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8:13ㆍ선교칼럼
순회 목사인 항공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끝없이 펼쳐진 정글을 보면서 그곳을 어떻게 뚫고 걸어가야 하지 막막해진다.. 또한 극지방의 눈보라 위에 개썰매가 다니는 길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당황해진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처럼 끝없이 널려진 모래 언덕을 보면서 어떻게 더위와 타는 목마름을 극복해야 할지 혼돈에 빠진다.
이러한 모든 악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곧 항공 선교이다. 항공 선교의 비전을 같게 된 선교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33년 볼리비아에 가서 인디언 들을 위해 사역하였던 월터 헤론(Walter Heron)이다. 그는 1938년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기간은 아주 짧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내가 선교지 볼리비아의 정글 속에서 해산을 하던 중 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 덩이 같은 아들을 품에 앉고 5일간 정글을 여행하여 겨우 살려 내었다. 아들을 않고 정글을 헤쳐 나오던 중에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생각을 하였다. 만약 “저 비행기만 있었어도 아내가 죽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였다.
헤론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서 자신과 볼리비아 선교사들을 위해서 비행기를 준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선교회들이 빈약한 재정으로 인하여 그러한 계획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헤론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조종사 훈련을 마침과 동시에 비행기를 한 대 구입하였다. 1941년 겨우 51시간의 비행 기록만을 가지고 그는 볼리비아로 가서 항공 선교를 시작하였다.
헤론은 20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항공선교를 감당하였으나 1961년 아들 로버트가 항공 선교에 합류하였고, 1964년 볼리비아에서 정규 비행 중 추락하여 승객 3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는 매우 슬픈 기록이다.
헤론의 항공선교에 대한 열정은 많은 선교사들을 감동시켰다. 이에 항공 선교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어 1944년 캘리포니아에서 최초의 항공선교회인 기독교인 조종사 선교협회(Christian Airmen’s Missionary Fellowship)가 만들어졌다.. 이 기관은 나중에 항공선교회(Mission Aviation Fellowship)로 개칭되었다.. 군대에서 조종사로 활동했던 분들이 헌신을 하게 되어 최고 수준의 조종기술과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항공선교회의 사역은 선교사역에서 필수 불가결한 기관이 되었다. 오늘날 항공선교회는 12개국의 국가들 속에 주요 지점에 위치되어 있다. 그리고 120대의 항공기가 매년 4,500만 km를 날아다니며 22개국에서 수십 개의 선교단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항공 선교는 초기부터 짧은 활주거리나 수상에서 이륙할 수 있도록 항속거리가 짧은 경비행기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선교사나 화물을 옮기는데 부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헬리콥터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많은 선교회에서 독자적인 비행기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JAARS(정글 항공대 및 봉사대: Jungle Aviation and Radio Service)인데 WBT/SIL 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다. 신부족 선교회(NTM), 수단오지선교회수단 오지 선교회(SIM), 아프리카내지선교회(AIM)등이다. 또한 극지방 선교회(Arctic Missions)나 에스키모 복음 십자군(Eskimo Gospel Crusade) 같은 선교회들도 항공기를 활용하여 사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항공기를 이용한 선교가 선교사역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수 주 혹은 수십 개월 걸려 힘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오지에서 홀로 떨어져 사역하는 선교사 가족은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의료 혜택의 부재, 음식, 서신과 도서의 미비 등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마저 위축시키는 위치에 놓여있다. 오늘날은 단 한 명의 항공선교회 소속의 조종사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6주 걸려서 여행하고 사역하였던 지역을 커버한다.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항공선교회가 이렇게 귀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
필자는 오늘 한 사람 웰터 헤론(Walter Heron)이 자신이 경험한 고통 속에서 찾아낸 선교 방법이 어떻게 승화되어 우리 속에 나타났는가를 기술하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더 좋은 선교 매체들이 창조되어야 하겠다.
2013년 6월 30일 “교회와 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공정비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 (0) | 2020.04.03 |
---|---|
여성 항공선교사인 베트 그리인 (0) | 2020.04.03 |
죠이 리더호프와 녹음 선교회 (0) | 2020.04.03 |
피터 데이네카와 슬라브 복음선교회 (0) | 2020.04.03 |
폴 프리드의 트렌스 월드 라디오 (0) | 202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