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8. 13:16ㆍ선교칼럼
복음의 가정을 이루는 한해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최근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2015 년 새해에 바라는 소망을 묻는 질문에, 첫째는 가족의 건강이고 둘째는 취업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가족의 문제라고 본다.
성경에는 믿음의 가정에 대한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필자는 오늘 그 가운데에서 고넬료의 가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아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달리야 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주인공인 고넬료는 600 명의 군사로 구성되어 있는 로마 군인의 연대에서 100 명의 군사를 책임 맡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활동했던 무대인 가이사랴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가까운 해안 도시입니다. 그곳은 로마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다스리기 위한 기지로 활용된 지역입니다. 지금도 총독의 별장은 물론 원형경기장, 공연장 등의 다양한 유물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으로서 점령지인 유대 나라에 파견되어 와 있던 백 부장,, 즉 장교였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는 확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아름다운 신앙 가정의 가장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고넬료는 충실한 군인이었고 훌륭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먼저 고넬료에 대한 신앙을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주위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모범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이 복음의 가정을 이루었다.
오늘날 흔히들 자식 때문에 속상해하는 부모들에 관해선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 때문에 속상해 하고 탈선하고 인생을 망쳐 가고 있는 자식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불행스럽게도 청소년들의 범죄와 탈선 그리고 가출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꼽고 있지만, 그 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부모의 탈선과 이혼과 무관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은 집으로 치면 기둥과 같다. 기둥이 썩고 흔들리면 그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가장의 삶이 썩고 흔들리면 그 가정은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벽은 쌓고 다시 바르면 되지만 기둥이 썩으면 안 된다.
또한 고넬료의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도행전 10:4 절이 밝히는 대로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기 때문이다. 상달했다는 것은 교통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선 고넬료의 이야기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실업인 가운데 아더 디마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7 억 불의 선교재단을 만들었고, 한국 C.C.C.회관 건립에도 50 만 불을 헌금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첫째는 주일을 성수할 것, 둘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할 것, 셋째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 넷째는 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주님을 위해 쓸 것, 다섯째는 예수님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시게 할 것, 마지막 여섯째는 모든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하시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다른이들을 위해서 사는 방법도 결국은 자신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고넬료의 환상 사건은 선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구원의 축복이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된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 사건이었다. 사도행전 15장은 기독교의 최초 회의인데 그곳의 핵심 문제는 율법과 은혜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 문제였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분들은 구원을 얻는데 유대인의 관습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 신학을 가졌다. 이러한 첨예한 문제들 속에서 수제자인 베드로의 결정이 참으로 중요한 때였다. 이때에 베드로 사도는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행 15:6-11)라고 하면서 바울 일행이 주장했던 이방인 구원의 교리를 컨펌 했다.
2015년 1월 18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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