한 일은 왕의 기분을 망치게 했기 때문이다. 만약 신하가 왕 앞에서 슬픔을 드러낸다면, 그의 자리는 물론 심지어는 그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웠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담대하고 슬기롭게 자신의 기도 속에서 얻은 자신의 민족적 장래와 훼파된 성전 건축을 위한 계획을 설명하였다(느(느 2:1-6).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 다음에는 분명히 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았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강인한 성품과 함께 민감하게 왕의 재가를 얻어 내었다. 정말 확고한 신념과 용기 가운데에서 무너진 성벽 건축을 위한 거보를 내딛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도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단할 때에 결단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불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웨슬리 듀웰은 “열정이 없는 기독교는 지옥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열정이 없는 지도자는 사람들을 결코 뜨겁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열정이 없는 청년부 지도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젊은이들을 불타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불타기 전에는 성도들의 심정에 호소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열정 있는 지도력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선교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위대한 선교사역자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고백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 것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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