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교

2020. 4. 6. 15:07선교칼럼

복지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복지를 통한 선교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선교가 가진 상황성은 교회가 왜 복지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신문을 읽다 보면 참으로 안타가운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동아일보 인터넷 신문에 기록된 슬픈 소식은 다음과 같다.

  생활고를 비관한 모녀 셋이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한 채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동반 자살했다.. 현장에서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다. 겉면에는 '주인님 밀린 공과금입니다. 그동안 고맙고 죄송했습니다'라는 메모도 함께였다. 2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920분께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60·)씨와 그의 두 딸 A(35), B(32)씨가 숨진 채 발견돼 집주인 임모(73)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주일 전부터 방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는 나지만 인기척이 없어 의심스러운 생각에 경찰에 신고했다"라고" 진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모녀의 지하 1층 방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바닥에 놓인 그릇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모녀는 방문을 침대로 막아 놓아 외부인의 출입도 차단했다. 모녀는 각각 이불 두 채와 침대에 누운 상태로 숨졌다.

  모녀가 살았던 곳은 지하 1층에 방 두 칸, 화장실 하나가 딸린 작은 집이었다. 이들이 주로 지냈던 방은 이불 두 채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고 벽지는 누렇게 변했다. 이부자리의 베개에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벽에는 아버지와 함께 네 식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박 씨 모녀가 이 집에 세 들어 산 지는 8년가량 됐다고 주변 이웃들은 전했다. 박씨의 두 딸은 고혈압·당뇨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주변 이웃들은 박 씨의 두 딸이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몇년 전 아버지 김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모녀의 생계는 아픈 딸들 대신 어머니 박 씨가 식당일을 하며 책임졌다. 박씨는 롯데월드 인근 식당에서 일하며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8만 원인 집세를 꼬박꼬박 낼 정도로 성실했지만 한 달 전께 넘어지면서 몸을 다치는 바람에 식당일을 그만둬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인 출입이나 타살 흔적이 없고 번개탄을 피운 점 등을 미루어 모녀가 동반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슬픈 기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신앙에서부터 집단적인 의미에서 한국 전체 교회가 갖고 있는 책임성의 문제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 모녀가 극단의 선택에 앞서 한번쯤 교회의 문을 두드렸을 법한 정황도 예견된다.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교회는 점점 귀족화 되는 것 같다. 귀족들의 게토화가 교회 속에 나타날 때에 돈 없는 사람들, 못배운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할 곳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할 때에 교회는 힘을 잃게 된다. 또한 생각할 수 있는 분야는 교회의 화려함이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명제 아래 너무 고급화되어 서민들이 출입하기에 어려움이 주어질 때에 민중의 발걸음이 뒤돌아서게 된다. 또 하나의 추한 모습은 거룩한 성직자들의 가운 속에 내재한 성숙하지 못한 인격이다. 이러한 인격은 성폭행, 비인격적인 생활 태도, 거짓 메시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세모녀의 동반 자살은 교회 공동체는 사회 공동체를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십자가는 많은데 왜 자살은 증가하는가? 교회의 지도자는 본인들의 사역 가운데 타자를 위한 복지의 필요성을 주장해야 하겠다. 사실 세 모녀의 자살 같은 극단을 방지할 수 있는 기관은 교회 밖에 없다. 왜냐 하면 교회는 지역사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심산 계곡의 사찰에서 종교 수행을 하고 있는 불자들은 자기 수행으로 인해서 세상에 나갈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이웃 공동체로 존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야 말로 인간 생명을 지켜내기에 적합한 기관이다.

  물론 교회가 가진 자원의 한계점이 있다. 작금의 개신교는 안팎으로 공격을 당해서 활발한 선교활동이 위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굳건하게 서서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하겠다. 세 모녀 처럼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도록 교회는 지역사회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하겠다.

201439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족주의 대두와 선교의 제 3 세력  (0) 2020.04.06
콜럼비아의 순교자 쳇 비터맨  (0) 2020.04.06
베트남의 순교자 베티 올센  (0) 2020.04.06
타바 국경의 비극  (0) 2020.04.06
콩고의 순교자 폴 칼슨  (0) 20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