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비아의 순교자 쳇 비터맨

2020. 4. 6. 15:11선교칼럼

콜럼비아의 순교자 쳇 비터맨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쳇 비터맨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의 랭커스터에서,, 비터맨 계량 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여덟 명의 자녀 중 장남으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럼비아 성서대학에 들어간 그는 1976, 콜럼비아의 위크리프 선교사의 딸인 브렌다 가드너를 만나 결혼하였다.. 브랜다를 만나기 전부터 번역 선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언어학 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해 여름을 SIL에서 공부 했으나 언어에 대한 지식의 진전이 별로 없었다.

  비터맨은 처음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번역 선교사로 사역하고 싶었으나 위클리프 선교회의 임원들은 그에게 컬럼비아로 가도록 요청하였다. 쳇 비터맨은 두 아이를 임신한 그의 아내 브렌다와 함께 1979년 여름 컬럼비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컬럼비아에 도착한 일행은 사역을 위해서 넘어야 할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들은 3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 사이에서 별 성과 없이 사역을 하다가 카요나(Caryona)어를 쓰는 인디언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쳇 이 병이 들어 담 수술을 받으러 보고타(Bogota)로 이송되었다..

  보고타의 SIL 사무실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납치당했다. 오전 630분 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12명의 성인과 5명의 아이들을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엎드리게 한 채 손과 발을 꽁꽁 묶고는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다른 사람들은 8시에 해방되었지만 쳇은 그대로 납치되어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M-19”단원이라고 하면서 만약 219일 오후 6시 까지 SIL 이 콜럼비아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쳇을 처형하겠다”라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요구가 밝혀지자 개신교를 비롯한 가톨릭의 지도자들도 석방을 호소하였다.. 가르시아 헤라 로스 신부는 신문의 일변을 장식한 공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우리는 납치범들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여 성경을 인디언 언어로 옮기는 성스러운 사역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을 석방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는 개신교 형제의 고통을 모른 체 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그를 존경하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려는 그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이 고통스런 순간에 그의 편에 서 있을 것이다.”

  48일 간의 억류기간 중 쳇은 좋은 대우를 받았다. 비록 납치범들은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쳇은 그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쳇은 그들에게 전도도 하고 토론도 했으며 장기를 두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비록 완전히 상반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존중했다고 썼다. 그러나 쳇과 납치범들 사이에 이러한 우정이 싹텄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37일 그는 순교하였다. 심장이 관통된 채 보고타의 어느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쳇 비터맨의 피랍과 순교로 인해서 비터맨의 가족에게 와WBT/SIL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쳇을 대신하여 200여 명이 넘는 선교사 지원자들이 새로 생겨났다. 콜럼비아에 있는 100여 명의 위클리프 선교사들에게 선교회 에서는 선교지를 옮기도록 했지만 단 한 명도 콜럼비아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완수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또한 그대로 콜럼비아에 체류함으로써 테러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

  쳇의 가족들은 그의 순교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에 질문은 남아 있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은 그렇게 무참하게 사건을 끝맺음하셨을까? 쳇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다. “쳇의 죽음이 우리를 당혹게 한 이유는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쳇을 탈출시켜 주셔서 테러분자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역사하셨다. 그 해답은 영적 차원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앙의 친구들과 기자들에게 잘 설명할 좋은 방도가 없었다.”

  필자는 오늘 남미에서 순교한 쳇 비터맨의 사역을 정리하였다. 지금도 남미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 선교사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단순한 샘법은 선교사는 친미적이고, 좌익 혁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는 사랑은 정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2014316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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