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영이의 기도와 신학생

2020. 4. 8. 12:37선교칼럼

승영이의 기도와 신학생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필자는 한세대학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사역을 하고 있다. 특히 신학부와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학기가 바뀌는 과정에서 등록금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안타 갑 기도 하다. 어떤 학생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에 수강을 위해서 벌건 눈으로 교실에 들어올 때면, 차라리 사업을 하여 그들을 돕는 것이 진정한 사역이 아닌가도 생각되곤 한다. 최근에는 여기 저기 에서 들어오던 장학기부금마저도 교회 성도 수의 감소와 함께 중단되는 현실 앞에서는 더욱더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이러한 실상 앞에서 조선일보의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얻은 소식은 승영이의 소원'이 만든 행복한 요양원너무나 신선하고 깊은 의미를 나에게 주고 있다. 이승영씨는 199410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서울교대 3학년생이었다. 그는 교생 실습 닷새째, 버스를 타고 강북에 있는 초등학교로 출근하던 길에 다리 상판과 함께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딸의 유품을 챙기던 승영 씨 어머니 김영순 씨가 딸의 일기장에서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14 가지 소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대신 이루고 있다는 뭉클한 이야기였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승영씨 어머니는 딸의 사고 보상금 2억5000 만원 전액을 남서울교회에 기탁해 가난한 신학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었다.

  성수 대교 사고 당시 30대 회사원이었던 최만재(현재 57·목사)씨는 승영씨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최 씨의 삶에 두 번의 선물을 선사했다. 가난한 신학생이던 그를 목회자로 이끌고,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던 50(15) 무허가 판잣집을 대지 3159(956)의 번듯한 요양원으로 변신케 한 기적이었다. 최씨는 나이 마흔에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신학생이었다. 쪽방에 살면서도 2000년부터 아내 김영 샘(52)씨와(52) 인천 부평 뒷골목에서 매주 무료 급식을 했다. 파지를 주워 연명하던 노인 11명 을 모시고 무허가 건물에 월세 20만 원짜리 세를 얻어 ''작은 손길 공동체'를 세웠다. 학비가 없어 힘겨워하던 그는 2002"승영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씨는 4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아 2003년 대학원을 마치고 목회자가 됐다. 그는 ""승영 씨의 소원 중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꿈은 내가 꼭 대신 이뤄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무허가 보금자리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최 씨의 아내는 "남편은 매일 새벽 '우리 어르신들 편히 지낼 곳을 마련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살아생전 그렇게 기도했던 승영 씨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또 하나의 기적이 시작됐다. 최 목사님이 모시던 80대 구 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내 고향 용인으로 같이 좀 가자"라고" 최 씨를 조르기 시작했다. "가족도, 갈 데도 없는데 재워달라"며 와서는 3년간 함께 지내온 고집 센 할아버지였다. 최씨는 "마지막 소원 들어 드리자는 심정으로 고향으로 모시고 갔다"라고" 했다. 고향 땅을 밟은 구 씨 할아버지가 거짓말 같은 얘기를 꺼냈다. "여기 야산과 논밭이 다 내 것이네." 할아버지는 십수억원대 자산을 가진 이 동네의 유명한 갑부였다. 최씨는 "아들딸과 떨어져 살던 어르신이 외로움 때문에 우리 공동체를 찾아오셨던 것 같다"라고" 했다. 구 씨 할아버지의 기증에 의해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풀 내음 나는 시골길 끝자락에 널찍한 요양원을 건축하였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 26명과 이들을 돌보는 15명이 함께 모여 사는 ''작은 손길 공동체'라는 곳이다. 이곳을 일군 최만재(57·목사)씨는 해마다 1021일이 되면 20년 전 숨진 스물한 살 여대생의 이름을 되뇌며 기도를 올린다. 그를 위한 기도는 한결같다. "승영씨, 당신의 이름은 '오늘 하루 제가 무엇이 부족했나' 되묻게 하는 이름입니다. “.“

  승영 씨는 어쩌면 짧은 삶을 살다 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평소 간직한 기도는 20년이 흐르는 지금 하나씩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삶은 목적 없이 엿가락처럼 길게 느려뜨린 것이 아니라 비록 짧지만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이토록 훌륭하게 키워준 승영이의 무모님과 신앙으로 기도문을 엮게 만드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20141026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