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과 여성지위 향상

2020. 4. 1. 15:08선교칼럼

제중원과 여성지위 향상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최근에 어느 민영방송국의 TV 프로그램인 제중원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필자는 매우 흥미 있게 시청하였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에 제중원이 개명되어 생긴 광주기독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유석란이란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조선 말기의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에 고급인력인 의사가 되고 정통적인 사회 통념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초창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여성 선교사들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오늘날의 여성의 지위향상을 가져온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오늘 필자는 최경순의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의 글을 발췌하여 한국교회의 선교 수용과 함께 달라진 여성의 지위 문제를 역어 보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의 여성 선교는 사회생활의 중심을 가정에서 사회로 불러내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 찾아온 여 선교사들은 개척정신이 특별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한국 여성들을 접근하는데 가로 놓인 어려움과 장벽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선교를 시작한 첫 10년 사이에 여성들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외부 인사와의 접촉과 바깥출입을 제한당한 엄격한 내외 법과 조상숭배의 가족제도에 묶여 핍박의 위협을 받는 부인들로서 서양 선교사들이 전하는 새 종교를 맞아들여,, 세례교인이 되기에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한국 여성들을 위해 그들은 더욱 정열적으로 선교사업에 임하였다. 그 당시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 중에 여성들이 가장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음으로써 이들을 가장 시급한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여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여성의 모습을 릴리아스 호튼의 글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 조선 여자들은 대체로 아름답지가 않다. 나는 그들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고 내 형제처럼 여기는 사람이지만, 그 생각은 털어 놓아야겠다.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 질병, 애정의 결핍, 무지 그리고 흔히 수줍음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흐릿해졌고, 얼굴은 까칠까칠해졌고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 넘은 여자에게서 아름다움 비슷한 걸 찾는 건 헛일이다. 다만 아직 무거운 걱정거리나 힘든 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나이 어린 소녀들과 젊은 색시 중에는 종종 예쁘고 깜찍한 그리고 가령 드물기는 하나 아름답기도 한 활짝 핀 우아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둘째는 여성 비하의 사회제도를 극복하였다. 오랜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남성 위주의 모순된 윤리 체제 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여성들의 삶, 이로 인해 자신의 젊음을 잃어버리고 가난과 질병, 고된 노동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선교사들은 목격했다. 그러나 여성들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일은 비단 외형적인 모습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의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여성들은 진짜 이름이 없으며 금쥐’, ‘섭섭이라고 불리 운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후 아이를 낳으면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그녀가 가졌던 이제까지의 호칭을 바꾸어 ‘oo이 엄마’라고’ 불렀다. 이런 호칭조차 아무개 딸’, ‘아무개 댁’, ‘아무개 어미’, 등으로 호칭되는 남성과의 관계의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철저한 예속 상태였다. 여성들은 또한 계급의 차이에 의해서도 차별받는다.. 미 감리교의 선교사인 헐버트는 상류계층인 양반, 중인층의 평민, 하층계급인 무당, 노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계급의 상태에 따라 여성들은 경제력에 있어서나 은둔의 정도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낮은 계급의 여성들은 거칠고,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계급의 여성들에게는 조그마한 자유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일생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간다고 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여성상은 남성의 지배구조와 이념으로 억압과 소외를 당했을 뿐 아니라 같은 여성이면서도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신분적 차이로 인해 또다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겪는 이중고를 당하고 있었다. 이런 이중적 억압 상태에 놓인 한국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남성과 여성의 대등한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를 회복시키고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우월감과 비천함을 해소시키는 빛으로 다가왔다.

  한편의 드라마인 제중원은 이런 의미에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복음이 가는 곳에는 항상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어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며, 삶의 질이 달라지며, 문화적 향유도 달라지며 심지어 정치적 지위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인간 사랑의 본체이며 여성의 지위향상의 근본이다.

201059교회와 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