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9. 13:22ㆍ선교칼럼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
조귀삼(Ph.D. 한세대 교수)
필자는 지난 방학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먼저는 평생 사역으로 여기며 섬기고 있는 선교기관(세계로 선교연구원)의 여름 선교훈련 켐프를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집사람이 마닐라에서 선교사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사람이 섬기고 있는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와 함께 보냈다.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고 선교의 원리와 방법에 깊은 도전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도전을 통해서 교회연합신문의 선교 칼럼을 통해서(바탕가스의 참변, 평신도 선교사, 선교지의 애국가, 선교사의 탈진, 트라이시클과 선교지 교통) 독자들에게 몇 주 동안 발표하였다. 이제 선교지 마닐라에서의 경험을 결산하면서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가 갖는 선교의 상징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선교의 위상을 높이는 의미에서의 상징성이다. 현재의 한국선교는 세계의 선교지에 두 번째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는 우리 민족 속에 주신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판단된다. 구약의 선교를 구심력의 선교(Centripetal mission)이라고 말할때에, 이는 이스라엘의 선택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선교 방법이다.. 이러한 선택이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를 통해서 세계선교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의미는 아무리 극찬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선택받은 한국교회가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하는 길목에서 당연히 발생되는 문제는 선교사의 자녀의 교육이다. 구미 선교부에서는 일찍이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 세계의 대륙별로 선교사 자녀 학교를 세워서 후원하고, 관리하고, 특혜를 주어서 사역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는 서구에 비해서 비록 늦게 시작되었지만 세계의 유일한 한국선교사 자녀 학교로 그 소임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감사하며, 한국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하나의 획을 긋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들째는, 모국어를 지키고 유지하여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상징성이다. 선교사 자녀들은 선교지의 문화 속에 쉽게 동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된다. 문화속에 동화된다는 말은 인간의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세계관이, 그 문화가 가진 형태의 방향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만약 세계관이 서구적으로 자리잡을 때에는 피부색과 얼굴 모형은 한국인이지만 그 모든 행동들은 이미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선교의 또 다른 아픔으로 심각하게 남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미국의 뉴욕에 교환교수 자격으로 방문하여 그곳의 한인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가장 고민하고 힘든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였다. 옛 말에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말이 있다. 풀어보면 ”낙엽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는“ 뜻이다. 만약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녀가 어떻게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고 사역할 수 있겠는가?
셋째는, 전문인 선교사의 상징성이다. 한국 아카데미는 적어도 전문인 선교사의 대표적인 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명의 한국인 선교사 대부분이 교사로서, 아니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음을 보았다. 한국 교회가 아직도 전통적인 사고 속에서 전문인 사역에 대해서 인정치 않으려고 하는 경향들이 남아 있다. 이는 선교신학과 선교 방법론에 대해서 교육받지 못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필자는 마닐라에 머물면서 마닐라 한국아카데미에서 사역하는 전문인 선교사들을 가까이 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명성 그리고 부요 하게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상대화하면서 헌신하는 모습 속에서 초대교회의 바울 선교 속에 나타난 자비량 선교를 발견하였다. 얼마나 고귀한 삶인가?
필자는 이제 지면 관계상 이 글을 마치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는 한국교회는 한국선교의 상징물인 이 학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즉 학교 건물과 같은 외형적인 것을 포함하여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의 후원을 포함한 복지 문제이다. 실탄이 없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기대하며 병사를 사지로 보내는 것만큼 멍청한 지휘관이 없을 것이다. 한국 선교를 외치며 엉터리 전략을 세워서 전시 선교(window mission)를 일삼는 것을 지양하고 선교의 실제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또 하나는 그곳에서 교육받은 선교사 자녀들의 진학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최근에 한동대학에서는 선교사 자녀들에 대해서 문호를 활짝 열어 놓음으로써 교회들의 많은 기도를 받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제도적으로 더욱 확대 되어야하고, 교회들은 이를 위해서 교육부 관계자들을 적극 활용해야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선교사님들이 이 학교를 더욱 사랑하고 자녀들을 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제언한다. 이제 한국의 위상은 50년대의 수준이 아니다. 최근의 월드컵 4강은 상징적인 의미이지만 한국은 이제 세계의 중심 무대에 서있다. 한국 선교가 세계의 모든 지역 속에 흩어져서 사역하듯이, 한국의 기업은 이제 세계의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제 어디를 가던지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국적 없는 자녀로 맴도는 불행한 삶보다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함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 이 이유가 네 자녀 모두를 “마닐라 한국아카데미”에 보내고 있다. 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한국선교의 미래의 긍정성을 깊이 보게 된다.
2002년 9월 “교회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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