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9. 11:16ㆍ선교칼럼
고레메(Korama)와 선교적 영성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필자는 영성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 김상복 교수는 “참된“ 영성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질적인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해 드린 유일한 분은 그리스도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닮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참된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닮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갑바도기아지역에 위치한 고레메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곳은 365개의 교회가 있다. 이들 교회들의 대부분은 은둔 수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전이다. 1704년 제릎 바레용이라는 예수회 신부가 이곳 갑바도기아 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교회들이다. 이들 대부분의 교회들은 동방 정교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즉 벽과 천정에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화를 그린 목적은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성도들이 많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고 한다. 즉 40개의 그림들 중에는 마리아와 요셉의 정혼에서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어 있기도 했다.
이러한 성화는 기독교의 교리논쟁 가운데에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성상이 기독교의 본래적 교리에 위배된다고 하여 파괴되고 훼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상 수난사를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이들 교회 중에서 바라바(Baraba) 교회는 성상파괴 기간 중에 만들어진 교회였다. 따라서 이 교회는 몇 가지 단순한 색깔의 성상 그림들만이 그려져 있기도 하였다.
고레메 교회들은 기독교 박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세속화의 길을 피해서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세속화의 잡념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묵상하며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 해 주는 교회가 오네시모의 성상이 그려진 교회이다. 이 교회는 바실리우스의 요셉에 의해서 수도하는 교회인데 잡념 방지를 위해서 식사는 한 곳에 모여서 식사를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식사 중에도 성경을 봉독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철저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며 살았다.
이들 고레메 교회가 주는 교훈은 참으로 많다. 즉 현대 교회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운동들로 몸살을 치르는 상황 가운데에서 기독교 본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선교적 영성이란 이러한 영성이 아니 다고 본다. 즉 선교란 세속적인 삶들 가운데에 들어가서 생명의 빛과 사회의 소금이 되어서 들풀처럼 생명의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이를 실행했던 분이 바울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복음을 아시아와 유럽을 복음화 시킴으로 세계 속에서 복음이 자라게 만들었다. 즉 선교적 영성이란 한곳에 머물러서 신비적 묵상을 만을 위한 사변적 영성이 아닌 들풀처럼 뻗어 나가서 흑암의 세계를 생명의 복음으로 덮어 버리는 영성이다.
2003년 9월21일 “교회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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