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3. 11:38ㆍ선교학 강의
탈북자 선교
조귀삼 교수(전 한세대 선교학)
들어가는 말
필자는 최근 채널 A 방송국에서 “강을 건넌 사람들”과 “마지막 국경”이라는” 다큐를 통해서 탈북과정을 담은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거지로 살고 있는 한 아이를 자유의 품으로 탈북시켜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 탈북하여 중국의 어디에선가 살고 있지만 자녀를 돌보지 않음으로 날마다 굶주리고 추위와 배 고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어린아이를 구출한 내용이다. 어린이와 함께 탈북한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밤중에 다수의 국경을 걸어서 넘는 모습은 같은 민족으로서 가슴 아픈 현실을 직감하였다.
힘들고 어렵게 남한 사회에 정착하지만 그들의 삶은 대부분 평탄하지 못하다. 심한 갈등과 남한 사회의 냉대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재 입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탈북민을 돕고 있다. 그러나 재도적인 문제보다도 더 귀중한 것은 교회가 그들을 포용하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일이다.
필자는 남북의 분단을 직시함과 아울러 탈북민들이 남한을 찾아오는 배경과 교회가 가져야 할 선교전략을 몇 가지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1. 탈북의 원인과 자아의 상실
자신이 태어나서 살던 땅을 버리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인간은 어쩌면 자신의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한 전쟁도 하는 경우가 있다. 탈북 주민들이 자신의 땅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에 몸을 던진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다. 이들이 왜 자신의 땅을 등지고 남한으로 탈출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독재왕조가 가져온 식량 위기
북한이탈주민의 가장 큰 탈북 원인은 1인 독재의 북한체제와 식량난이 대표적이다. 북한이탈주민의 탈북 이유를 시기별로 보면 1990년 초반까지 비인간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의 압력을 피해서 북한을 떠나는 정치적, 사상적 동기와 이에 따른 신변 안전상의 이유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식량난 등 경제적 동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독재 정권은 지도자의 의사결정이 모든 정책을 좌우 한다. 따라서 주변의 바른 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 비록 주민들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해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데도 해결할 방향을 찾을 길이 없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김일성, 김정일의 세습 체제로 이어지면서 심화되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담을 쌓는 정책은 급기야 식량의 위기로 나타나면서 먹을 것을 찾아서 국경을 넘는 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김정일의 죽음과 함께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게 정권이 양도되고 있다. 비록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음에도 식량 사정은 여전히 부족하며 고향을 등지고 탈북하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 남한 사회의 동경과 삶의 질 향상 추구
남북의 경제교류 및 중국의 개방경제와 사회 체제는 북한 주민들에게 많은 정보를 갖게 만들었다. 그 결과 보다 나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탈북자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최근엔 가족단위, 여성과 아동, 청소년들의 입국비율이 증가하는 특징을 보이면서 탈북이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즉 정치적 목적이나 단순히 식량난을 피하기 위한 탈북의 경우보다는 더 나은 삶의 추구와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등의 탈북 이유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사회 체제는 평양을 중심으로 지도자 그룹들이 살고 있다. 즉 자신의 출신성분이 나빠 북한 사회에서의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되거나, 식량문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가 강제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서 생긴 위험과 갈등, 부모의 사망으로 고아가 되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 범죄, 외국 유학 시기에 다른 외부 세계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북한 사회에 대한 회의감 등 다양한 탈북 이유가 있다.
가족단위의 탈북에 따라 연령층도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먼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의 가족들을 탈출시킨 경우도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직업도 아주 다양해졌다. 고위 간부, 외교관, 의사, 외화벌이 지도원, 군인, 학생, 교원, 농민, 노동자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3) 탈북 과정의 고통과 자아의 상실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제3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기간에 북한이탈주민들은 체포당할 위험, 식량과 물의 부족, 추위, 더위 등의 물리적 상황의 열악함, 신체적인 상처나 손상, 극단적으로는 죽음의 위기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 이제껏 쌓아왔던 사회적 신분과 재산 등을 포기해야 하고 가족, 친지와의 이별 또는 죽음을 경험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중국체류가 장기화 되면서 이들의 체류형태도 변화하게 되었다. 초기와는 달리 북한이탈주민은 친척이나 조선 족들 집에서 기거하는 비율보다 현지인 가정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탈북여성이 중국체류 중인 한국남성과 동거하다가 국내로 입국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되었다.
북한이탈주민이 긴 탈북 과정 끝에 남한에 처음 들어온 시점부터 정부의 조사와 보호기간을 마치고 남한의 일상생활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기로서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희망이 이루어졌다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겹치게 된다. 즉 남한사회에 대하여 점차로 더 많은 것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자아의 상실은 더욱 심화 된다.
2. 북한이탈주민 선교 현황
탈북자들에 대한 국내 선교기관들은 여러 곳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많은 기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선교를 하고 있지만 조항대 박사의 학위 논문에서 밝힌 선교단체들 가운데 세 단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민족 세계 선교원
북한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선교 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초교파 선교 단체를 꼽으라 한다면한민족 세계선교원이다. 이 단체는 1971년 김창인이 북한 선교에 헌신을 다짐하고 활동하던 중 1974년 ‘씨앗 선교회’를 발족하여 북한 선교를 시도하였다. 뜻을 같이 한 동참자들에 의해서 1977년 4월 29일 충현교회에서 북한선교 창립기념대회를 개최하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북녘 땅에 잃은 형제 복음으로 다시 찾자”라는 슬로건으로 북한 선교에 앞장을 서게 된다.
이후 1984년 ‘북한선교원’으로 1993년에는 그 명칭을 오늘날의 ‘한민족 세계선교원’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들의 북한 선교 사역은 처음에는 방송 선교와 문서선교, 그리고 중보기도 모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민족 세계선교원은 80년대초의 북한선교원으로 시작해 북한전도특공대훈련, 요일별 군단 모임, 화요철야 등을 개최하며 북한선교의 장을 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또 이를 통해 교계는 물론 온 국민에게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고, 폭발적인 부흥을 이끌어 왔다. 특히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한민족세계선교를 위하여 1984년 선교를 위한 훈련센터 건립을 위한 기도와 북한선교 전도특공대 지도자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 같은 활발한 복음선교 활동을 바탕으로 북한선교를 보다 확대하여 한민족을 통한 온 인류의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한민족을 안고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명칭도 ‘북한선교원’에서 ‘한민족세계선교원’으로 변경했다. 이후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6자회담국인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 등지에서 북한선교를 직접 감당하거나 지원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파송과 지원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의 후예들을 통한 학교, 병원, 교회, 기도원을 세워 세계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선교에 열정을 쏟아 오고 있다.
현재는 탈북자들의 자녀학교를 설립하여 실제적으로 돕는 귀한 기관이 되었다. 매년 8월 15일을 전후해 개최되는 ‘8.15한민족 세계선교대회’는 선교원에서 파송한 30여 개국의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함께 선교 전략을 나누고 있다. 매년 이 선교대회에 참석해오고 있다는 한 선교사는 “북한이탈주민과 동포들을 상대로 하는 복음 전파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세계 각지의 선교사들과 교류하고, 비전을 공유하며 동역자를 만나는 아주 좋은 대회로 매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2) 모퉁이돌 선교회
한국의 대표적인 북한 선교회 기구는 모퉁이돌 선교회 이다. 지금도 필자의 책상 앞에는 “카타콤 소식”이라는 잡지가 놓여 있다.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분은 이삭 목사 이다. 그는
1983년 아시아 지역 선교 사업을 위해 홍콩을 방문하게 되었다. 홍콩 선교회의 중국인 선교사들로부터왜 한국인을 위한 선교 사업이 한국인에 의해 실시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삭 목사에게 공산권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선교 사업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곧 이어 중국을 방문하게 된 그는 중국에 2백만 명이 넘는 한인 교포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경제지원보다 복음전도가 훨씬 더 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 보급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모퉁이돌 선교회는 1985년 성경 배달 사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던 것이 1988년 12월부터 성경 배달 사역과 더불어 지하교회 지도자 양육 사역이 함께 진행되었으며, 1990년 1월 이후에는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3박 4일에 걸쳐 ‘모퉁이돌 선교학교’를 실시하고 있다.
모퉁이돌 선교회를 통한 사역은 북한에 성경을 보내고 있으며, ‘신학교 배달 사역’, ‘선교사 배달 사역’ ‘교회배달 사역’, 그리고 ‘서진 선교 사역’이다. 이외에도 모퉁이돌 선교회는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여 “복음 풍선”을 북한의 하늘에 날려 보내고,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특수하게 제작된 전도지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3) 두리 하나 선교회
두리 하나 선교회는 1999년 10월 2일 설립된 초교파 복음주의 선교단체이다. 처음 시작은 ‘통일한국’을 꿈꾸며 북한 선교를 준비하던 동역자 25명이 조․중 국경 변방을 돌아보며 탈북자들의 고통과 조선족 동포들의 뜨거운 신앙심과 특별히 중국 변방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어린 청소년들 (일명: 꽃 제비)을 가슴이 저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시편 1:17)는 말씀에 순종하고자 기도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두리 하나 선교회의 선교 사업은 크게 국내와 국외 사역으로 나뉜다. 국내 사역은 인터넷을 통한 홍보와 정보 나눔, 선교 관심자 훈련 사역 및 지원, 소식지 발행을 통한 문서 사역, 회원의 조직과 활성화 사역, 기도 연합 사역 등이 있다. 반면 국외 현지 사역은 탈북 어린이 고아원 사역, 현지 조선족 사역자를 통한 탈북자 돌봄 사역, 국제법상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유엔 청원 운동 및 난민촌 건설사역, 거점 확보를 위한 부대사역 등이 있다. 이들은 이러한 현지 사역을 위해 3단계로 나누어 감당하고 있다.
두리 하나 선교회는 세 단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북한 현지 사역’이다. 해외의 교회들로 하여금 북한을 돕도록 중개하는 사역이다. 두 번째는 ‘중국 내 교회 설립’이다. 세 번째 단계는 ‘사역자 훈련원’이다. 이는 통일 한국을 적극 준비하기 위해 북한 현지로 향하는 사역자 훈련원이며, 복음으로 완전히 무장된 일꾼을 길러 내고자 한다.
3. 북한이탈주민 선교 전략
북한이탈주민 선교단체의 시작은 이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 선교단체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시작된다. 이 시기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 탈북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탈북자의 문제가 제기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1) 북한의 지하교회를 도와야 한다.
탈북자를 선교하는 일차적인 작업은 북한의 지하교회를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땅 속에서 복음을 간직하면서 살게 만들뿐만 아니라 탈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상당수의 지하교회가 있으며, 북한 당국에 의한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하교회는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혹독한 핍박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이나 투옥이나 순교나 그 모든 고통을 무릅쓰고 반세기 이상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2) 정부의 탈북자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하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탈주민에게는 하나원을 통한 교육훈련 지원 뿐 아니라 주거지원, 가족규모를 고려한 생계비 지원 등이 제공된다. 이러한 개인, 가족과 사회의 지지와 상호작용에 의해서 정착이 되기 때문에 이를 통합할 수 있고 조율할 수 있는 기능을 교회가 담당해 나간다면 이들 북한이탈주민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선교의 방편이 될 것이다.
여의도순복음 교회가 운영하는 NGO 단체인 “굿 피플”은 탈북민들을 위해서 생계비 지원과 정착지원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기관인 하나원과 협력 아래 탈북자의 정서적 치료, 정착교육, 가정교육, 창업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과정은 매년 3월부터 12월 까지 10개월 과정으로 실시되며 토요일과 주일을 활용하여 교육되어 진다. 2003년도 투터 첫 졸업생이 배출 되어 치킨 프렌차이점을 열거나 세탁소를 개업하여 효과적으로 남한 사회의 정착을 돕고 있다.
3)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하는 동안에 많은 상처들을 받고 있다. 남북한이 동질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해야 하겠다.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의 냉대와 편견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허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재입북이라는 웃지못할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교회는 탈북자들을 수용하고 함께 하는 실질적 프로그램 교육을 실시하도록 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북한의 상황과 사회적 구조 그리고 문화 전방에 걸쳐서 이해하는 과정의 교육을 통해서 성도들의 수용능력을 배양해야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서 탈북과정에서 가졌던 고통과 새로운 사회에서 겪게 되는 탈북자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게 됨으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4) 탈북자를 돕고 있는 기관이나 선교회를 돕는 것이다.
교육적으로는 대안학교 같은 것들이 설립이 되면서 탈북 아동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매우 영세하여 교육적 의무를 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정착 지원에 관한 교회 목회자의 인식조사에 의하면 “목회자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경제적, 사회문화적 부적응의 어려움보다 남한 사람들로부터의 냉대로 인한 어려움은 다소 적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보이”는데 이는 목회자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목회자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면 일반교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자인 북한이탈주민의 교회에 대한 태도가 비기독교인 북한이탈주민보다 더 부정적이라면 선교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오는 말
탈북자 선교는 우리 민족이 하나라는 것을 실증하는 선교 프로그램이다. 북한이탈주민 선교는 통일 이후에 복음 안에서 남북한이 동질성을 갖게 함으로써 남북한 지역의 사회․문화적 통합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영적통합을 이룸으로써 통일선교에 이바지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선교단체들이나 교회에서 북한 선교와 아울러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단회적인 일로 끝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교회는 먼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역에 임해야 하겠다. 그들은 탈북과정에서 깊은 상처와 고통이 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만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통전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탈북자 선교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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