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8:25ㆍ선교칼럼
항공정비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주님을 위해 기름 묻은 쇠망치 역할을 하는 것은 천한일”로 생각했던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는 항공정비야 말로 선교에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보여주었던 선교사였다.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는 어렸을 때에 선교에 관심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났고 비행기에 대한 흥미가 유달리 많았지만 항공 선교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전이 없었다. 다만 그의 형이 비행기 조종사 였기 때문에 자신도 막연하게 조종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육군 항공대에 입대하였으나 정식 항공훈련 후보생이 되어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직전 어렸을 때부터 앓아오던 골수염이 재발하였다. 그 사건은 그의 인생행로에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그의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제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러나 첫 비행을 위해 비행장에 가는 대신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어야 하는 제일 괴로운 생일이었다.”라고 기록하였다. 결국 네이트는 비행 조종사로서는 부적합 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항공기를 움직여 보지 못한 체로 2년 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게 되었다.
이후 네이트는 짐 트럭스톤이 항공선교회(MAF)를 조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여 여부를 물었다. 짐은 당장이라도 좋다는 대답을 보냈다. 군복무를 마친 네이트에게 짐은 멕시코로 달려갔다. 그 때에 멕시코에 있었던 MAF 소속의 선교 비행기 한 대는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선교지로 달려가면서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날개 잔해가 큰 통속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네이트는 실망하지 않고 6개월간의 꼼꼼한 수리 끝에 비행기를 뜰 수 있게 만들었다.
멕시코에서 6개월간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 휘튼 대학에서 1년을 공부한 뒤 그의 일생에 사건이 가장 많았던 1948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짧은 기간의 구혼 뒤에 발렌타인 데이에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졸업생인 마리 페리스(Mari Ferris)와 결혼 하였다. 다음 9월에는 그들은 에콰도르로 떠났다. 거기서 네이트는 MAF의 본부와 건물들이 들어설 때에 쉘 메라(Shell Mera)로 갔고 마리는 첫 아이를 낳게 위해 퀴토(Quito)로 갔다. 12월 퀴토로 갔다 오는 길에 비행기가 돌풍을 만나서 추락하게 됨과 아울러 네이트는 등뼈에 중상을 입고 깁스를 온몸에 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만 하였다. 이러한 비행기 사고는 MAF로 하여금 조종사들의 비행 훈련과 비행기 정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네이트는 비행기 항공을 위한 개선점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정글 비행은 특수한 환경인 만큼 상황에 잘 적응하는 비행술이 필요하였다. 그는 아내가 쓰는 식용유를 깡통과 연결하여 보조 연료통을 개발하여 600m 상공에서 실험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 내었다. 네이트의 이런 실험은 미국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비행기의 하강 기술 장치를 발명하였다. 이는 바켓(Bucket)이라고 부르는 하강 장치였다.. 즉 비행기 뒷면에 바켓을 달고 넓은 원을 그리며 비행을 하면서 필요시 사푼히 내려앉는 비행술이었다.. 이를 통해서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 양동이를 달아서 의약품을 선교사들에 전해 줌으로써 임무를 완수하기도 하였다.
보다 안전한 정글비행을 개발하는 것은 네이트에게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엔진이 하나 달린 단엽기를 3개의 모터가 달린 쌍엽기로 개조 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모험적인 실험이 감행 될수록 비난도 많이 받게 되었다.
네이트는 오직 영혼을 구해야 되겠다는 충동에 가득 찼고 또 한편으로는 대담한 성격으로 힘든 비행인 아우카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아우카인들에게 선물을 내려주려고 고안한 비행기가 사고를 당해서 1956년 1월 네이트는 다른 동료들과 아우카 계획을 감행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항공 선교사 중에서 가장 발명이 뛰어나고 재능이 많았던 젊은 선교사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항공 선교에 대한 그의 기여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역에 대한 증인들이 지금도 살아 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항공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이후에 필자는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 여행을 떠난다. 필리핀은 대부분의 지역이 정글로 구성되어 있다. 드넓은 녹색 속에 갇혀 있는 정글을 보면서 네이트의 항공 선교를 생각하고 싶다. 그의 사역은 결코 “주님을 위해 기름 묻은 쇠망치 역할을 하는 것은 천한일”이 아니었다.
2013년 7월 14일 “교회와 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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