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의 묘(墓) 앞에서

2020. 3. 19. 11:19선교칼럼

누가의 묘() 앞에서

조귀삼(한세대 선교학 교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이다.. 누가라는 이름은 총명하다또는 빛을 주는 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자신이 두 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겸손하게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누가의 부모나 가정생활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총명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움과 교양과 웅변술에 뛰어난 철학적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바울의 언급에서 보면 누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바울의 사역을 도울 때에 의사로서 활동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누가복음 속에서 의학적인 용어가 50회 이상 나와 있음이 이를 증명해 준다.

  한국의 속담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오늘 가장 행복하게 누어있는 누가에 대해서 글을 엮어 보고자 한다. 누가의 묘는 에베소의 아카디안 거리를 들어가기 전에 위치해 있다. 아카디안 거리의 원형 극장은 24,000여석이 돌들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보존될 만큼 크고 웅장한 극장이다. 극장에서 한창 내려가다 보면 기독교 역사에 유명한 에베소 공의회(A.D 449)가 열려서 날치기 통과를 했던 장소인 마리아 교회가 있는 곳이기도 한다. 누가의 묘가 있는 에베소의 발굴은 1859-74년에 영국의 대열 박물관의 후원으로 J.T 우드에 의해서 발견된 이후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많은 유물들이 계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누가의 묘에는 지금도 많은 순례 객들이 발길을 끊지 않고 다녀가고 있다. 그곳에는 한글로 누가의 묘라고 쓰여 져 있기도 하다. 누가는 사도 바울과 함께 험산 준령을 넘으면서 사역을 같이 하였던 분이다. 왜냐하면 그가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우리(W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러한 누가의 동역은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그의 곁에서 충성 되이 사역을 감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 4장은 바울의 유언이 적혀 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 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여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 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관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 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끝까지 바울의 곁에서 선교사역을 돕던 누가는 그의 삶을 마치고 그가 복음을 증거 하던 에베소에 누워있다.. 설에 의하면 그가 소천한 후에 머리는 바디칸의 베드로 성당으로 운구되었고,, 시신은 바로 이 누가의 묘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냄비처럼 쉽게 식어 버리기 쉬운 현대의 신앙의 사조를 보았을 때에 끝까지 변치 않는 믿음을 지킨 누가의 선교정신에 필자는 한없는 감격의 마음을 담는 시간이었다.

200310교회연합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