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선교

2020. 5. 14. 18:23선교학 강의

예수님의 선교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선교학 교수)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그는 삼위 하나님이시면서 이 땅에 도성 인신 하신 메시아이시다.. 범죄 한 인간을 향한 선교를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를 십자가를 지시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시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때가 도래하였다.(τό πλήρωμα τοχρόνου)”가 찾다(4:4).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보편적 구원에의 길을 그의 아들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여신 때이다. 이 때 는 로마의 문명이 평화를 이룩하고(Pax Romana) 사방에 길을 내어 교통을 원활하게 하던 때였고, 헬라의 문명이 온제 국의 통용어(Iinqua franca)를 제공하던 때였으며, 유대인들이 지중해 연안의 회당들을 통해 유일신 사상과 메시아 대망 사상을 선포하던 때였다. 바로 이러한 에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 부터 존재해 오신 그 아들을 하늘로부터 땅 위의 사명 위해서 보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어 지셨다 (1:1-4). 마태가 쓴 복음서 에는 보내다라고 쓰여 진 의미의 단어인 άποστέλλω 가 스물두 번, πέμπω가 네 번, άποστολος가 한 번씩 나온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이 예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보내심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보내심과 예수님의 보내심이 함께 나타나는데, 이 사이에는 분명한 시대적 구분 (11:10-14) 이 있으나,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전자는 후자의 근거가 된다. 결국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과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의 관계는 죄 속에 있는 인간을 향한 구원사와 분명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으로 부터가 차서 보내어짐을 받은 예수님은 선교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를 연구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 나라의 선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하나님 나라(βασιλεία τοθεο)”는 신약의 중요한 중심 주제 중에 하나이며, 세례요한 (3:2) 과 예수님 (4:17; 1:15) 님의 메시지 가운데 꼭 같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말씀을 선포할 때에 똑같은 주제 아래 사역을 감당하였다(10:7). 마태복음 6:9-10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말씀이 기록되어졌다..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나라이 임 하옵 시며(έλθάτω ή βασιλεία)...”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βασιλεία τού θεού) θεού)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개념이 왕국과 메시아의 개념을 포함해서 결정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유대교 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나타나는데, 이는 자주 이스라엘 (15:18; 23:21; 33:5; 43:15)과 온 세상의 왕 (왕하 19:15; 6:5; 46:18; 29:10; 99:1-4)으로 언급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는 이를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신학적 의견들을 가져올 수 있다.

나라(βασιλεία)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는 왕의 통치권과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에도 장소적 개념(the reign of God)과 통치(the Sovereignty of God)의 개념이 적용된다. 한편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보스(Geerhardus Vos)와 래드(G.E.Ladd) 그리고 라이더보스(H.N. Ridderbos) 같은 학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모든 존재들을 감독하는 분이셨으며, 그러한 역할을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으신 분이셨다. 더욱이 하나님의 통치는 항상 율법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적어도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왕이신 예수를 말한다. 나라(βασιλεία)”이 다스리는 왕국 (Kingdom)”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라의 주권자(22:2; 20:1; 13:24,44)를 중심으로 나라가 전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영 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장소적인 것은 미래에 되어 진 땅(새 하늘과( 새 땅)과,)과, 현재 성도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는 낙원 (눅 23:43; 1:23; 14:13)에 대해서는 분명한 부분이 있지만 현세의 천국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지어 주 신 이 땅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임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세 째는 백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의 백성이란 성도들을 의미하며, 이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 태어남이 아니 라 믿음을 통해서 거듭남의 사람이 백성이 될 수 있다 (1:12,13,3:3,5). 마지막 네 번째는, 주권(지배, 통치 또는 원리)의 원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권적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슈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성이다. , 현재적이냐 아니면 미래적이냐의 문제가 제기 된다. 미래성만 고집한 학자는 Albert Schweitzer박사이며, 현재성을 주장하는 학자는 Rudolf Bultmann의 실존론적 해석(existential interpretation)C.D. Dodd의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이 있다.

래드(George E. Ladd)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구속 활동을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종말론적인 측면에서도 활동 하실 것을 제거시키지 않으셨다(24:23; 33:22; 52:7; 3:5; 14:9 이하).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인 면과 미래적인 면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하였다. 따라서 래드의 신학에 따라다니는 주제어는 이미 와 아직(already but not yet)"이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심은 자신이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택하셨다. 예수님의 초림은 분명히 왕으로서의 통치적 강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다 (1:1). 많은 기적 (요 15:24) 15:24)과 이적을 베풀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지 못했다 (11:20-24). 예수님은 마태복음의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구원의 축복이 이방인에게 미칠 것을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자기 땅에 초림 하신 예수님을 당연히 왕으로서 추대하여 왕좌로 모셔야 하지만 그의 백성들에 의해서 십자가로 내어 몰리게 되었다.

2. 구원의 보편주의

왕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서 이제 구원의 보편성은 이방인 가운데에서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인의 가입이다. 이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얻은 은혜였다. 대표적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한 사랑(15:21-28, 7:24-30)의 메시지를 들 수 있다. 선교의 패턴은 이제 그동안의 구심력 선교(Centripetal)에서 이제 원심력의 선교(Centrifugal)로 바뀌어 간다.

이러한 이방인에 대한 원심력적인 선교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 하르낙(Adolf Harnack)은 예수의 설교는 보편주의(Universalism)이지만 그의 선교는 유대에 국한되는 특수주의로서 복음서에 나타난 선교의 명령은 후대인들이 삽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님의 이방인 선교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인 이마루스(Reimarus)와 슈트라우스(Strauss)는(Strauss) “...“... 예수에게서 다른 종류의 보편주의를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 하라는 어떠한 명령도 할 수 없었다. 복음서에는 이러한 명령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진짜도 아니요 소박한 전승의 한 부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는 독일의 카임(Keim), 하우스라트하우스 라트(Hauserath), 베르톨렛(Bertholet)등 으로서 “예수는 처음에는 편협한 유대주의자였으나 추후에 세계선교를 시도하였다”는” 진화론에 입각한 비평적 사상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선교 사역을 거부하는 의도에서 나온 잘못된 이론이다. 사실 예수님의 삶은 처음부터 선교적인 삶이었다. 그는 하나님이셨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신 분이었다 (창 1:26) . 하나님이신 예수는 예언자들의 예언한 것처럼 (49:6), 온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1:1). 그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문화적, 정치적,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이 땅 위에 오신 자체가 위대한 선교이다. 예수는 선교를 가르치셨다. 그의 가르침은 비단 공생에 초기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4:19) ”말씀하심으로부터말씀하심으로 부터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5)” 고 분부하셨던 때까지 예수님의 선교가 마쳐 젓 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그의 생애와 사역의 전 행로가 선교사역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의 세계주의에 따른 인류 구원의 선교사상은 당시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인과의 대화(요 4:39-42) 4:39-42)에서도 볼 수 있다. 복음서에 의하면 세 번에 걸쳐서 이방인들이 치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첫 번째는 백 부장의 하인 (마 8:5-13) 이었다. 두 번째는 거라사 지방에서의 귀신 들린 자(막 5:1-20) 였다. 세 번째는 전술한 바와 같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친 일이다 (15:21-28).

요한복음에는 세상(κόσμος)”라는 단어가 77회나 사용되어지는데 대부분을 예수님이 사용하였다 (1:10, 29, 3:17, 8:12, 17:21-23 ).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이미 예수님의 관심사가 보편주의의 구원 사역을 사역의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그토록 거룩하게 여기는 성전을 청소할 때도, “내 집은 만인이 기도 하는 집으로 말함으로써 세계주의의 사고를 더욱 깊게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유대 땅에서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에서 몇 가지 예외가 되는 이방인에 대한 사역을 언급하였다.

예수님은 율법에 의한 마지막 예언자로서 오셨다. 그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10:5, 15:24)이 구원의 대상이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고 슬퍼하신 모습 속에서 선민에 대한 구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유대 땅을 벗어나서 세계화되어야 한다. 이것인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뜻이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로 가셨다. 자신의 왕을 알아보지 못한 무지한 이스라엘에서 나라를 빼앗아 열매 맺는 다른 백성에게 주리라는 이스라엘에게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사건은 선민의 위치와 구원의 은혜가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은혜의 긍휼히 있게 됨을 말한다.

3. 제자화를 통한 지상명령

예수님의 선교 사역 가운데 중요한 주제는 제자들을 양육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서 위대한 선교의 명령이 성취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마태복음 28:19-21 28:19-21을 흔히들 지상명령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이제 승천을 앞두고 하신 이 말씀은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하시면서 훈련시킨 결과를 적용하기 위한 명령이다. 사도행전을 비롯한 신약의 많은 성경들이 제자들의 헌신적인 선교활동들을 기술해 놓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며 세계선교를 위한 도구로 만드는 방법을 우리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계선교를 위해서 먼저 동기부여를 하셨다. 동기부여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는, 외적인 동기이며, 둘째는, 내적인 동기이다. 이들 중 중요한 부분은 내적인 동기이다. 이는 스스로 자원하여 어떤 일을 감당하는 것을 말한다.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열정이 있는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예수님의 동기부여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첫째는 현실상황에 부딪치게 하여 필요를 깨닫게 하였다. 마가복음 4장에 보면, 풍랑을 경험하게 한 다음에 친히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 모습을 볼 수 있다. 둘째는 책임감을 심어 주었다. 셋째는 인정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넷째는 방 법을 가르쳐 주셨다. 다섯째는 개인적인 열정을 보여 주었다. 여섯째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시켰다. 일곱 번째는 정신적인 장애를 해결시켜 주었다. 여덟 번째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제자들을 중요한 인물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는 작업이었다..

예수님의 선교사역을 살펴보면 먼저 제자들을 선교의 현장에 보내는 작업이 나온다 (9:36-38). 70인의 전도 팀도(눅( 10:1-24)파송, 열두 사도 (10:5-42; 6:7-31)를 선교를 위해서 보냈다. 주님의 제자들이 사도로서 받은 사명은 다음과 같다.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 갈 것, 천국이 가까 왔다고 증거 할 것,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낼 것을 말씀하셨다.

부활하신 후 마태복음 28:18-20절에 나타난 지상명령의 참된 의미는 모든 족속(πάντα τὰ ἔθνη)에게 나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의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침으로서 예수의 제자들로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상명령은 제자들에 의해서 철저히 수행되어졌으며,, 후일 기독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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