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16:01ㆍ선교칼럼
부흥성회와 오순절 신앙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길거리를 걷다 보면 “부흥성회”의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부흥이란 심령을 새롭게 하여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중요한 신앙의 요소이다. 한국교회는 어느 곳 보다도 신앙부흥회가 많은 나라라고 본다. 필자도 아주 어린 시절 교회를 통해서 은혜 받았던 사건이 부흥성회였다.. 그날 부흥성회의 포스터에는 “1500원으로 평생 잘 사는 방법”이라는 주제였다. 호기심으로 참석을 하였다. 왜냐하면 1500원은 그리 크지 않는 돈인데 평생을 잘 산다는 말레 솔깃한 기분이 들을 만도 하였다. 그날 밤 부흥 강사님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1000원에 성경을 사고, 500원에 찬송을 사서 평생 읽고 부르다 보면 평생을 잘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순진한 포스터 였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부흥회가 생각난다. 부흥회는 항상 성령 충만이 강조된다. 따라서 필자는 부흥회와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을 신앙적 경험과 함께 엮어 보고자 한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시작은 오순절 사건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오순절 운동의 진원지인 마가의 다락방은 지금도 예루살렘에 현존하고 있다. 필자는 영산신학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하면서 오순절 날 된 사건과 현존하는 오순절 운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순절 사건은 초대교회의 제자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이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오순절 전의 제자들은 비겁하고, 용기 없고, 무책임한 모습들 이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충만은 제자들을 180도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희생정신이 발현되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졌으며, 원수들 까지도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전도에의 열심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19세기 말에 서구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한국의 개신교의 선교가 시작된 이후에 한국교회의 초대의 이벤트는 역시 1907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성회 일 것이다. 사실 20세기 초에 있었던 3대 사건은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에 초석이 되었다. 즉 1903년 원산 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성회, 1909년 100만 인 구령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오늘날 세계적인 교회로 도약한 일대 전환 사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성회의 100주년 기념을 위해서 남한의 모든 교회는 물론 북한 교회까지 회개와 선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실 성령의 현재 사역에 대해서 그동안 무시로 일관하던 많은 한국교회들이 늦게나마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의 눈물을 뿌리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일회적인 사건이나 이슈로 끝나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신앙적 표상이 정립되었다면 우리 한세대의 할 일은 자명해진다.. 한세대는 오중복음과 3중 축복의 복음의 신앙을 기초로 설립된 대학교이다.. 그리고 이들 복음 가운데에서 가장 크게 나타내야 할 일이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님은 인격체 이시다. 지적이고, 의지적이고, 감정적이신 분이시다. 그러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함께 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잘 수용하여 토착화 시켰던 영산 조용기 목사님의 한세대 신학부를 주목하고 있다. 한세대를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기회를 한국을 넘어서 세계로 나아가는 비상(飛上)의 기회로 만들어야 하겠다.
또한 성령님은 역동적인 힘이시다. 이는 한곳에 정체되어 사 석화된 힘이 아닌 세계의 모든 구석구석에 활동하시는 힘이란 뜻이다. 오순절의 역동적 성령님의 힘이란 선교적 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세상에 짝을 지어서 보내면서 성령을 통해서 증거 하도록 하셨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갈 때에 제2의 1907년의 평양대부흥회 사건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7월 4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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