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7. 13:06ㆍ선교칼럼
청소년 복지 선교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있다. 이는 소위 윤일병 사건이다. 선임 병사들에게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게 만듦으로써 국가 의무를 위해서 군대에 보낸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분노를 거듭하고 있다. 필자의 세 번째 자녀도 곧 군대를 가야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게 보인다.
다양한 문제 중에도 집단따돌림의 문제는 인간성의 파괴를 불러와서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요인이 있다. 학자들은 집단 따돌림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는 사회적 전염이다. 둘째는 따돌림 행위에 대한 통제 적극적 대응의 부재이다. 셋째는 따돌림 행위에 대한 책임 전가이다. 이처럼 청소년의 문제는 심각하다. 따라서 필자는 오늘 청소년 복지선교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청소년 복지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청소년정책과 관련된 기본법제인 청소년 기본법 제3조 제4호에서 ““청소년 복지라 함은 ”청소년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조화롭게 성장·발달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사회적·경제적 지원을 말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청소년 복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을 할 수 있다. 최근에 오면서 사회의 일부 소외된 계층의 청소년들을 심리·사회적 및 경제적으로 도와준다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 복지는 모든 청소년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며, 기본 욕구충족을 넘어서 주체적인 삶을 위해 청소년의 발달과 기능을 최적으로 촉진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복지를 정부에게만 위임할 수 없다. 다양한 민간주체들이 합심하여 복지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영적 지도력의 주체인 교회가 이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제자화를 통한 자존감 향상을 기해야 함을 제언하고자 한다. 교회는 전문적인 제자화 사역을 통해서 다문화인들의 세계관을 교정해야 한다. 전문적인 제자화 사역이란,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지도력을 개발하기 위해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김현진은 모는 청소년들은 외적 위험을 직면하게 되는데, 개인의 내면의 반응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자극이나 압력을 극복하기도 하고 수렁 속에 빠지기도 한다. 내면의 반응을 주도할 수 있는 요소는 자아존중감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청소년 치유에 대해서 김현진은 열 한 가지의 방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첫째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이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는 지를 파악하라. 둘째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정서적으로 억압된 부분을 발견하여, 그 영역에서 정서적으로 분리(detach)할 수 있도록 도우라. 셋째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애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개별화 시킬 수 있도록 도우라. 넷째, 거짓 자아를 버리도록 도우라. 다섯째는 또래 집단 상담이나 집단 경험을 하게 함으로 자아 존중감의 수준을 높여 주라. 여섯째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시각을 재구성하도록 도우라. 일곱 번째는 영적인 삶을 개발하도록 도우라. 여덟 번째는 수치심, 조책감, 부끄러움, 쓸모없다고 느끼는 감정이 담긴 그릇을 비우고, 그 그릇 속에 사람을 담도록 하라. 아홉 번째는 하나님의 독특한 걸 작품이라는 것을 지각하도록 도우라. 열 번째는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우라. 열 한번째는 서로를 존중하는 가족 내의 의사소통은 가족 멤버들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열 두 번째는 부모들이 건강한 자아 존중감을 갖도록 돕는 것은 그들의 자녀가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자존감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본인은 물론 동료로서 같이 생활하는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살인에 이르게 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교회는 알아야 하겠다. 윤일병 사건을 담당한 사람들에 의하면 가해자는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심리적 상태를 내면에 깔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그 대상이 나타나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빛은 세상을 향해 비출 때에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속에 그늘진 청소년들을 밝게 비추는 것이 교회성장의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2014년 8월 10일 “교회연합신문 선교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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