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죽음, 죽음!

2020. 4. 6. 15:23선교칼럼

죽음, 죽음, 죽음!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죽음, 죽음, 죽음” 이라고 말한 사람은 뉴기니아 발리엠 계곡의 다니족에서 번역 선교사로 평생을 바쳤던 브롬리의 편지에 나타난 글귀이다. 미론 브롬니(Myron Bromley)1950년 대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의 메드빌(Meadville)에서 자랐다. 이후 C&MA(기독교연합선교회)의 나약선교사 대학과 애즈베리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브롬리는 뛰어난 언어학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재능이 아직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 부족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갈망했던 선교 후보생이었다. 럿셀 히트(Russell Hitt)에 의하면 브롬리는 다니 족에 대해 잘 알기를 원했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일 보다는 그들의 언어를 분류하고 연구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오래된 카키(Khaki)천으로 된 재킷을 입고 다녔으며 그 옷에는 기다란 사슬이 달려 있었다... 면도를 거의 하는 일이 없고 낡고 오래된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는 텐트에 간이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책, 서류, 약품, 깡통, 녹음기, 잡지 등이 널려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브롬리는 뉴기니아에 가기 전에 다니족 문화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인 네덜란드어를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뉴기니아 발리엠 계곡의 다니족에게로 가게 되었다. 당시 그곳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고 부족 간에 반목과 살육이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시기였다. 브롬리가 다니족에게 도착한 1년 후에 그는 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죽음, 죽음, 죽음! 이 언제나 그칠까? 혹은 언제나 생명의 빛으로 이들을 감화 시킬 수 있을까? 해마다 전쟁과 다툼으로 인하여 죽음이 창궐한 가운데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이들 원주민들에게 생명의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들의 몸에서 화살촉을 빼내고 약을 주며 열심히 치료하지만 갑자기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는 때로 사역이 진전되어 싸움이 없어질 날을 기대하지만 곧 새로운 희생자를 화장하기 위해 장작을 쌓아야만 한다. 우리는 큰 성공을 꿈꾸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실패로 끝날뿐이다.. 단 한 가지 해답은 기독교뿐이다.”

  그러나 브롬리의 외침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브롬리는 1955년 초에 다니족이 사용한 언어의 고저, 강세, 모음의 길이 등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발리엠 계곡 하부 원주민 언어의 음성학적 구조(The Phonetic Structure of the Language of the Lower Grand Baliem Vally)”라고 제목이 붙은 연구 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비록 브롬리가 음성학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1955년 친구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는 그들이 사용한 문법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다니족의 언어 가운데 동사가 여러 조건에 따라서 2,000여 개 이상 변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심지어 하나님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세계관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죽은 사람의 영으로서 신음소리를 내고, 생명을 앗아가고, 사람을 홀리는 존재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해와 달을 남편과 아내라고 말하며 비를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였다.

 브롬리 에게 언어 사역은 원주민들의 말을 터득하고 성경을 번역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19566 쌍의 새로운 선교사들이 발리엠 계곡의 다니족에게 와서 선교훈련을 받게 되었다. 브롬리는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언어교육을 시켰다. 브롬리팀의 사역을 점점 증대되었다. 그리고 사역 반경을 점점 넓혀 나갔다. 그만큼 선교사들의 위험도도 가중되어 다니족의 독화살을 가까스로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브롬리는 발리엠 계곡(60 km)에 만 3개 의 중요한 방언과 그 각각에서 파생된 많은 언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역이 확장 될수록 브롬리의 언어 실력도 더욱 성숙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언어의 장벽이 제거되자 다니족 사이에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 1961년에는 C&MA의 보고에 의하면 발리엠 계곡에만 20개 이상의 교회와 8,000명 이상의 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 왔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이 있었다. 특히 1940년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C&MA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이제 다니족에게는 1950년대에 있었던 부족 간의 처절한 싸움이나 증오심은 없어지게 되었다. 오랜 원수지간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성찬의 삶을 공유하는 지역이 되었다. 여기에는 미국의 한 젊은이인 브롬리의 헌신과 성경번역 사역에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우리 모두는 숭고한 선교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다.

2013417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