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7:58ㆍ선교칼럼
죤 브로저와 극동방송국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태평양 제38 기동함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죤 브로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교 명령은 극동방송국의 설립과 운영이었다. 그는 친구였던 로버트 보우만과 윌리엄 로버츠와 의기 투압하여 극동에 선교 방송국을 세울 것을 결의하였다.. 그들은 수 주간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획을 세운 후에 자금을 출자하기로 하였다. 당시 그들의 출연금은 1,000달러 였다. 이를 통해서 비영리 법인을 만들고 재단을 구성하였다. 1946년 12월에 재단이 설립되고 모금의 목표를 10만 달러로 잡았다. 처음 3개월 이내에 수십만 달러가 모금되자 그들은 굉장히 들떠있었다.
브로저는 먼저 중극의 상해로 갔다. 중국을 택한 이유는 북쪽으로는 한국과 바다 건너서는 일본까지 그리고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섬나라들에게 방송을 내어 보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수 주간의 협상에도 열매를 거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민당 정부는 모택동의 세력을 견제할 힘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을 매달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중국 프로젝트를 접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필리핀 관리들은 중국보다는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에서도 쉽지가 않았다. 2차대전 이후에 치솟는 물가와 방송국 운영에 대한 정부의 재정 불신이었다. 그러나 브로저는 재정은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믿음을 정부 관리들에게 전했다. 결국 관리들의 마음을 움직여 브로저가 신청한 10,000 와트의 출력을 넘어서 무제한의 출력을 얻어 내었다.
방송국의 대지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4만 달러의 자금 정도는 있어야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의 모금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마닐라에 사는 2명의 기독교인 실업가가 5만15만 1천 평방미터의 대지를 2만 달러에 주겠다고 하였다. 브로저는 자신이 가진 돈 50달러로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모금과 함께 방송 장비를 필리핀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식으로 극동방송국(Far East Broadcasting Company)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필리핀 정부는 1948년 4월까지 방송을 시작하라고 하는 상한선을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서 1946년 늦가을 방송국 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다. 재정과 장비 그리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더구나 필리핀 정부가 제시한 날자를 맞춘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7주를 연장하는 것에 허락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방송 3일을 앞두고 중계소에 이상이 생겼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어 설 수 없었다. 시험방송 당일 브로저는 방송 스위치를 넣으라고 말했다.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 이름 높이어’를 제창 하였다. 드디어 1948년 6월 4일 오후 6시 찬송과 함께 극동방송국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방송을 듣던 사람들의 회심에 대한 간증들이 쌓여갔다. 방송을 듣던 이발사와 손님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송을 통한 “성경통신과정”“성경 통신과정”의 모집에 12,000여 명이 등록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공산화된 소련에서는 기독교 방송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전파 방해를 해왔기 때문에 그쪽으로 송출을 중단하려고 하였지만 몇 사람의 지하 청취자 때문에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소련 땅에서 방송을 청취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보냈다. “우리는 몇 년간 극동방송을 들었습니다. 극동방송이야 말로 우리가 외부 세계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우리는 의심 받지 않기 위해서 이불을 둘러쓰고 한 번에 여러 명이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을 나누어 끼고 방송을 청취하였습니다. 전파 방해 때문에 안타까웠지만 예수님이나 성경 구절에 대한 단 한마디라도 듣게 된다면 그런 어려움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14년간을 사역한 죤 브로저는 미 합참의장의 요청으로 극동방송국을 떠나서 군대로 돌아가 고문관으로 일했다. 뒤를 이어서 사장이 된 로버트 보우만의 지도 아래 극동방송국은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 중요 지역에 방송을 하기 위해서 필리핀의 이바(Iba) 및 한국에 방송국이 세워졌다. 1979년 중국이 서방 세계에 문을 열었을 때에 10,000여 통 이상의 감사 편지가 극동방송국으로 답지하였다.
죤 브로저의 극동방송국 사역을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방송 선교는 주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초창기에 중국에 방송국을 설립했다면 공산화와 함께 공산정부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
2013년 5월 26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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