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대두와 선교의 제 3 세력

2020. 4. 6. 15:15선교칼럼

민족주의 대두와 선교의 제 3 세력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2차 대전의 종언은 세계의 세력판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 400여 년 동안 구축해 놓았던 기득권들이 상실되고 새로운 세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때 아무런 정치적인 힘도 발휘하지 못했던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국가들이 제 3 세계라는 이름으로 급격한 변화를 통해서 서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제 3 세계에 일어났던 변화들은 해외선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60년 대를 기점으로 서구 선교사들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다.. 특히 좌익 혁명이 일어난 곳에서는 선교사들이 순교의 재물이 되기도 하였다. 선교사들은 반서구적인 지배 집단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한때는 우호적인 사람들까지도 긴장된 관계가 되었다. 그들은 서구가 가진 지도력의 위치를 바꿔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 서구 선교사들은 민족주의 대두와 함께 설 곳을 잃어버린 것 같은 처지가 되었다.

  서구교회에 대한 제 3 세력들의 요구는 동시에 책임도 수반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교회는 물론 복음의 토착화에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서구의 지도를 받아오던 신생교회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힘을 모아서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엄밀히 말해서  제 3 세계의 독립과 자치는 서구의 교육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개신교 교육은 정규 학교의 85%를 감당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효과는 지배 계층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선교지의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를 훈련시키는데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신학 연장교육)였다.신학연장교육)였다. 학비를 마련할 수 없고 목회하는 곳이 너무 외져 정규적인 성경학교나 신학교의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많은 현지 사역자들이 교육에 동참하였다. 비록 TEE1970년 대 중반에 시작하였지만, 이 제도를 통해서 70여 개 국의 56,000여 명이 높은 수준의 신학교육을 받게 되었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제33 세력의 증대는 1974년 로잔 회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시 회의 참석자 2,500여 명 중에서 1/3이 제 3 세계에서 참석하였다. 국가적으로도 150여 개국에서 대표자들을 파송하였다. 로잔 선교대회의 의미는, 주님의 지상명령 완수는 더 이상 백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에 전 세계적 일치를 이루는 거보를 내디뎠다..

  제 3 세력의 증대와는 대조적으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개신교가 퇴조하고 있었다. 거대한 교회들은 노인 몇 명으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복음주의 교회들과 특히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놀랍게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선교로 이어졌다. 일 예로 1960년대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와 기타 오순절파의 교회들은 선교사의 수를 50% 이상 늘려 놓았다. 이와 같은 성장의 뒷면에는 칠레, 브라질, 남아프리카의 토착화된 오순절주의 교회들의 급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제 3 세력의 증대는 비서구 교회들로 하여금 해외 선교를 위한 젊은이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단기선교라는 프로그램 도입을 통하여 수천 명을 방학을 이용하여 실시하였다. 사실 그들의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다.

  사실 민족주의 대두와 함께 서구선교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서구가 파송한 장기선교사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루스 터커는 랄프 위터의 말을 빌려서 서구 선교사가 10년 이내에 30,000여 명이 은퇴하는 대신에 충원된 숫자는 5천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제 3 세계의 교회들 속에 나타난 젊은이들의 선교 동력은 서구의 대체 세력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은 민족주의 대두와 함께 나타난 제 3 세계교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개신교의 선교 역사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서구 기독교의 힘이 세계에 미치면서 확산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실하고 용감하게 선교적 사명을 완수하였다. 이제 제 3 세계의 교회들은 그들의 공헌을 잊으면 안 되겠다. 아울러 그들이 쌓아 놓았던 선교의 노하우를 겸허히 배워 가면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하겠다.

201446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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