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세상을 보실 예수님

2020. 4. 6. 15:20선교칼럼

악한 세상을 보실 예수님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참으로 기가 막힐 세상이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아침 인터넷을 통한 신문을 검색하는 가운데 울산에서 계모에게 학대받아서 죽었던 어린 소녀에 대한 글을 읽었다.

  조선일보에 에서는 이번 기사를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다. 울산 울주경찰서는 상해 치사 혐의로 구속된 계모 박모(40)씨에 대한 추가 수사 결과 이런 혐의를 확인, 학대 치사와 상습 폭행, 아동 학대 등 혐의를 추가 적용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경북 포항에서 살던 2011512일 낮 집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의붓딸 이모양의 머리를 죽도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수십 차례 때렸다. 당시 이양은 여섯 살이었고, 집 부근 검도장을 다니고 있었다. 경찰은 "박씨는 이양이 네 살이던 2009년부터 함께 생활했는데, 그때부터 폭행을 시작했으며 정도도 갈수록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해 521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집에서 "30분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이양의 허벅지 부위를 수차례 발로 찼다. 이양은 허벅지 뼈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나는 전치 10주의 부상을 당했다. 수도권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한 달에 2번가량 집에 오는 이양의 아버지에게 박 씨는"계단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또 지난해 1031일 오후에는 이양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손을 들고 있게 했다가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으며, 남편이 외출하자 이양을 욕실로 끌고 가 폭행하고 급탕으로 물을 데운 뒤 샤워기로 손과 발에 뿌려 2도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경찰은 "피부에서 수포가 일어날 때까지 뜨거운 물을 뿌렸다"라고" 말했다. 이때도 박 씨는 나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가 모르고 뜨거운 물을 틀었다가 뎄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경찰은 이양의 과거 병원 치료 기록 등을 확보해 박 씨를 추궁,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양은 엉덩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상습적으로 구타당해 엉덩이 근육이 없어지고, 만성 염증이 생겨 고통에 시달려 왔다는 의사 소견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830분쯤 울산시 울주군 자기 아파트에서 '2000원 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이양의 머리와 가슴 등을 10차례 이상 주먹과 발로 때리고 "오늘 소풍만은 보내주세요" 하고 애원하는 이양을 또다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이양이 "허리가 아프다"며 비틀거리며 쪼그려 앉자 박 씨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이양의 몸에 난 멍을 없애기 위해 따뜻한 물을 채운 욕조에 들어가도록 했다. 이양은 호흡 곤란과 피하 출혈로 의식을 잃고 물속에 빠진 채 숨졌다.

  박씨는 당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딸이) 소풍 갔다"고 거짓말한 이후 "목욕을 하다 딸이 숨졌다"라고" 거짓 신고를 했다. 부검 결과 이양은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졌고 이때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른 것이 결정적 사인으로 조사됐다.

  필자는 이 글을 근거로 그동안 어린 소녀가 악마와도 같은 계모에게서 핍박을 받으면서 생활했을 것을 생각해 보니 가슴이 미어짐을 느낀다. 어린 소녀는 날마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보호받을 길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탈출구도 찾지 못하면서 두려움과 극심한 불신과 그리고 공포의 얼굴을 보고 살았을 것이다. 비록 혈육의 아빠 에게도 차마 발설하지 못할 만큼 숨죽이며 생활했을 것이다.

  계모는 마치 지옥의 사자처럼 어린 소녀를 갖고 놀았을 것을 생각하니 인간의 인간됨이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다. 악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예수님은 교회에게 무슨 말을 하셨을까? 어린 소녀가 악한 세계에 방치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보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도 보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작은 신앙 때문에 이렇게 가슴을 쥐어짜며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교회는 한밤중에 높이 솟아 있는 붉은 색 십자가의 모형을 자랑할지 모른다. 넘치는 헌금 주머니를 자랑할지 모른다. 그리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 입고 있는 거룩한 세 줄기의 박사학위 가운을 자랑하면서 주지주의에 심취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 받다가 일그러져버린 한 소녀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 것인가?

20131110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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