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7. 13:03ㆍ선교칼럼
어느 종교 지도자의 최후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다. 종교를 말할 때에 경전을 갖추고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단체를 고등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전도 없고, 정기적인 모임도 없고, 시회에 민패를 끼치는 종교를 하등 종교라고 분류한다.
최근 한국은 세월호의 침몰로 말미암아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아 왔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의 중심에는 구원파로 지칭되는 종교 단체가 있다는 정부 발표와 함께 핵심 인물인 유병언이라는 사람을 정조준하여 수사를 벌였다. 결국 그는 순천의 한 지역에서 차디찬 시신이 되어 나타났다.
이렇게 나타난 유변언을 두고 국내의 각종 매체에서 다양한 의견을 쏟아 놓고 있다. 동아일보의 황호택 논설주간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유병언 씨의 도피생활을 거든 순천 송치재 가든 주인 변모 씨 부부는 구원파의 창시자이자 유 씨의 장인인 권신찬 씨와 사돈 관계다. 인천에 살던 변 씨 부부는 1990년 경 유 씨의 도움을 받아 송치재 가든으로 이사 왔다. 유 씨의 마지막 도피경로를 취재하기 위해 채널A 촬영팀과 함께 찾아갔을 때 흑염소와 멧돼지 요리를 파는 이 식당을 젊은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내게 구원파 신도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는 “변 씨 부부가 구속돼 염소들이 굶어 죽게 생겨 먹이를 주러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설교 동영상이나 책을 통해 가르침과 행적을 잘 알고 있다”며 유 씨에 대한 존경의 염(念)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검찰 발표나 언론보도는 쓰레기다. 인정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유 씨가 순천으로 도피한 이후 밀항설이 떠돌면서 해경 해군까지 동원됐지만 그가 밀항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1970년대에 권 목사의 지시를 받고 이곳 순천 일대에서 2년가량 전도를 했다. 송치재 인근에는 구원파 교회와 신도들이 집단 거주하는 산간 마을이 있다.
검찰은 변 씨 부부를 체포한 날 오후 법원의 영장을 받아 숲 속의 추억을 수색했으나 벽 속에 숨어 있던 유 씨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면서 단 한 명의 경비 병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동행한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검찰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유 씨를 독자적으로 검거하려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유 씨의 시신 옆에 있는 막걸리병과 소주병을 보고 행려병자로 단정했다. 검찰과 경찰에 쫓겨 별장을 허겁지겁 빠져나온 유 씨는 인근의 폐터널에서 술병을 주워 물병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폐터널에서도 단종된 보해 소주병과 소주 상자가 발견됐다. 폐터널 옆으로는 그대로 마실 수 있는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언제나 음모론은 그럴듯하고 팩트는 단조로운 경우가 많다. 유 씨의 시신을 현장에서 수습했고 행려병자 시신을 다룬 경험이 많은 장례식장 대표는 “유 씨의 시신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비서는 체포되고 운전사는 달아났다. 70대 고령에 지병이 있던 유 씨는 조력자들과 연결이 끊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검문검색을 피해 산길로 이동하다가 탈진해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
별장 벽 속에는 10억 원가량의 돈이 있었지만 그의 수중에는 한 푼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유기농 콩알이 몇십 개 나왔다. 그는 검경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토끼몰이를 당한 짐승처럼 쫓기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오대양 때부터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으며 왕국을 건설하고 후계구도까지 갖추어 놓았지만 일족은 풍비박산이 나고 잡풀 더미 속에서 행려병자처럼 죽어간 것이다. 사악한 인간의 야망과 탐욕은 콩알 한 줌으로 남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어느 특정 종교를 비하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 멘트인 “사악한 인간의 야망과 탐욕은 콩알 한 줌으로 남았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유병언 씨와 관련된 주변 사람들이 속속히 잡혀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번도 “세월호를 통해서 고통받는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그들의 자세를 통해서 평소에 종교 지도자인 유병언이 가르쳤던 메시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14년 8월 3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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