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7:54ㆍ선교칼럼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다문화 아동교육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다문화 아동들이 학습 후원자인 부모의 경제적 열악성과 낮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편견들로 둘러싸인 한국 사회 속에서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 인해서 학업적응에 갈등 요인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다문화 아동들은 부모 중에 한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과의 언어와 피부색이 다를 때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동반하게 된다. 만약 성인들의 권위나 훈련이 없이 방임이나 무제한적인 경우에는 자녀들은 공격성이 발달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다문화 현상의 초입에 진입하였다. 그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배달민족이라는 용어가 말해 주듯이 타문화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나 인종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논할 때에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피부색 때문에 다양한 영역(정치, 교육, 경제)의 사회적 조건에서 편견에 찬 폄하(degradation)를 경험해 본적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민족이 견뎌온 사회적 인종주의 경험은 인종이나 민족 정체성 발달에 건강하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다문화 아동들이 자신들의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위기는 극복해야 할 과제를 남겨두게 된다.
첫째는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어 선교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교회 학교를 통한 취학 전 한글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인간이 발달하는 것은 선천적인가 아니면 후천적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다문화 아동의 발달에 있어서 개인을 둘러싸고 경험할 수 있는 내외적인 모든 환경이 중요하다. 심리적 환경, 영양이나 의료시설 혜택 등의 물리적 환경은 물론 가족, 친구, 학교, 문화 등의 사회적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다문화 아동이 한국 사회 속에서 주류 아동들과 어깨를 동등하게 학습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학습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다문화 아동들이 신앙교육 가운데에서 한국 적응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적 판단 발달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교육학자 오저는 교육의 현장에서 기독교적 앎의 지식만을 전수시키기보다는 삶 속에서 부딪히는 신앙적 다양한 현상들을 딜레마를 통하여, 부여된 종교적 갈등 상황 속에서 신앙적 해결책을 모색하여 기독교적 앎과 실천적 삶의 조화를 이루도록 교육하는 경험중심의 협동학습적인 신앙교육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기초 문해 교육인 한글과 아울러 자존감 회복을 돕는 성경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자존감은 일상의 대화나 성격 면에 있어서 개인의 사회적 행동과 역할을 결정하는 중심특성이다. 특히 아동기는 신체적·인지적 성숙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된 자아개념이 형성된다.
다문화 가정의 경우 결혼 이주로 인한 문화와 생활 적응이라는 심리적 공항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녀에게 전달될 요인이 크다. 따라서 다문화 가족 아동들이 또래 그룹,,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여 자존감이 파괴되거나 낮아져서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뿐만 아니라 다문화 아동은 일반 아동에 비해서 자신의 외모가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다고 느낄수록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질수록 자아정체감 발달이 낮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다문화 결혼으로 인한 자녀들의 낮은 자존감 회복을 위한 선교 방법론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교육과정에 중심에 자리하게 하여 하나님과 말씀이 모든 과정의 기원이자 정의, 그리고 목적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을 연구한 윤춘식은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과정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둔다’는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즉 “기독교교육은 단순히 인간의 노력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보혜사(요 14:“26)가 오셔서 가르치시고 가르침을 받은 교훈들을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약속 위에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유난히 더워져 가는 초여름 날씨를 가진 가정의 달 5월에 우리 사회의 가장 힘없는 약자들인 다문화 자녀들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가장 약한 자에게 선행을 한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주여! 를 부르짖는 우리들이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2013년 5월 19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 프리드의 트렌스 월드 라디오 (0) | 2020.04.03 |
---|---|
죤 브로저와 극동방송국 (0) | 2020.04.03 |
그리스도 예수의 축복 방송 (0) | 2020.04.03 |
전파 선교 (0) | 2020.04.03 |
제사의 선교 상황화 (0) | 202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