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7. 13:10ㆍ선교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개신교의 입지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14일 한국에 방한하여 4박5일의 일정을 시작한다. 그의 방한은 국내의 매스컴은 물론 세계의 종교계에 핫이슈로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바디칸은 가톨릭의 본부이며, 기독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필자가 바디칸을 방문 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과 기독교 문화가 집약된 곳이며 이상하게도 폐쇄적인 곳이라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따라서 어쩌면 제도적으로 게토화된 그곳의 수장이신 교황이 직접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세계의 이목을 받을 만한 사건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업적과 찬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교황 방한을 다룬 국내의 한 미디어인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가 기술한 글을 통해 그의 행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에 선출된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9인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린 것이다. 교황은 자문단을 상설기구로 만들고 교황청 조직을 시대의 요청에 맞게 재편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위한 개혁의 첫걸음은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티칸 은행을 향했다. 지난해 6월 교황청 금융안정위원회가 출범한 것도 바티칸 은행의 활동과 역할을 손질하기 위한 것.
지난해 7월 교황은 브라질을 첫 해외방문지로 택해 빈민가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발매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은 교회 쇄신과 사회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요약돼 있다. 올 2월 한국어로 번역 발간된 복음의 기쁨은 7만5000부 가 팔려 교황 관련 서적 최다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도 묵과하지 않았다. 교황청은 지난 3월 아동성추행 대책위원회를 설립해 성직자 행동강령을 정비하고 예비성직자 심사도 강화했다. “마피아는 파문됐다”는 거침없는 선언으로 개혁의 의지를 멈추지 않은 교황은 평화와 화해가 필요한 곳에서는 적극적 구제자 역할을 자처했다. 지난 5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로 나선 것도 '개혁'과 '단합'을 우선순위로 둔 교황의 파격 행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재임 8년 동안 한번도 아시아를 방문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세속주의에 찌든 서방 중심의 가톨릭의 한계에서 벗어나 아시아 가톨릭의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1월 스리랑카와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도 방문할 예정이다.
프린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가운데 특이한 요소는 가난한 자들과의 만남이다. 스케쥴에 의하면 8월 16일 충북 음성을 방문하는 교황은 가난과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을 만난다. 교황은 이날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 장애인들과의 만남(희망의 집), 생명수호를), 위한 태아동산 기도,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사랑의 연수원), 한국 평신도 사도직 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사랑의 영성원)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희망의 집’에선 양손이 불편한 어린이가 수녀의 도움을 받아 교황에게 꽃다발을 증정한다. 장애아동 40명, 성인 장애인 20명, 노인 환자 8명,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 8명, 호스피스 환자 4명은 교황에게 드릴 선물로 장애인들이 자수로 짠 프란치스코 교황 초상화,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 수도자들이 ‘복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음반 등을 준비했다. 교황은 ‘태아동산’으로 이동한 뒤 자신을 보호할 힘조차 없는 낙태된 태아들과 이 땅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이와 같은 교황의 행보로 인한 개신교는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교황의 방한으로 100만여 명의 개신교도들이 가톨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우리 개신교는 심각한 리더십에 시달리고 있다. 날마다 터지는 대형교회의 비리, 교회의 사유화, 성적 타락에서 오는 도덕성의 상실 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소문과 공격들이 안티 기독교 세력들의 조직적인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황의 이미지와 대비되기 때문에 심히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2014년 8월 17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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