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8. 13:19ㆍ선교칼럼
시리아로 간 한국의 젊은 이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그동안 우려되었던 일이 터진 듯한 느낌이다. 사무엘 헌팅턴이 이미 지적한 대로 우리는 문명의 충돌에 깊이 들어와 있다. 문명의 충돌을 다른 말로 하면 종교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종교 가운데에서도 유독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은 두 종교가 갖는 유일신론이 크다. 즉 그들이 섬기는 “알라”와 기독교의 신앙 대상인 “야훼”가 유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성은 신앙에 모든 것들을 몰입하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 및 삶의 정황 가운데 유지해야 할 보편성을 상대화 시키는 근본주의적 자세를 갖기 쉽다.
이슬람과의 충돌은 셰리프·사이드 쿠 아치 형제가 1 월 7 일 셰리프·사이드 쿠 아치 형제 가 프랑스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회사에 납입하여 테러를 감행하였고, 1월 9 일 쿨리발리 등 이 식료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은 무참히 사살되었다. 그들이 테러를 범한 이후에 카메라 앞에서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말을 외칠 때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의 전율을 느낀다.
이제 세계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양분된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극한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자극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은 반이슬람 주의가 확산되고 있고,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로 대변되는 사방을 향한 증오의 마음을 쏱아내고 있다. 급기야는 니제르라는 나라에서는 한국교회와 한인학교가 불에 타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와 중에 한국의 한 젊은이가 IS에 가담하기 위해서 터키 국경을 넘어서 시리아로 잡입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김 군이 터기. 시리아 국경의 인근 도시에서 시리아 번호판 택시 타고 난민촌서 하차하여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일보에 인터넷판에 소개된 정황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터키에서 실종된 김모 군(18)이 현지 남성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시리아 국경 방향으로 이동한 사실이 확인됐다. 폐쇄회로(CC) TV 영상 등을 통해 김 군의 행적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 ‘이슬람 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스스로 종적을 감췄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0일 “배낭을 멘 김 군이 10 일 오전 8 시 자신이 묵고 있던 킬리스 소재 M호텔을 나와 현지 남성 A 씨를 만나는 장면이 CCTV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호텔 맞은편 이슬람 사원(모스크)에서 기다리던 A 씨가 손을 들어 알은체하자 김 군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는 것이다. 오전 8 시 30 분경 이들은 시리아 자동차 번호판을 단 카니발 승합차를 타고 떠난 사실도 파악됐다. CCTV에서 A 씨의 얼굴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터키 경찰의 조사 결과 이 승합차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불법 택시로 드러났다. 택시기사는 A 씨가 사건 당일 오전 7시 30분경 모스크로 오라고 해서 찾아갔고 김 군과 A 씨를 태워 약 18 km 떨어진 베시리 예 난민촌 입구에서 내려줬다고 진술했다. 기사는 두 사람이 난민촌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말해 이들이 시리아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남겼다. 기사가 A 씨와 아랍어로 의사소통은 했지만 A 씨가 시리아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군이 현지인과 사전에 접촉해 이날 접선하기로 약속한 뒤 만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군이 머물던 M호텔에서 시리아 국경까지의 거리는 약 5 km. 걸어서 1 시간 이면 국경에 닿을 수 있는데 굳이 베시리 예까지 18km를 이동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회피 기동’ 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군과 A 씨가 승합차에서 내린 지점에서 국경까지는 2 km 미만이다. 둘러서 갔지만 국경에 가까워진 셈이다. 이들은 기사를 의식한 듯 차 안에 있던 30 여 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 또한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합의한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터키 경찰은 두 사람이 베시리 예 난민촌에 도착한 이후의 행적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리아로 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군의 아버지는 공무원이며, 어머니는 교회를 다시는 성도라는 소식을 언론에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만, 자시의 무모한 행동에 가슴 졸이며 기도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는 종교 충돌이 가져온 세계의 현상을 보면서 이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임을 인지하고 기도해야 하겠다.
2015년 1월 25일 “교회연합신문 선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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