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8:06ㆍ선교칼럼
피터 데이네카와 슬라브 복음선교회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비록 선교회는 자체적으로 방송국을 갖지 않았지만 방송을 복음 전파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여겼기 때문에 다양한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전 세계의 선교 방송국을 통해서 선교한 단체가 슬라브 복음선교회이다..
슬라브 복음선교회의 창립자인 피터 데이네카는 1914년 봄 16세의 나이로 시카고 역에 내려서 미국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다른 많은 러시아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돈을 벌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미국에 왔었다. 따라서 좋은 취직자리를 얻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피터는 러시아의 황제와 정교회를 경외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미국에 와있는 러시아 인들은 황제의 농정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미국에서 생활은 하고 있지만 무신론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으며 피터 또한 무신론자로서 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피터는 빌리 선데이 집회에 참여하고 무디 기념교회를 통해서 폴 레이더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었다.
피터는 회심 이후에 무디 기념교회의 열심 있는 신자가 되었고, 기독교 사역자로서 훈련을 받기 위해서 성 바울 성격 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러시아로 되돌아가서 가족과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1918년부터 1922년 사이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들로부터 소식이 끊어지게 되었다. 피터는 시카코에서 폴 레이더와 동역을 하고 있을 때에 가족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러나 소식은 참담하였다. 3명의 형제와 2명의 자매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러시아로 속히 돌아가서 복음을 증거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친구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1925년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국으로 돌아간 피터의 눈에 비친 것은 어려운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피터를 기다리다가 그가 도착 5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친지들은 지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한 현실이 피터로 하여금 복음을 증거 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피터는 폴 레이더와 동역하면서 세계 기독교인 봉사회의 러시아인을 위한 서기직을 맡았다. 그는 그 단체에서 사역하면서 철의 장막 속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서 선교회를 조직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라브 복음 선교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후 슬라브 지역의 대부분이 철의 장막으로 가쳐 있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해서 선교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피터는 1941년 에콰도르 퀴토에서 HCJB의 단파로 소련에 방송을 내보내 호응을 받았다. 클래런스 죤스는 티터에게 방송 기회를 많이 주었다. 그리고 1953년 피터의 장녀인 루스가 남편과 함께 러시아인을 위한 HCJB의 전임 사역자가 되었다.
슬라브 복음선교회(SGA)는 성장하면서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폴 프리드가 탕헤르에 방송국을 세우자 피터는 이를 이용하여 더 많은 프로그램을 슬라브 국가들에게 보냈다. 극동 방송국과 다른 방송국에서도 적극 참여하여 1960년 대에는 소련에만 60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방송 되었다. 그중에는 성경 통신학교 프로그램을 통하여 신학교가 없는 지역에서 성경을 가르쳐 복음 사역자로 길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피터는 라디오 복음방송을 시작한 지 수년 후에 소련을 다니면서 SAG 프로그램을 통해서 복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라디오 수선공 이었던 보리스란 러시아 청년은 복음이나 기독교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라디오를 고치다가 SGA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는데 3년 후에 회심하였다고 말했다.
1980년 피터 데이네카 2세가 이끄는 SGA 는 9개의 방송국에서 50명 이상의 러시아인 설교자들이 복음 방송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성경도, 교재도, 복음 사역자도 모두 부족한 4,000만 정도의 사람들에게 단파 방송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주는 큰일을 담당하고 있다.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복음의 확산에 많은 제약을 받는 지역이었지만 피터의 사역의 꽃은 열매를 맺고 있다.
오늘은 피터 데이네카와 슬라브 복음선교회의 방송 선교를 기술하였다. 그들은 방송국 장비는 갖추지 않았으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철의 장막을 뚫고 실제적으로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을 보았다. SGA 프로그램을 통해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확산되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2013년 6월 9일 “교회와 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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