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15:24ㆍ선교칼럼
카락 성과 십자군
조귀삼(한세대)
중동사태의 심각성은 항상 성전(Holy War)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다. 성전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교도들과의 대결에서 합법적으로 병사들을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이다. 종교 간의 전쟁이란 항상 살상을 수반하기 때문에 명분을 떠나서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실 성전은 이슬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부끄러운 전쟁인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은 1905년부터 1272년 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서 유럽의 기독교가 성지인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서 이슬람 세계를 정복해 나가면서 치렀던 전쟁이었다. 교황 우르반 II세는 1095년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성지 회복을 향한 메시지에서 “이것은 거룩한 사업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십자군에 참여한 자는 모든 죄가 용서받을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신심이 두터운 유럽의 영주들이 군자금을 모으고 가병을 파견하여 군대를 만들어 이슬람 세계를 정복해 나갔다.
십자군들이 주둔하면서 기독교세력의 확산을 노렸던 지역 중의 하나가 요르단에 있는 카락 성이다.. 카락 성은 구약시대의 모압 왕국의 수도였던 카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왕의 대로’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현재의 카락 성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142년 볼드윈 1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멀리 사해와 요르단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락성은 지하 5층 규모로 완공에 5년이 걸렸을 정도로 견고한 데다 지하엔 물 저장고와 병사들이 거주하던 좁은 방, 그리고 아치형 복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삼면이 좁고 깊은 협곡에 둘러싸인 해발 1000m의 가파른 산정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외부에서의 공격을 통해서 성을 쟁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카락성에 주둔지를 정한 십자군은 이슬람 전쟁영웅인 살라딘의 1년여에 걸친 끈질긴 고사작전에도 용케도 잘 버티어 내었다. 끈질긴 공격에도 난공 블락의 카락 성이 함락될 것 같지 않자 살라딘의 여동생을 카락 성 근처에 투입하게 된다. 살라딘의 여동생은 마치 거리의 여인처럼 십자군의 병사들을 유혹하여 카락성의 비밀통로를 알아내게 된다. 결국 비밀통로가 이슬람에게 넘어가자 1년여를 버티며 항전하던 십자군들도 1189년에 손쉽게 무너져 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선교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견고한 성일지라도 하나님의 종들이 사단의 세력 속에 야합해 버릴 때에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지금껏 성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두 가지의 무서운 적들 앞에 서있다. 외부적 요소는 포스트모던적인 사고들이다. 철거주의와 해체주의적 사고를 가진 세력들은 할 수만 있으면 기독교의 정통성을 부인하여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 속에 넣고 재단하려는 사고들이다.
다른 하나는 내부의 적이다. 이것은 다원주의적이며 혼합주의적 요소이다. 모든 종교들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면서 기독교의 독특성을 부인해 버리는 것들이다. 더 나아가 진리와 비진리가 구분이 없어져 혼합적 사고들이 교회와 신학대 학내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무서운 적으로부터 말씀이 절대적 진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사명이라고 판단한다.
철웅성 같은 카락성이 한 여인의 치마폭에 무너졌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할 때일수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적들을 대적해야하겠다.
2004년 10월 20일, 국민일보 “조귀삼 교수의 선교 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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