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5. 15:27ㆍ선교학 강의
이슬람의 한국 유입과 선교적 대안
조귀삼 교수(전 한세대 선교학, 현 웨스트민스터 신대원))
들어가는 말
초대교회 이후에 세계는 불행스럽게도 이슬람이라고 하는 특수한 밭을 가졌다. A.D. 637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 세계를 점령해 나갔고, 21세기인 현재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돌밭이 되어 버렸다(마 13:1-9). 심지어 기독교 복음의 옥토라 여겼던 한국인의 심적 토양에도 무슬림이 점진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복음을 수성함과 아울러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켜야 하는 두 영역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속담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그동안 우리의 주변적 요소로만 알았던 이슬람교 대한 이해를 넓힘과 아울러 교회의 선교적 대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마호메트와 이슬람의 발흥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Mahomet)는 A.D. 570년경에 현재의 요르단에 있는 메카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25세 때 15세 연상인 부유한 과부인 카디쟈(Khadija)와 결혼하였다. 가족으로는 11명의 부인과 2명의 첩을 두었다. 632년 62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으며 그의 이름은 ‘‘찬양받을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창시자 마호메트는 카디자와 결혼한 후 메카 북쪽의 수마일 떨어진 히라(Hira) 동굴에서 며칠씩 명상을 하였다. 40세쯤 된 어느 날 밤 영적 경험을 통해서 깊은 영적 우울, 의심, 불 확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경험이 기독교의 성령체험으로 선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많은 논쟁이 되어왔고, 대부분의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를 절대 부인하고 있다. 필자도 이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A.D. 637년 종 교화되기 시작한 이슬람 세력의 팽창은 놀라운 속도로 기독교의 요새들을 함락시켜 나갔다. 638년에는 예루살렘, 640년에는 가이사랴, 642년에는 알렉산드리아가 실함(失陷)되어 나갔다. 결국 650년경에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무슬림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서 서쪽으로 계속 전진하여 697년에는 카르타고를 점령하였다. 715년에는 스페인의 대부분이 무슬림의 수중에 들어갔다. 결국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의 투르크 손에 함락되었다. 사실 이슬람의 정복은 기독교 세계에 일대의 재앙이 되었다.
2. 이슬람의 종교적 특징
이슬람교는 기독교처럼 경전을 가지고 있는 고등 종교이며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된 집단이다. 따라서 사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은 “21세기는 문명의 충돌이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간단하게 그들이 신앙하고 있는 요소들을 밝혀 보고자 한다.
1) 신앙 경전 코란(Koran)
마호메트가 히라 동굴의 영적 체험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그의 사후 정성껏 수집하여 만든 책이 코란이다. 코란의 최종 편집은 그의 사후 12년이 지난 제3대 칼리프인 우트만(Uthman A.D. 644-650)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코란은 총 114장으로 되어 있으며, 총 6,236절이다. 코란의 내용은 첫째는 다가올 심판의 경고이다. 둘째는 선지자에 관한 긴 이야기이다. 셋째는 이슬람 공동체 생활에 관한 규정들이다. 무슬림들은 코란 자체를 타 종교 경전보다 신성한 요소가 있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군인들이 코란을 함부로 다루었다 하여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교리적인 측면에서 코란은 신약성경과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코란의 유일신 알라와 신약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사하지만 다르며, 코란의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와 충돌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절대적으로 부인한다.
2) 이슬람교의 신앙
모든 무슬림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견지해야 할 행위 규범을 제시해 놓았다. 종교적 의무는 다섯 기둥으로 요약된다. 이는 무슬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고백(Shahada)이다. 즉 “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알라의 사도이다(La ilaha illa Allah; Muhammad rasul Allah)”라는 고백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둘째, 기도(Salat)이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을 갖는다. 셋째, 자선(Zakat)이다. 즉 가난한 자, 궁핍한 자, 빚진 자, 노예, 여행자, 거지에 대한 자발적인 선물이나 여러 가지 자선 행위를 의미한다. 넷째, 금식이다. 이슬람의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Ramadan) 달을 코란이 내려준 거룩한 달이라 하여 금식한다. 다섯째, 순례(Hajj)이다. 일생동안 한 번은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모든 무슬림은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3) 지하드(성전) 사상
다섯 기둥들 이외에 또 다른 종교적 의무는 지하드(Jihad)이다. 이것은 불신자와의 전쟁에 내려지는 합법적인 소집에 모든 어른 남자들에게 지워지는 의무이다. 중동 국가가 서방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부르짖는 것이 성전(聖戰)이다. 얼마 전에 죽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같은 이슬람 지도자들은 서방 세계가 항상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무슬림들로 하여금 테러를 통해서 이슬람의 종교성을 방어하도록 촉구시키기도 하였다. 곧 지하드에서 죽은 사람은 순교자이고 낙원을 보장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4) 이슬람교 교파 이해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이슬람의 종파는 약 150개 정도의 분파가 있다. 그러나 크게 두 개의 주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통 무슬림인 수니(Sunnis) 파이며,(Sunnis)파이며, 다른 하나는 시아(Shiites) 파이다.(Shiites)파이다. 시아파는 소수로서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예멘에만 있다. 수니파는 순나(Sunnah: 모하메드의 언행)를 이상으로 삼는 이슬람교 정통파로서 이슬람 세계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3. 이슬람의 한국 유입
한국은 어디를 가나 십자가의 철탑이 뾰쪽하게 솟아 있어서 타 종교 들은 발을 붙이지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점점 무슬림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들의 유입을 세 가지 줄기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산업 인력으로 유입
1990년대부터 산업인력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슬람교의 신앙을 가진 인력들도 유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은 이슬람교 신앙이 두드러진 국가들이다. 이들이 산업 연수생이나 불법체류를 통하여 공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중소기업들은 값싼 인력을 통해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노동현장에 투입하였다. 따라서 소규모 공장 주변에는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어 자생적으로 자국의 문화와 음식,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2) 결혼 이주민들로의 정착
국제결혼은 한국 사회의 결혼관을 바꿀 만큼 크나큰 이슈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는 결혼한 열 쌍 중에서 한 쌍은 국제결혼이다. 물론 국제화와 21세기가 갖는 민족 이동을 통한 다문화인들과의 결혼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결혼이 갖는 특수성은 종교와 문화, 그리고 생활습관들이 유입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다문화인의 한국 유입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결혼 이민자들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합법적으로 한국 시민권을 소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랜 기간을 거주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3) 유학생으로 거주
한국의 교육 시장은 대학 인구의 자연적 감소로 말미암아 해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이슬람권 보다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 유학생들이 많이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슬람권에서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IT나 관광, 그리고 의료 분야에서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캠퍼스는 타 종교를 가장 손쉽게 유포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4) 스쿠크(이슬람 채권) 법을 통한 자원 유입 시도
이슬람의 한국 유입은 지금까지 설명한 인력의 유입뿐만이 아니라 스쿠크 법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한국 정부를 움직이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슬람 은행들이 오일달러 붐과 더불어 성장하면서 1990년대에 이슬람 금융이 두 자리 수의 성장을 경험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슬람의 오일달러의 자금 흐름에 대한 감시와 압박이 강해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나섰다. 기존 이자 보다도 0.3%에서 0.4%가 싼 이자들은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도 문을 두드려서 2010년 12월에 스쿠크 거래로 인한 조세 특례법이 국회 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12월 7일에 몇 명의 의원들의 반대로 스쿠크 자금 유입이 무산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중동 자금들이 싼 이자를 미끼로 유입되면 다음에 요구될 다른 요구들을 거부할 명분과 힘이 약해지는 것이 큰 문제로 작용한다. 즉 그들의 관습법을 우리가 들어주어 무슬림 사회의 한국 정착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숨은 뜻을 알아야겠다.
4. 이슬람의 한국 유입과 선교적 대응
이슬람의 한국 유입은 선교적 패턴을 바꾸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 전개를 가져왔다. 그동안 우리는 파송 선교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텃밭이 서서히 무너지는 현상을 보면서 유럽의 현상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슬람의 한국 선교전략인 ‘다와’(Da’Wah)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7년 서울의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이슬람의 세계 변화 전략’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윌리암 와그너(William Wagner) 박사는 이슬람교의 한국 유입을 경계하는 말을 하였다. 그는 이슬람교가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화 하여 아시아 이슬람화의 전초 기지를 삼는다”는 전략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시키기 위해서 이슬람 강의의 보편화, 봉사활동, 이슬람 관련 자료 번역 및 출판, 이슬람 대학 설립 등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슬람의 한국 공략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고 기독교를 방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복음화할 것인가? 필자는 몇 가지 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성화된 삶의 모범을 통하여 감동을 주는 전략
이슬람의 신앙은 체계화된 종교적 산물이다. 보편적인 종교들이 자신의 신념들을 신앙화 하여 자력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종교 생활에서 오는 내적 평안, 소망, 사죄의 확신과 성령 안에서의 능력 있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나 체계화된 종교성 때문에 바울이 고백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를 내부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참한 내적 갈등을 우리의 참된 신앙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내적 변화를 유도하는데 중요한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예를 들면 서울의 한 지역에서 운영되는 쉼터의 성과이다. 이 쉼터는 무슬림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명칭의 모임 장소를 마련하고 이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있다. 한글학교, 컴퓨터교실, 그리고 음식 나누기 등을 통해 모임이나 쉼터 행사에 참여한 무슬림과 한국인들이 자연적으로 친밀감을 갖도록 한 다음에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단 기간의 프로젝트가 아닌 오랜 기간의 나눔과 친목, 그리고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진 다음에 복음을 소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상호 신뢰의 과정 중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함이 그들을 감복시킬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세계정세의 흐름 속에서의 변화 유도의 전략
무슬림의 대부분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심지어 서방에서 말하는 문명의 이기들도 세속화라는 미명 아래 배제시키는 훈련을 받고 자랐다.
이들의 사고를 교정해 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모두 보편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지시켜야 하겠다. 그리고 발전된 문명의 이기들은 이러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결국 문명을 거부하는 사고의 틀을 교정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폐쇄적인 마음으로 모든 것을 거부하는 태도가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그들이 기존의 신앙과 삶의 체제를 서서히 바꾸어 가고 더불어 복음이 수용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한다.
3) 사이버 공간을 통한 복음 증거 전략
무슬림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적 장소에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머뭇거린다. 사실 그들은 배교자를 혹독하게 다룬다. 따라서 개종은 항상 일방적이다. 이는 이슬람교로 개종(to Islam)할 수는 있지만, 이슬람으로부터의 개종(from Islam)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기독교로의 개종을 막기 위해서 유학생이나 산업 연수생으로 가장한 이슬람교 선교사들은 국내에 조직되어 있는 무슬림 공동체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사회적 결속이 기독교 선교의 방해물이다. 따라서 사회의 결속을 해치는 체제(이슬람에 반하는 정치 체제)는 과감히 거부한다. 결국 이들을 위해서 사이버 교육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공간은 익명을 활용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내면적 동기의 상담을 통해서 삶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가정의 일, 국가의 정책에 관한 일, 문화의 다름에서 오는 불편과 같은 대화들에서 발전하여 점차 영혼의 문제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이슬람의 유입에 따른 선교전략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먼저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는 자신들이 최후의 계시를 받은 종교이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상충될 때에(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예수님의 복음서들, 마호메트의 코란) 코란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죽음을 부인한다. 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며, 우주의 주권적 힘을 가진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를 그토록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그들의 신관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고를 가진 그들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실제적으로 무슬림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해 온 어느 선교사에게서 25년 동안 한 명을 회개시켰다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척박한 돌밭과 같은 그들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접근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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