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9. 14:31ㆍ선교칼럼
아우슈비츠의 추억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지난해 7 월 초순쯤 동방교회를 탐사하는 과정에 폴란드를 들리게 되었다.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폴란드는 지극히 평화스럽고 생활도 여느 유럽처럼 부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도 아우슈비츠를 들어 선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의 잔혹성과 정치성 그리고 인종에 대한 편견이 사악한 마귀와 함께 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하였다.
필자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유없이 죽어 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붉은 벽돌의 수용소를 둘러 보면서 다양한 물건들을 처다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가슴 아픈 것은 노랑머리를 곱게 따 올린 여자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자녀의 머리를 곱게 만들어 놓는 어머니와 그 머리의 주인공인 어린아이는 강제 노동 이후에 샤워실로 안내되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독일어: Konzentrationslager Auschwitz, 문화어: 오슈벵찜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로, 폴란드의 오시비엥침(독일어 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위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 km 떨어진 곳이며, 좀 더 가까운 크라쿠프에서는 서쪽으로 약 70 km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로마인·옛 소련군 포로·정신질환을 가진 정신장애인·동성애자·기타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1945 년 기준 약 600만 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 %)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폴란드군의 병영이었으며 수용소의 건물들도 수용소 생성 후 새로 지어진 건물들 이외에는 전부 폴란드군 벽돌 막사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있다.
사악한 지도자인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이곳 아우슈비츠의 화물차에 실려오는 대로 '선별'되어 젊고 능력 있는 남자와 여자들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노약자 및 어린이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은 살해되었다. 강제노동자들 가운데 과로·질병·굶주림 등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선별하여 제거했다. 수용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의학실험의 예로는 값싸고 신속하게 불임을 시키거나 살해하는 방법, 아리안족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찾기 위한 쌍둥이들의 시체 검시 등이 있었다. 악명 높은 의사 요제프 멩겔레가 쌍둥이 부검실험을 지휘했으며 선별작업을 감독했다. 소련군이 진격해오자 아우슈비츠는 차츰 폐기되어 갔고 생존한 대부분의 포로들은 1945 년 1 월 17 일 다하우·마우트하우젠을 비롯한 다른 독일 집단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남겨진 7,650 명의 포로들은 10 일 뒤 이곳에 도착한 소련군에 의해 발견되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의 총사망자수는 보통 100만~250 100만~250만 명이라고 할 정도로 그 추산 폭이 크지만 4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이도 있다
현재 독일의 수상인 메르켈은"나치 학살 기억하는 건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아우슈비츠 해방 70 주년을 맞이하여 베를린서 기념연설 통해 '과거사 반성' 거듭 밝혔다. 그녀는 "아우슈비츠는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라며 "이는 오늘 같은 기념일뿐 아니라 항상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이어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 덕에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며 생존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기념식을 찾은 젊은 청중에게도 "우리는 과거사 학습을 통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며, 사회적 가치를 위협하는 세력을 분별해 낼 수 있다"라고" 했다. 최근 독일에서 불거지고 있는 반(反) 유대주의(反) 움직임 대한 우려도 표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대인들이 이유 없이 공격당하는 건 독일의 수치"라며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주의, 법치와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그동안 세계선교전략 수립을 위한 여행을 하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성경의 역사성과 신앙의 실용성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마틴 루터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가를 만들어 내었던 독일이 그토록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말세일수록 더욱 경성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2015년 2월 1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 속의 개신교 선교 제언 (0) | 2020.04.09 |
---|---|
선교 타이완 (0) | 2020.04.09 |
시리아로 간 한국의 젊은 이 (0) | 2020.04.08 |
복음의 가정을 이루는 한해 (0) | 2020.04.08 |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대통령 (0) | 202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