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9. 18:17ㆍ선교학 강의
캠퍼스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들어가는 말
어느 사회에서든지 학생은 미래의 자산이자 소중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도 학생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호에서 세계의 선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캠퍼스 사역들을 더듬어 보면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캠퍼스 선교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캠퍼스 선교의 시원
역사적으로 기독 대학생들은 부흥운동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복음운동은 종교개혁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대학가에서 기독학생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기독학생운동의 시발지는 역사적으로 볼 때 18세기의 영국의 옥스퍼드대학(The University of Oxford)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홀리클럽’(Holy Club)은 1729년에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에 의해서 태동하였다. 그리고 형님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홀리클럽을 다방면에서 도왔다. 후에 존 웨슬리는 성화론의 새로운 지평과 함께 감리교도들을 하나로 묶어 영국 교회와 세계 교회 부흥운동에 중심인물이 되었다.
또한 홀리클럽의 많은 회원들 가운데 1733년 9월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가입은 기독학생운동의 역사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사건이 되었다. 정준기 교수는 홀리클럽의 영향에 대해 “성경적 성화 이론의 정립, 영적 지도자의 양성, 성경적인 사회참여 활동, 평신도 연합 학생운동을 드러내어 영적 각성운동을 이루었다”라고 평가했다.
영국에 홀리클럽과 같은 영적인 선교단체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1817년에 결성된 일명 ‘건초더미 그룹’(The Haystack Group)이 있었다. 사무엘 밀즈(Samuel G. Mills)를 중심으로 윌리암스대학 안에서 모인 학생들은 세계선교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었다. 이후 이들은 몇 명의 멤버들과 함께 엔도버 신학교(Andover Seminary)에서 공부하는 동안 ‘선교 주제 연구회’(Society of Inquiry on the Subject of Mission)를 조직하여 더욱 활발하게 선교를 향한 결의를 다져 나갔다. 나아가 이들의 회중교회 목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노력으로 인해 1810년 6월 28일에 해외선교회(Foreign Mission Board)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선교운동이 점점 증대되어 후에 ‘자발적 학생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으로까지 연결되었다. 이 운동은 1880년대에 프린스턴대학 졸업생이었던 로버트 월더(Robert P. Wilder), 19세기 가장 위대한 전도자 무디(D. L. Moody), 당시에 코넬대학의 학생이었던 존 모트(John R. Mott)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1886년 여름에 개최된 매사추세츠의 헐몬산(Mount Hermon) 수련회였다. 무디는 이 집회에서 100명의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교사가 되겠습니다”(I purpose. God willing, to become a foreign missionary)라고 선언한 프린스턴 서약(the Princeton Pledge)을 얻어냈다. 이 운동은 1888년 뉴욕시에서 ‘해외선교를 위한 자발적인 학생운동’이라는 공식기구로 발전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캠퍼스에서의 복음운동은 지역교회에게 영향을 주어 영적 재생산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국가 교회를 깨우는 역할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학생들의 신앙운동은 국내외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역동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2. 현대 학생선교운동
현대 학생선교운동 가운데 대학생과 청소년들을 위한 단체를 언급하자면 CCC와 YFC를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두 단체의 캠퍼스 운동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국제 CCC 선교운동
1951년에 빌 브라이트(Bill Bright, 1921-2003) 박사에 의해서 창설된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국제 대학생선교회)는 대학생 복음화에 기여한 단체다. 빌 브라이트 박사는 헨리에타 C. 미어즈 박사의 신앙운동에 깊은 도전을 받았다. 그가 퓰러 신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어느 날 밤, 기도 가운데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주님께서 자신의 생활과 사역에 대한 지시를 마음의 스크린에 쭉 펼쳐 보이셔서 CCC를 창설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첫 사역은 당시에 가장 저항이 심했던 캠퍼스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에서 시작되었다. CCC의 사역이 미국에서 크게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는 Explo 72 대회를 통해서였다. 1972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이 대회가 개최되었을 때에 10만 명이 운집했고, 그 후 한국에서 Explo 74가 개최되었고, 6년 후 ’ 80 복음화 대성회, ’ 84 세계기도대성회를 열었다. 특히 Explo 90 대회를 통해서는 세계의 1,000여 도시에 동시에 복음이 선포되기도 했다. 또한 평신도 사역의 일환으로 ‘Here's Life Training Center’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CCC는 197개국에 지부를 세우고 활동하고 있다.
2) 청소년 선교기관인 YFC 선교 운동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청소년 선교회는 YFC(Youth For Christ, 십대선교회)이다. 이는 세계적인 혼란기였던 1930년대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신앙으로 일어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뜻있는 청소년 지도자들이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대규모의 청소년 전도집회를 갖기 시작한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세계대전 종전 전후의 암울한 상황이었던 1940년대에 들어 이 운동은 더욱 확대되어 세계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젊은이'(Youth For Christ)라는 기치 아래 크고 작은 집회와 정기적인 모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청소년들을 성령운동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 1944년 여름 여러 교계 지도자들에 의해 첫 모임이 개최되었다. 1945년 7월 첫 국제 YFC 대회를 열렸고 초대 국제 YFC 회장으로 토리 존슨(Tory Johnson) 박사를 선출되었다. 또한 국제 집회를 인도하고 YFC 집회와 운동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 전개되도록 힘쓸 YFC 전임 순회 전도자로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YFC 운동은 놀라운 속도로 세계에 전파되었다. YFC는 현재 세계 127개국 879개 도시(국내 19개 도시)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구원을 얻게 하고, 청소년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일조하는 등 영향력 있는 청소년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3. 한국의 캠퍼스 선교
한국의 캠퍼스 사역은 위에서 열거한 서구 선교 단체들의 유입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각각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세 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한국 CCC 선교운동
한국 CCC는 1958년 김준근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국 CCC의 착근기에는 간사들과 함께 주로 기도와 수련회를 통해서 사역을 확대해 나갔다. 최초의 대학생 수련회는 1964년 7월 25일에서 경기도 입석수양관에서 6박 7일 일정으로 658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수련회가 끝날 무렵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님을 영접하였고 모두가 감사와 찬송으로 감격해하였다. 이 해의 놀라운 결실을 계기로 한국 CCC의 전도운동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로 영광을 받으셨고 계속해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생생하게 심어가셨다.
그 다음해인 1965년에는 각 지구 혹은 도별로 분산 개최되었다. 1967년 개최된 수련회는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5박 6일 간 “어둠에서 빛을 발하라!”라는 주제로 전국에서 대학생 300명이 모였다. 이 대회의 특징은 수련회를 마친 후에도 의료봉사, 농촌봉사 등에 주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앙 수련회를 통해서 김준곤 목사는 민족복음화 운동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CCC의 학생운동은 민족복음화 운동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CCC의 역사적인 ‘민족복음화 운동’의 선언은 1971년 0시를 기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기독교방송을 통하여 선포되었다. 민족복음화 운동의 상징적인 구호인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문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교회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 주는 말이기도 했다.
한국 CCC는 Explo 74 대성회와 같은 대형 집회와 일 년에 2회씩 개최되는 수련회, 기타 지방을 순회하면서 진행된 집회들을 통해서 얻어진 자원들을 통해 요원들을 훈련시켰다. 그러한 일련의 사역들이 민족복음화 운동의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한국 CCC를 창설한 김준곤 목사는 몇 년 전에 소천했지만 그의 사위인 박성민 총재를 통해 사역이 계승되고 있다.
역사학자인 박용규는 “초교파 선교단체가 미국복음주의 운동의 발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선교단체는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의 발흥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한국 CCC의 역할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세계선교의 산파역을 1970년대 대중운동을 통해서 감당했다”라고 말했다. 필자도 그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2) 한국 YFC(Youth For Christ) 사역
YFC의 국내 사역은 해방 직후 교계와 사회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국가적 혼란으로 침체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1960년경 당시 미국에서 귀국한 김장환 목사를 포함한 여러 교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1961년 서울에서, 1962년에는 수원에서 정식으로 발족하여 1966년에는 전국 10개 지구의 대표들이 총회를 소집하여 초대회장에 김장환 목사가 선출됨을 시작으로 YFC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YFC는 청소년 범죄율이 급증하고 윤리적 부패와 도덕적 불안이 가중되는 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청소년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역하고 있다. 첫째로는 중․고등학교의 교외지도 활동을 적극 돕고, 둘째로는 청소년 선도 운동을 후원하며, 셋째로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젊은이를 인도하기 위하여 Evangelism(전도-선교), Christian Life(그리스도적 생활), Life Line(선도와 봉사활동)등 3대 활동 방향을 세우고 활동하고 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사역 전략으로 불신의 현대 청소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강조하며, 젊은이를 통한 민족 복음화를 추진한다. 그 방법으로는 YFC Rally(정기 토요집회), Campus Life Club(학교 내 클럽), Bible Class(성경연구반)이 운영되고 있다. 이상의 모임을 중심으로 건전한 음악, 미술, 체육, 영어 성서 등 정서, 윤리, 종교, 기능 활동을 살려 이 나라 청소년의 비전과 미래를 세계적 차원으로 양성시키는 구국 및 선교 운동을 하고 있다.
3) NEXTION을 통한 청소년 캠퍼스 선교
NEXTION이란 차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자는 취지 아래 임방수 목사가 설립된 단체이다. 이 단체의 임지혜 간사는 사역 현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수원의 벧엘비전교회는 9년 전 십 대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청소년 선교의 시대적 비전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교회 개척 후 얼마 되지 않을 시기여서 일꾼도 적고 환경도 열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역의 중․고등학교로 간사들을 파송하였다. 이들은 작은 예배팀을 꾸려 수원 지역의 한 중학교 음악실에서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청소년 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개교회의 이름으로 선교하는 것보다는 중립적인 선교단체를 표방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NEXTION(Next Visionary Generation)이라는 이름의 초교파 선교단체를 공식적으로 세워 청소년 선교를 본격화하게 되었고, 이후에 예배, 영상, 문화, 청소년 복지, 상담, 교육 등의 파트를 두게 되었다. 점차 각 분야의 리더들이 세워지면서 사역은 점점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NEXTION을 통한 청소년 캠퍼스 선교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약 3년간의 다양한 훈련들을 통해 학생 리더를 세웠다. 그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함께 할 친구 1-2명과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여 복음 전파를 위한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연다. 이때 한 학기당 15-20명가량의 불신 청소년들이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 한 학기 만에 두 개의 모임을 번식하게 되었다.
둘째, 기독교 학교인 경우 채플 시간을 허가받아 청소년의 취향에 맞는 열린 예배를 드렸다. 즉 10대에 맞는 찬양, 퍼포먼스, 메시지, 선물 등을 준비하여 예배를 드릴 때 많은 불신 청소년들이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복음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또한 준비된 믿음의 청소년들은 매주 만남을 통해 미션스쿨 내의 사역의 핵심팀으로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집회로 CFG(Change Your Future With God)를 실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형식에서 벗어난 새 일을 행하기 원하셨다. 찬양, 공연, 홍보, 전도 등 모든 것을 청소년 스스로 준비하는 시스템을 구성하여 수원 전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CFG를 열게 되었다. 작년에 열린 6번째 CFG는 수원의 한 공연장을 빌려 개최하게 되었는데, 수원 전 지역 캠퍼스에서 봉사자를 모집하여 홍보, 전도, 공연의 모든 과정을 직접 준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이 결과 200여 명의 불신자 청소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올해 열린 7번째 CFG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한 지역을 품고 그 지역의 청소년들을 모두 모아보자’라는 각오로 통돼지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450명의 청소년들이 모였고, 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청소년들에게 통돼지 바비큐 파티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방법이었다.
올해 수능시험일 저녁에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TEEN’S PARTY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여태껏 고생하며 공부해 온 것들이 단 하루에 평가되는 그 날, 가장 위로받아야 할 학생들이 세상이 아닌 주님 품에 있는 광경을 기대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한다.
나가는 말
필자는 오늘 캠퍼스 선교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선교 역사를 볼 때에 캠퍼스 선교는 그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선교의 동력으로서 세계 교회 속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종교가 다원화되고 학원 민주화를 부르짖는 가운데 기독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CCC와 YFC, 그리고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는 NEXTION의 사역들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교회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캠퍼스가 복음의 모판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교회와 선교단체는 상호협력 관계 속에서 파트너십의 선교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는 캠퍼스 사역자들을 훈련시켜서 파송할 수 있는 성숙한 선교 교회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바울처럼 선교에 불타는 인력을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발굴하여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에게 파송해야 하겠다.
둘째, 사역자들을 실제적으로 도와야 한다. 자금이 있는 교회는 캠퍼스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의 생활비와 활동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 성도들에게 캠퍼스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헌금하도록 하여 캠퍼스 선교사들에게 공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캠퍼스에 파송된 사역자들은 지역 교회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져야 한다.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미래의 방향까지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교회는 시대의 흐름을 직감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교회와 선교기관은 열차의 두 레일처럼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달려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 캠퍼스 사역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다. 또한 교회의 귀한 헌금과 기도는 한층 더 발전된 캠퍼스 복음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루게 될 것이다. 이로써 교회와 선교기관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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