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기독교 신앙

2020. 3. 20. 15:32선교칼럼

선거와 기독교 신앙

조귀삼(세계로 선교연구원)

  선거철이 되었다. 이번 12월 하순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전 때문에 매일 새로운 뉴스들이 지면과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사실 정치는 힘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合從연횡을 통해서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시류 속에서 필자는 정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지만 기독교 역사 가운데에서 정치와 신앙의 관계는 항상 밀접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오늘의 주제를 잡았다.

  기독교는 초대 성도들이 신앙의 역동성을 가지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정치와 만나게 되었다.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이 AD 313년에 있었던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이다. 비록 자신은 신자가 아니면서도 정치적인 전환점 가운데에서 기독교를 힘의 주축으로 정치화하였던 사건이었다. 동기야 어찌되었든 그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로마 전역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피해를 당한 일이 법적으로 금지되게 되었다. 따라서 네로의 박해 이후에 카타콤을 전전하면서 숨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던 시대가 지나고 기독교는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청교도 운동을 일으켜서 신대륙 미국을 기독교화 했던 땅인 영국에서의 정치와 기독교의 만남은 AD596년 어거스틴 감독의 에델버트(Ethelbert)왕과의 만남이었다. 에델버트왕의 아내인 베타(Bertha)의 신앙으로 마음이 열려있던 터라 손쉽게 어거스틴의 전도를 수용하여 크리스천이 된 후에 하루에 일만 명 이상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선교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정치와 신앙의 만남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기독교의 힘은 정치를 엎고서 신대륙을 확장해 나갔다. 스페인과 폴투칼의 기세가 등등할 때에 그들은 Vasco Dagama정책을 사용하였다. 해상 무역으로 얻어진 정치적 힘은 신의 이름으로 땅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교육하였다.

  종교개혁 가운데에서도 정치적인 힘은 대단히 유용하게 작용하였다. 루터의 개혁 가운데에서 독일의 힘이 없이 어떻게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온통 카톨릭의 세력이 둘러싸인 상항 가운데에서도 정치적인 힘이 받쳐 주었으므로 그는 개혁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외칠 수 있었고, 그 결과에 의해서 쯔빙글리와 칼빈 같은 위대한 개혁가들에게 개혁의 바통을 넘길 수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결과도 정치적인 힘이 뒷받침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개신교의 선교 현장에서도 정치적인 힘은 막강하게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즉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주의는 개신교 확장 정책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음을 보게 된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네델란드 등의 개신교 국가들의 식민지 화장 정책과 함께 수행된 포교는 가톨릭의 중세 지배 이후의 종교 세력을 재편하였다.

  지금까지 필자는 정치와 신앙과의 관계성들을 단편적이고, 역사적인 상황들 가운데에서 정리해 보았다. 물론 정치와 종교가 만났을 때에 종교적 순수 기능은 무시될 확율이 아주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종교가 가진 고유의 역동성이 상실되어 오히려 순수성을 잃어 버린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필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 예측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만약 이번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력들로 구성된 정치가가 나왔을 경우에는 정책들이 많이 달라질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유권자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대선 주자들의 공약과 참모진들이 가진 정치철학의 검증은 물론 신앙의 검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논지는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념들을 지역 의존성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한 표는 무조건 지역 성향에 따라서 행사하는 결과들을 낳았다. 이러한 결과 정치인들은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이러한 지역적 성향을 이용하기까지 하였다.

  필자는 오늘 얼마 남지 않는 대선을 두고 정치와 신앙 간의 관계들을 살펴보았다. 기도하기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순조롭게 도와주고 인정해 주는 좋은 공약들이 대선 후보자들 가운데에서 나올 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부합하는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0211교회연합신문 토요시평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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