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선교사의 아버지인 죠지 그렌펠

2020. 3. 31. 16:12선교칼럼

콩고 선교사의 아버지인 죠지 그렌펠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필자는 오늘 우리 땅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콩고에서 사역했던 죠지 그렌펠의 사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렌펠은 1849년 영국의 콘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가족들의 신앙과는 달리 침례교회에 다니면서 영적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십 대 때에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탐험에 대한 책은 그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젊은 시절 평신도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도 선교사역을 위해서 브리스톨에 있는 침례교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8741125세의 나이로 그렌펠은 침례교 선교회에 가입하고 카메룬으로 떠나게 되었다. 카메룬에서 사역 훈련 중에 1876년에는 잠시 귀국하여 호크스 양과 결혼을 하고 아프리카로 돌아갔지만 1년이 못되어 부인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유색인과 재혼을 하여 사역을 계속하였다.

  케메룬에서의 3년 동안의 훈련을 마치고 전임 선교사인 스탠리가 999일간의 탐험을 통해서 발견했던 콩고 강 유역에서 개척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각 곳의 선교 기지를 연결하기 위해서 증기선인 평화호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그 배는 때로는 숙소의 역할도 하였다.

  죠지 그렌펠이 사역했던 콩고는 어떤 땅인가? 문헌에 의하면 오늘날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명명된 그곳은 16세기에 지금의 샤바주() 지역에 최초의 왕국인 루바 왕국이 세워졌고 서북쪽에는 작은 추장령의 연합체인 쿠바(Kuba) 왕국이 있었다. 1878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콩고강(지금의 자이르강) 유역을 탐험하고 돌아온 영국계 미국인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경을 초빙하여 그에게 콩고강 유역에 기지를 설치하도록 명령한 다음 국제콩고협회를 조직하여 이곳을 통치하였다. 1884년 미국이 이 체제를 승인한 데 이어 이듬해 개최된 베를린회의(베를린회의(콩고분지 조약 조인)에서 이곳의 지배권을 얻어낸 레오폴드 2콩고자유국으로 이름을 고친 뒤 자기의 사유영지(私有領地)로 만들었다.

  죠지 그렌펠은 벨기에가 지배할 때 즈음에 그곳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렌펠의 첫 번째 선교적 공헌은 콩고에 20여 년 동안을 침례교의 선교 감독으로 사역을 하면서 아프리카 선교기지를 효과적으로 확장시켰다. 우선 자신의 사역지인 볼 로보에 큰 영적 부흥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는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하면서 이와 같은 정보를 외부세계에 알림으로써 선교의 동원가로서 큰 역할을 감당함이다. 콩고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백인의 공동묘지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선교적 신앙에 호소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더 많은 선교사들이 오지 않는다면 콩고의 선교사역은 실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전에 쏟았던 모든 희생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다라고 콩고 선교를 호소하였다. 세 번째는 정치적인 상황을 잘 극복한 선교사 였다. 벨기에가 콩고를 식민지화하면서 선교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종교적으로 벨기에는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개신교의 선교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심지어 새로운 선교기지를 허락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길거리 고아들을 가톨릭 교회 시절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수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종교적 탄압으로부터 결연히 개신교의 신앙을 지켜 나갔다. 또한 현지 주민들을 마치 노예처럼 학대하는 지배계층에 격렬히 항의하기도 하였다. 당시 벨기에가 콩고의 위치를 자유국이라고 선포한 이름과는 달리 그 통치방법은 주민들에게 상아·고무·야자유() 등의 채취량을 강제 할당하는 약탈방식이었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주민들은 군대에 의하여 형벌을 받았다. 이러한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노력하였다.

  죠지 그렌펠은 1906년 열병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소천하기 전 콩고 땅 어느 곳을 가던지 주 예수 이름 높이여...” 찬송을 부르는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콩고민주공화국을 살펴보았다. 6300만의 인구 중에서 가톨릭이 50%이며, 그 다음이 개신교로서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곧 죠지 그렌펠의 사역의 결과라고 본다. 따라서 그를 "콩고 선교사의 아버지"라고 호칭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2010725교회와 연합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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