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4. 15:31ㆍ선교학 강의
세계관 변혁의 선교
조귀삼 교수(전 한세대 선교학/ 현 웨신대 겸임)
들어가는 말
세계관이란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창문에 어떠한 색이 칠해져 있느냐에 따라서 실체가 달리 보일 수 있다. 선교학자 폴 G. 히버트(Paul G. Hiebert)에 의하면 “세계관이란 어떤 문화의 신앙과 행동 이면에 있는 실재에 대한 기본적 가정이며, 인간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세계관을 통해서 가치체계가 형성되며, 가치체계는 곧 행동양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정한 회심은 기독교 세계관이 형성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다.
선교사는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전도대상자를 만나 대화하면서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할 것이 그들의 세계관이다. 선교 지향적인 한국교회도 선교사의 파송과 함께 문화적응기간을 할애함과 아울러 세계관을 연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오늘 필자가 주장하는 세계관 변혁의 선교는 선교의 100년 대계를 위한 핵심 과제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조금은 딱딱한 주제일지라도 선교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세계관의 변혁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세계관의 정의
선교는 엄밀히 말해서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깊숙한 부분에 자리 잡은 채 사람들이 실재를 바라보는 방식인 세계관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에 의하면 “문화가 인류학자에게 한 종족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가를 추정하는 것이라면, 세계관은 만물이 한 종족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는가, 즉 현존하는 것들이 하나의 총체로서 어떠한 구도를 갖는가를 추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마이클 커니(Michael Kearney)는 “한 종족의 세계관은 그들이 실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세계관은 기본적인 가정들과 꼭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 일치된 사고방식을 제공하는 이미지들로 구성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선교학자인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는 “세계관은 사람들이 실재에 대한 인식들과 그러한 인식들에 대해 반응할 때, 그것이 기초가 되는 문화적으로 구조화된 가정들, 가치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헌신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는 문화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데 기초가 되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전제들의 구조로서, 문화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크래프트는 문화 속에서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문화적 구조의 일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세계관이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세계관은 문화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둘째, 세계관은 가정들로(심상들을 포함하는) 구성되어 있다. 셋째, 이러한 가정들은 실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기초로 이룬다.
결국 세계관이란 삶의 현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문화 속에서 어떻게 형성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세계관의 성격과 기능들
모든 문화의 세계관은 적어도 75개 이상의 공통된 요소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속에는 인간성, 자아개념, 핵가족,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주된 차이에 대한 개념, 자연, 시공간적 방향성, 출생, 죽음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는 모든 세계관이 삼각관계의 요소들과 관계되어 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삼각형은 소위 사람, 자연, 신 혹은 초자연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요소들과 아울러 세계관의 성격과 기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계관의 성격들
세계관의 성격들은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세계관의 가정들 또는 전제들은 논리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선례적 증거가 없더라도 참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한 민족의 세계관은 그 구성원들에게 실재(Reality)를 인식하고 해석하게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안경, 모델 혹은 지도를 제공한다. 셋째,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세계관에 따라서 삶과 경험들을 조직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전체적 체계로 만든다. 넷째, 서로 다른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접촉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는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비록 우리가 사람들과 문화나 세계관적 구조를 서로 분리할 수 있는 실재로써 다룰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는 논의를 통해 확실해진 것처럼 실제 삶에서는 사람들과 세계관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2) 세계관의 기능들
세계관의 첫 번째 기능은 개인적 성격의 기초가 되는 구조에 대한 것들이다. 즉 세계관은 우리가 소유한 의지를 사용하는 방법의 경향화, 감정 표현에 대한 경향화, 논리와 추론에 대한 경향화, 세계관 가정들은 또한 동기에 영향을 끼치고 동기를 경향화, 그리고 심지어 세계관은 성향들까지 경향화 한다. 세계관의 두 번째 기능은 의미 부여에 대한 경향화와 관련되어 있다. 즉 해석하기, 평가하기가 있다. 세계관의 세 번째의 기능은 사람들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반응하는 방식들과 관련되어 있다. 즉 설명하는 경향, 충성심을 서약하는 경향들, 관계를 맺는 방법, 적응하는 태도, 규칙을 규정하는 경향들, 그리고 심리를 강화하는 경향들이 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사역할 때나 국내의 전도 현장에서 전도를 할 때에 그들이 지닌 세계관의 성격과 기능들을 잘 살펴서 대화의 가교를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어서 선교지 현장에서 비기독교인들이 가진 세계관의 범주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3. 비기독교 세계관의 범주와 선교
우리가 기독교 선교를 한다고 가정할 때에 복음의 접촉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비기독교인들이 가진 세계관의 범주들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자연주의 세계관이다. 이는 무신론, 세속주의, 과학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자기중심주의 등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사실 자연주의 세계관은 일종의 깊은 비관주의, 절망, 무의미라는 결과를 낳았다. 과학은 우리를 멸망으로 위협한다. 교육은 가치를 배제한다. 소비에트 혁명과 그 이상이 낳은 모든 것은 가장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인 통치였음이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었다.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선교전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주의자들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시켜줄 독서와 연구가 필요하다. 즉 성경과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변증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메시지의 내용은 복음이 진정한 복된 소식이 되게 하는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그 뒤에 숨겨진 참된 비밀을 캐내는 것이다. 복음증거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현대인의 상태에 대한 진실한 이해와 그의 딜레마에 대한 연민을 반영해야 한다.
두 번째, 부족적 세계관이다. 이는 종종 서구의 사고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분을 초월한다. 그것은 하나이며 동시에 거룩하기도 하고 세속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제신과 영, 귀신에 집착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인간 중심적이다..
이 세계관은 자연과 초자연이 서로 심각하게 혼합되어 있다. 또한 공간과 시간이 서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혼합되어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하나의 체계로 얽혀 있다.
부족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에게 선교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사역, 흑암의 시대를 간과하시는 하나님의 참으심, 비와 계절과 음식과 축복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과 같은 주제들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대사들인 선교사는 그들이 말하는 대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 대상을 위해서 명확히 해야 한다. 참 신이 거짓 신들과 영들에 의해서 가리어질 때 선과 악과 같은 것에 대한 진정한 관점과 명령과 의무는 상실된다.
세 번째, 종교적 세계관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세계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관은 세계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무수한 원인들과 조건들의 결과로써 존재한다. 동시에 세계는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며 그 미래를 구성하도록 돕는다. 현재의 세계는 이전 원인의 결과이다. 미래의 세계는 현재 세계의 결과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인과응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선교사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완전함과 신뢰성이다. 이러한 완전함은 불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정통하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종교적 사회의 현자들로부터 다양한 종교적 이론에 대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불교도들에게 증거할 메시지의 내용은 복음이다. 즉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죄 용서와 평화를 구속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공리주의적 세계관이다. 공리적인 사회개혁가인 공자는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자녀들이 3년 동안 애곡하도록 격려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를 다한 신화적 통치자인 우(禹) 황제를 찬양하였다. 따라서 중국인들에 있어서 효 사상은 종교성을 띠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인들에게 복음 증거를 감당할 선교사는 개인과 사회적 윤리를 뛰어넘는 순전함과 선한 행위가 중요하다. 아울러 자신의 문화가 아닌 그리스도를 나타내어야 한다. 또한 성경을 진정을 아는 것뿐 아니라 종교적 사실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
비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가설을 세운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사는 비기독교 응답자들이 자기들의 고유의 세계관을 한쪽 옆에 치워놓고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나마 기독교 세계관을 채용하도록 초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선교사들은 일시적으로 응답자들이 가진 비기독교 세계관을 채용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응답자 세계관의 조명아래 그들의 메시지를 재구성함으로써 선교사들은 메시지를 상황화 할 수 있게 되어 그 메시지가 응답자들에게 의미를 지니는 방식으로 암호화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선교사들은 그들의 수신자들이 자기들을 만나러 중간까지 나오도록 초청할 수 있다. 즉 한 쪽 렌즈를 서로 교환하여 한 눈으로 바라보도록 애쓰며 말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다.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법들이 상황에 따라서 달리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전통적으로 많은 선교사들은 비교종교에 대한 연구에 착수해 왔는데 그것은 접촉점을 발견하고 종교적인 세계관들 사이에 공통된 기초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결국 선교사는 복음과 문화 사이에서 상황화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복음의 절대성을 양보하면 종교 혼합주의에 빠진다는 사실 또한 직시해야 하겠다.
4. 세계관 변화의 선교전략
세계관의 정의와 비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의 범주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세계관 변화를 시도해야 할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총체적 회복자인 그리스도를 알게 함
세계관은 삶의 실재이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진리인 복음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삶의 실재에 있어서 판단 능력을 상실하여 방향을 잃게 있다. 따라서 복음의 능력으로 인간은 회복되어야 한다.
총체적 회복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능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세계관을 분별하라」의 저자 안점식은 세 가지 부분에서 인간이 회복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존재의 회복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 자신과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과 지식들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사 11:9, 잠 9:10). 둘째, 도덕적 능력도 회복되어서 부당한 욕구들이 없어질 것이다. 성화의 삶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음과 아울러 언젠가는 영화로운 몸으로서 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고전 15:51-54). 셋째, 자연계의 회복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국 문화로 완성될 것이다(사 60:3-4).
사실 인간이 지닌 세계관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능력의 사역이 요구될 수 있다. 즉 인간의 지혜나 말솜씨가 아니고(행 17:18),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다(고전 2:2-5). 진정한 선교의 열매는 세계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는 명목적인 신자들만이 양산되어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킴으로써 혼합주의를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면 부자청년의 물질주의 세계관(막 10:17-22), 아프리카의 기독교 혼합주의, 현대 젊은이의 세속주의 세계관을 벗어 버리게 만들어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2) 예수 제자화 운동 전개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제자화의 작업을 통해서만 효과적인 사역이 될 수 있다.
제자란 예수님께 헌신하여 따르는 사람이며, 순종하는 종이며, 배우는 학생이다. 또한 제자 훈련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다. 제자훈련이란 의식을 단순히 따르는 것이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나, 관례를 자세히 가르치는 것이나, 규정된 규칙에 순종하는 것이나, 정규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제자훈련이란 구주(Saviour) 되시고, 주님(Lord) 되시고, 선생(Teacher) 되신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님에 대해서는 의심 없는 추종(follower) 자가(follower) 되어야 하며, 주인에 대해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종의 자세가 필요하며,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행함으로 배우는 도제(apprentice)의 관계가 중요하다(눅(눅 5:27, 마 11:28-29, 고전 11:1, 히 13:7, 딤전 4:12, 빌 4:9).
선교지의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꾸기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바꾸기 위한 제자훈련의 조건(눅(눅 14:25-35)은 무엇인가?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좇는 자, 둘째는 사람에 대한 관계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를 우선순위로 두는 자, 셋째는 세상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자이다.
선교의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며(마 4:19), 둘째는 다른 사람을 제자로 재생산하게 하며(딤후 2:1-2), 마지막 세 번째는 주님과 선생 되신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는 것이다(눅(눅 6:40).
결국 세계관의 변화를 위한 일련의 과정은 제자훈련을 통해서 진리의 복음을 이성적으로 발견하고, 신앙 속에서 경험되며,, 성경공부와 함께 현장의 실제적인 체험을 지속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타 세계관의 체질을 변화시킴과 아울러 끊임없는 가르침과 말씀을 옳게 분변 하는 신앙을 지키게 한다.
또한 행동하게 함으로서 견고한 신앙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통해서 타 세계관을 변화시켜서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3) 내적 치유와 복음의 능력을 체험시킴
먼저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잡다한 쓴 뿌리들을 치료해야 한다. 인간의 자아 중심주의를 통한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분명한 깨달음을 통해서 믿음으로 은혜를 체험하며 자연적인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 즉 ‘치유’를 방해하는 쓴 뿌리, 상처(히 12:15) 등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치유되는 것은 세계관의 변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내면세계가 치유되었다면 복음의 실재적인 능력을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와 선교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이다(골 1:13). 티모시 워너는 전도를 “항상 일종의 능력 대결이 된다. 그것은 하나의 능력의 영역으로부터 다른 영역의 능력으로 옮기는 것, 즉 사단의 영역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도를 통해서 진정한 회심이 나온다. 회심이란 어두운 마귀의 왕국에서 진리의 빛의 왕국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회심은 항상 영적 능력이 관계되므로 사단의 영토를 공격하기 위한 영적 대비를 미리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세계관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문화 속에서 경험한 요소들이 하나로 묶여서 각인된 실재이다. 따라서 선교사가 비기독교 세계관을 지닌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선교의 핵심 전략인 비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달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겨자씨’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타나 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마 17:20)라고 하셨다. 이 말씀의 요지는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을 선교지에서 불어 넣으면 생명의 복음을 받는 그들의 생애는 산을 옮기고도 남는 큰 믿음으로 변혁됨으로 해석하고 싶다.
'선교학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도시 선교 (0) | 2022.10.25 |
---|---|
이슬람의 한국 유입과 선교적 대안 (0) | 2022.10.25 |
교회의 선교 교육 (1) | 2022.09.28 |
한국교회 교육 선교의 과제와 대안 (2) | 2022.09.16 |
실업인을 통한 비즈니스 선교전략 (0) | 2022.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