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16:08ㆍ선교칼럼
왕들의 계곡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이집트 남부 룩소를 여행하다 보면 “왕들의 계곡”이라는 장소가 있다. 테베 뒤쪽 산속에는 수많은 계곡들이 있다. 이곳은 토오트모시스1세 파라오의 결심에 의해서 장례식 신전과 무덤을 분리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왕들의 무덤은 현재까지 70기 이상이 발굴 중에 있다. 필자는 이곳을 이번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두 번째 방문하였다.
이집트를 여행하는 목적은 인간의 종교성이 얼마나 삶의 깊은 영역에 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인간은 신이 되 보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높은가를 측정하는 도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집트야 말로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집트는 다종교의 소굴이다. 태양을 숭배한 “아몬신”을 인생의 아버지라고 불렀고, 왕가가 바뀔 때마다 섬기는 신들도 제사장들에 의해서 달리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에는 성스러운 동식물들을 들 수 있다. 태양을 포함한 자연적인 요소들을 벗어나 동식물들을 의인화하면서 신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하토르 여신은 이집트의 무화과 나무 에서 살았고, 처녀가 아이를 낳은 네이트 여신은 교차시킨 두 화살을 방패의 형태로 들고 있다. 동물들이 신이 되는 경우는 호루스는 매의 형상을 하고, 토오트는 따오기, 바스테트는 고양이, 크놈은 숫양 형상을 하고 있다.
이집트의 주요 신앙 가운데 하나는 영원의 불멸이 있다. 피라밋, 마스터베 그리고 무덤들은 죽은 영혼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 놓았다. “카”라는 말은 우주의 영을 의미하고, 육체의 죽음 이후에 영혼은 미라를 휘감는다. 수많은 프레스크화들은 영혼의 불멸을 나타내고 있고, 다른 종교적인 장면들은 파라오들이 살고 있던 돌로 된 집에서 찾아낸다. 장례신전과 무덤들은 영원한 인생을 말하는 내세에 고인의 생존을 그린 장면들을 상징하고 있고 “영원의 집들”이라고 불리워 왔다.
이집트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미라의 발전이다.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기술은 원래는 신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영혼이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과 호루스에게 다시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라의 형성 과정은 역청이나 몰약 그리고 역청의 혼합물을 시체의 조합에 썩어서 사용하였다.
필자는 지금껏 이집트의 룩소를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과 종교성 그리고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집트를 여행하며 거대한 유적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보게 된다.
사실 이집트는 성경에서 말하는 애굽으로서 요셉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거주지가 되었고 모세에 의해서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던 곳이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 1:6-8). 모세의 시대에 왕으로 애굽을 다스렸던 사람은 애굽의 18대 왕조의 세 번째 와인 투트모스 1세(BC. 1539-1514)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신들과의 영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애굽의 10대 재앙이야말로 10 가지 신들 이었으며 우상들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끔 신이 되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초월적 존재가 되어서 세상 위에서 엄청남 파워를 형성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힘을 나타내 보이기를 열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누구도 신이 될 수 없다. 하물며 전능자인 하나님의 위치에 인간은 누구도 올라갈 수 없다.
이집트 룩소를 중심으로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비록 엄청남 유적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과 행적을 남기면서 까지 신이 되어보고자 하였던 많은 능력자들도 황망한 모래산 위에 묻혀서 삶을 마감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겸허하게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삶이 진정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0년 7월 18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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