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혼란과 선교적 상황인식

2020. 4. 6. 14:45선교칼럼

북한의 혼란과 선교적 상황인식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구약 성경의 출애굽 사건과 모세와의 관계성에서 선교적 함의를 찾아낸다. 이는 정치적 사건과 연결된다. 즉 요셉을 알지 못한 왕이 새로운 바로가 되어서 애굽을 다스리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였다. 핍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하나님께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해결해 주도록 호소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종인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시킴으로써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심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선교의 하나님의 주권적 모습을 보게 된다.

  북한이 심히 위험하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온건주의자였던 장성택이 각종 죄명을 뒤집어 쓰고 권좌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에 생명이라도 보존 하는가 싶더니 즉결로 처형에 되어 북한에서는 존재조차도 없애버렸다. 참으로 무자비한 정치적 상황들을 보게 된다.

  그동안 장성택은 외부세계에 알려지기를 경제특구를 만들어서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중국식 개방과 번영을 꿈꾸었었던 것 같다. 금년 8월에는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서 중국의 산업시찰을 하였었다. 굴뚝에서 일어난 연기들과 노동자들의 손놀림, 그리고 기계화된 산업시설을 보면서 북한의 인민들도 경제도약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담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꿈은 너무나 처참히 밟혀 버렸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국내의 일부 매체에는 북한과 중국이 추진하였던 황금평 개발사업이 암초에 부딪쳤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 진행해온 북한 황금평 개발사업이 북한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으로 암초를 만났다고 아사히 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중 황금평 합동 관리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장성택 숙청 직후에 북한 측 책임자가 소환됐으며 이를 전후해 공사도 중단됐다는 것이다. 이 관리위의 중국 담당자는 "북한은 변화가 심해 기업유치의 당초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중국 정부에 보고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황금평은 북중 경제협력사업으로 20116월 착공된 뒤 북한군이 황금평 주둔을 고집하는 바람에 개발이 일시 중단됐다가 장성택이 작년 8월 방중, 개발 활성화와 북중 합동 관리위 설치에 합의했다. 또한 중국은 직후에 8천만위안(140억 원)의 국고 지출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번 황금평 사업 중단이 장성택 처형으로 북중 관계의 첫 적신호를 나타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년 전 젊은 통치자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북한의 개방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자료에 의하면 김정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을 하였다. 필자도 작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면서 그가 공부했다는 학교 옆을 스쳐서 지나가기도 했다. 사실 스위스 제네바는 국제적으로 중립국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동서양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정보와 정서적 흐름을 잘 감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곳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래도 동토와 같은 땅을 녹일 수 있는 인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기대는 이번 장성택을 처형하는 모습을 보면서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김정은의 잔혹성은 가계의 혈육도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처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 방송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장성택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 있다며 매일 같이 면담 요청을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장성택은 자신의 직책과 명예를 모두 내려놓겠다는 '백기투항'의 뜻까지 밝혔지만 이 또한 묵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정일의 여동생으로서 북한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지만 남편 장성택의 처형을 막지 못한 김경희는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암투병 등 건강이상설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남편 장성택의 처형에 대한 충격과 이에 따른 항의의 뜻으로 두문불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자가 오늘 북한 이야기를 이렇게 기술한 것은 정치와 선교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선교는 정치적 변혁이 있을 때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출애굽의 요소와 로마제국의 확장 정책 속에서도 선교를 가져왔다.. 현대사 속에서는 서구가 가진 산업의 힘이 타국의 정치적인 환경에 개입하면서 복음의 길을 열었다. 결국 북한의 정치적인 요소가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지는 예측 불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조금은 온건주의자로서 개방을 이끌 수 있는 장성택의 처형은 선교가 더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31222교회연합신문 선교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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