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교회와 기독론 논쟁

2020. 3. 20. 15:12선교칼럼

마리아 교회와 기독론 논쟁

조귀삼(한세대 선교학 교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이러한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가 바로 에베소이다. 특히 에베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의 기독론 논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에베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교회의 건물은 AD 2세기경에 설립되었다. 건물의 크기는 265×90 미터이고 세 개의 복도로 구성되어 있다. AD 4세기에 교회로 사용 되어지기 까지는 세속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소가 항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물건들을 보관하고 나르는 용도로 사용되어질법한 곳이기도 하다.

   이 교회는 기독교 교회사에 특이한 용도로 사용되어진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신성이 논의된 AD 431년 제 3 차 공의회가 열린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방문한 필자와 학생들은 당대에 열심 있었던 신학자들의 토론을 듣는 것 같은 감격스러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적을 더듬는다는 것은 감상적인 마음을 넘는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곤 한다. 바로 이러한 어두움이 마리아 교회를 통해서 있었다.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가 있기 전에 알렉산드리아의 씨릴과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 사이에는 피가 터지는 정치 싸움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씨릴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이론이 팽배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두 성품이 함께 있었지만 너무나 위대한 하나님의 성품에 인성은 가려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만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씨릴의 주장은 428년에 네스토리우스에 의해서 반박되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중에 콘스탄티노풀의 감독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어 있지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일 뿐이라고 했다. 둘의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 되었다. 그러나 교권적인 수환이 좋은 씨릴은 430년에 로마에서 회의를 갖고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두 사람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서 황제는 43167일에 에베소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가 기독교 역사에 낙인찍힌 날치기 회의였다. 황제의 호출에 의해서 알렉산드리아의 씨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해로를 통해서 에베소에 왔지만,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한 안디옥학파의 일원들은 육로를 여행하여 회의 예정일을 보름을 넘긴 채로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결국 안디옥 학파들이 도착하기 4일전에 네스토리우스는 정죄되고 감독직에서 파면은 물론 435년에는 그의 책이 모조리 정죄되었으며 그는 이집트로 추방되기에 이르른다.

   결국 451년 칼케톤 신조는 이렇게 결론 짖고 있다. “한 분이시오 동일하신 그리스도 성자, , 독생자는 두 성품으로 인식되거나 혼합되거나 변화되지 않고 또 분리되거나 분활 되지 않는다. 이 연합으로 인해 양성의 차이가 결코 제거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각 품성의 특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한 품격, 한 개체로 연합되어 있다.” 이로 보건데 결국 네스토리우스와 씨릴의 약점이 모두 보완된 그리스도의 성품이 설명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오늘의 교회들을 보면서 싸움 아닌 싸움에 너무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시간을 선교를 위해서 쓸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200311교회와 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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