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15:32ㆍ선교칼럼
하나님의 선택과 선교
조귀삼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구원에 있었다. 인류를 구원코자 하신 하나님의 선교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선택의 교리이다. 이 선택의 교리는 아브라함(창 12)과 이스라엘 백성(신 7:6-8)을 택하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을 두고 흔히 “축복의 통로”라고 불려지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주권적 사역이었다. 아브라함을 택할 즈음의 당시에는 참되고 의롭게 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멜기세덱이나 욥과 같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모순이 많고 우상을 섬기는 집안 출신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며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선교 계획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부르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점에서 부르셨으며 또한 이러한 협력적인 부르심을 통하여 전체 백성과 언약을 맺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에 의한 주권적 선택은 부르심과 보내심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그의 행위이심을 알 수 있다. 선교신학자 브라우가 말한 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 이라기보다는 선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직무를 수행해야 할 주체이다”라고 말함이 옳다.
하나님의 선택은 책임을 수반한다. 즉 선교의 목적을 수행시키시기 위해서 선택되었단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수령하고 보존할 사명을 부여받았다(히 1:1-3). 둘째, 이스라엘은 “구속자”가 인류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담당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으며(마 1:1, 창 49:10, 롬1:3), 셋째,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종(사 44:1-2)과 증인(사 43:10)으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편애하고 다른 열방을 배제시킨 다는 오해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속에 자신을 나타내심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열방들에게 하나님의 자기 현시(Self-disclosure)를(Self-disclosure) 나타내시기 위함이다(신 4:5-8,35). 따라서 특권이라는 개념보다는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강하게 부여받았다고 해석함이 옳은 것이다. 즉 특권계급으로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의 역할을 감당키 위해서 이다.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하나님의 선택은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과 헬라인 그리고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는 현존하는 인류의 모든 사람들 속에 동일한 은혜로 나타난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도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그 민족이 한국의 성도이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 속에는 뜨거운 선교적 열정이 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한 순교적 사랑이 있다. 세계선교를 위해서 절대를 드릴 때에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다.
2004년 4월 6일, 국민일보 “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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