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31. 15:11ㆍ선교학 강의
실업인을 통한 비즈니스 선교전략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들어가는 말
20세기는 선교의 세기이기도 했다. 교단에서 선교를 장려했고, 막 신학 수업을 마치고 사명감으로 충만한 신학생들과 교사, 의사와 같은 사람들은 앞 다투어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러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의 열정도 국가의 이념에 따라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주의는 물론이거니와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는 국수주의자들에게 막힐 때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이념적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한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이 실업인을 통한 비즈니스 선교이다.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다. 자본과 기술 이동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정 복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환영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 한국에 주어진 경제적인 축복을 선교전략에 연결시키고자 한다.
1. 실업인 선교의 성경적 배경
사도 바울의 사역을 조명해 보면 그의 2차 선교여행 가운데 옷감 장사 루디아와의 만남을 주시해야 한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실업인이었다. 학자들은 루디아를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주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사업가였다고 기술한다. 성경을 보면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행 16:14-15)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은 선교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일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선교헌금을 기부하는 것에서부터 지역교회를 섬기는 일, 물심양면으로 교인들을 돌보는 일 등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린도 지역에서 만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빼놓을 수 없다. 바울은 이 부부와도 함께 비즈니스를 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 달리아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2-4)
선교지에서 만난 그들은 천막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동역을 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특별히 이 구절은 초대교회 선교사역에서 비즈니스와 선교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구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성령님의 인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방향을 잡는 바울의 선교여정 가운데 있었던 두 사건은 오늘날 선교에 있어서 실업인의 역할에 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응용해 볼 수 있다.
2. 실업인 선교의 성공적 사례
비즈니스의 최대 목표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의 결과를 통해서 인류에게 기여해 줄 것이 있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칼빈은 “많이 벌어라,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많이 자선하라”라고 말했다. 필자는 최근에 출판된 데쓰나오 야마모리의 「킹덤 비즈니스」에 남아시아 피난민을 위한 비즈니스 소개된 사례를 소개하며 실업인 선교의 방향성을 잡아 나가고자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다니엘 바첼더(Daniel Batchelder) 일행은 비즈니스를 위해 남아시아 대륙에 도착했다. 그들이 남아시아의 한 나라에 방문하였을 때 길거리에는 아기를 안고 구걸하기 위해 손을 벌린 여인들이 즐비했다. 당시 남아시아는 23년간의 잔인한 무력충돌과 인권유린, 그리고 계속되는 가뭄 등으로 국민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다. 이 참혹한 현실을 목격한 다니엘 바첼 더 일행은 구호를 목적으로 그 나라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 나라에 도움을 줄 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앞의 배고픔의 해결보다는 궁극적인 경제 발전에 초점을 두고 문제 해결을 모색했다.
1) 과부 퀼팅 사업
첫째로, 이들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한 도시에만 3만 명 이상의 과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여인들은 공공장소에 혼자서는 나갈 수 없었고 학교에서 글을 배울 수 있는 처지도 아니며, 남자 의사에게는 진료를 받을 수도 없고, 남자와 동행하지 않고는 집밖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특히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50여 개에 달하는 수용소의 상황은 생필품이 매우 부족한 상황으로 추운 밤 아이들의 추위를 막아줄 이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착안한 것이 수용소의 과부들을 고용해 가족들의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이불을 만들어서 보급하는 사업이었다. 이름 하여 ‘과부 퀼팅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과부 퀼팅 사업에는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여성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불법이므로 공장을 세울 수 없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불을 판매할 판로의 개척이었다. 공장부지의 문제는 일감을 배달하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판로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수용시설에 격리된 이들에게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와 사업체, 개인 가정 등에 이불의 구매를 홍보했고, 이들이 구매한 이불을 수용소에 다시 나누어주는 기부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다니엘 바첼더 일행은 이러한 판로로 이불 한 개에 5달러의 기부금을 받고 급여와 이불을 수용소의 과부들에게 전달했다.
과부 퀼팅 사업을 통해서 여성들에게는 3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제공했고,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가정을 구하고 어린이들을 먹일 수 있었다.
2) 양계 사업
둘째로, 자립할 능력을 잃어버린 나라였기에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 양은 연간 2천3백만 톤으로 측정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빠른 시간 내에 이들에게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기에 착안한 사업이 ‘양계 사업’이었다. 달걀은 21일 만에 부화하며 닭과 달걀 모두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에서는 닭을 좋은 음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인공부화기 3대를 매입하여 사업을 진행할 가정에게 지급한 것이다. 그리고 가정은 부화된 병아리를 한 달 내지 석 달을 기르고 수정 닭과 식용 닭을 구분한 다음에 공급하게 했다. 이것은 영양의 공급은 물론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또 장기적으로도 수용소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기술이 되었다.
3) 직파 농업
셋째로,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이 지역의 농업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니엘 바첼더 일행은 이 지역에는 밀을 키우는 농법이 유용하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밀 재배 기기를 구입하고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씨앗을 공급받아 농민들에게 밀 재배기술을 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강우량이 부족한데도 농사를 거둘 수 있었고 이 사실은 나라 전체에 회복할 수 있다는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는 사건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다니엘 바첼더 일행이 일했던 지역은 정확한 지명이 기재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필자의 견해로는 여성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을 견주어 볼 때 이슬람 국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라고 판단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음 전파에 관한 기록이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다니엘 바첼더 일행의 사례는 척박한 땅에서는 무엇보다 직접적인 복음 전파보다는 비즈니스를 통한 간접 선교전략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특수 지역인 만큼 비즈니스 선교가 복음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됨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3. 실업인 선교를 위한 교회의 대책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교사는 반드시 신학대학원을 나와서 목회자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업인은 신학대학원에서 배출되지 않는다. 이는 신학생의 역할과 실업인 선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업인 선교를 위해서는 목사가 되는 전문적인 신학교육까지는 아닐지라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의 뜻은 정확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필자가 다음에 언급한 몇 가지 전략들은 이 시대의 실업인 선교를 위해서 알아 둘 하나님의 요청이라고 말하고 싶다.
1) 경제 특구의 활용 방안
모든 나라들이 경제특구를 만들어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국가의 정치적 제도, 종교적 이념, 인간 집단의 사상을 초월한 삶을 위한 몸부림이다. 그만큼 다급하게 느끼고 있는 분야가 경제적 요소이다. 따라서 국가는 문을 열고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 같은 지도자의 경제사상에 의해서 개방을 길을 걸었고, 베트남은 도이 모이(Doi Moi: 새롭게 함, 쇄신을 뜻하는 베트남어로 공산주의르 유지시키며 대외개방과 시장경제에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경제 우선 개방정책) 정책을 통해 적대국이었던 서방의 자원을 받아들였다. 또 먼 해외의 사례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북한에서도 자본의 유치를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개성공단이며 최근 남북 관계의 냉각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유지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과 협정을 맺고 나진과 선봉과 같은 지역 특구를 조성했다고도 한다.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개방화의 추세를 잘 활용하여 특구 속에 기업을 만들고 일차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이 들어가도록 노력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물론 공산체제로 무장한 그들 속에 복음이 당장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선교 자세도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실업인들을 통해서 교두보가 확보되고 나면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서서히 문을 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초대교회 이후에 선교 현장에서 쉬운 일이란 없었다. 초대교회는 로마의 철권정치와 싸워야 하였으며 카타콤의 순교정신을 가져야만 하였다. 한국에서의 복음의 착근은 어떠하였는가? 천주교 박해 시기에는 새남터의 북소리를 들어야 했고, 개신교의 토마스 선교사는 서해안 바닷물에서 순교해야만 했다. 동족상잔인 6․25전쟁에서도 기독교는 살아서 오늘날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성취될 날이 올 것이다.
2) 실업인 선교사 양성
한국교회는 전문적인 실업인 선교사를 양성할 시기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 기업가 정신은 기업가와 선교사가 지닌 기술을 통한 선교전략이다. 최근에는 직업 선교사들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활용하여 선교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필자의 지인인 호산나 치과의 구하라 원장은 평촌을 비롯한 주변의 지역에 몇 개의 치과의원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사업 일정 가운데에서도 몽골과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의료 사역을 통해 열심히 선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를 이론적으로 확립할 필요를 느껴서 신학대학원에 재학하면서 선교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 사례 또한 전문 비즈니스를 통한 의료선교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스티븐 런들(Steven L. Rundle)은 「차세대 하나님 나라 기업가」에서 실업인 선교사 육성에 관한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있다. 첫째는 선교신학, 비즈니스, 선교와 비즈니스 통합, 둘째는 타문화 선교를 위한 매개체로서 비즈니스를 활용하는 실제적 문제, 셋째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특정 비즈니스 방식과 사례연구 등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실업인 선교사로 하여금 비즈니스와 선교를 통합적으로 연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결실은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현지 실업인 선교의 제자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3) 현지 교회 지도자와의 협력
실업인 선교가 현지의 교회들과 협력해야 할 이유는 주재국의 법률 및 경제 운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세워서 운영한다든지, 종업원들을 선발하여 작업을 하게 만든다든지, 자제를 조달한다든지 하는 모든 과정이 현지의 인력과 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현지의 사정에 밝은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일을 하게 될 경우에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비겨갈 수 있다.
필자의 친구 중에 네팔에서 사역하고 있는 미국인 세 섬즈 선교사가 있다. 세섬즈 선교사 가족은 한세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영어와 신학과정을 강의하였던 교수이지만 선교 사명을 완수하고자 네팔로 향했다. 그의 선교전략은 철저히 현지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하는 사역이었다. 다양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현지에 컴퓨터 관련 학원을 세우고 교육하는 비즈니스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15명쯤 되는 현지 교회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학생들을 수급하고, 봉사자들을 조달하고, 교사들을 확보하였다. 학원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지인들과의 협력관계로 인해서 복음전도에 유용한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앞으로 현지 사역자들과 힘을 합쳐서 주변 지역에 컴퓨터 학원 비즈니스를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4) 파송교회의 실업인선교회 육성
교회 안에는 다양한 기관들이 존재한다. 특히 각종 선교회에서는 나름대로 복음전도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힘이 있게 사역할 수 있는 기관은 실업인 선교회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생각과 기도를 전략화할 수 있는 재정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실업인 선교회는 교회의 재정 부분에서도 중추적인 힘이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 오순절 운동에 크게 기여한 ‘순복음실업인연합회‘순복음실업인 연합회’(Full Gospel Business Men's Fellowship)는 1951년 데모스 샤카리 안(Demos Shakarian)이라는 부유한 낙농업자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이 연합회의 초교파적 월례 모임은 평신도와 목회자에게 교파에 좌우되지 않고 기도와 간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1980년에는 세계 27개국에 2,300여 개의 지회로 발전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쓰이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실업인 선교회를 통해서 국내외 선교 현장에 많은 재정들이 공급되고 있다. 본 교회와 지교회의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선교의 비전을 나눔과 아울러 선교를 위해서 재정을 출연하여 돕고 있다. 참고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서 해외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는 7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 실업인 선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물론이다.
나가는 말
필자는 이번 호에서 실업인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논증하였다. 우리 개인의 달란트가 주님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 것처럼 실업인 또한 자신의 비즈니스 달란트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쓰는 것이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초대교회의 옷감 장사 루디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물질이 바울 선교에 유익하게 사용된 것처럼 말이다.
세계의 선교 지형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달라지는 지형과 함께 그 장벽도 달라짐을 같이 한다. 정치적인 장벽이, 이념적인 장벽이, 종교적인 장벽이 깨지고 또 다시 둘러져진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세계의 경제적인 장벽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인 무기를 선교에 활용해야 하겠다. 선교사역을 위해서 훈련 받은 실업인은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통해서 선교의 교두보를 만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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