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선교적 소명

2020. 5. 20. 09:29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의 선교적 소명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선교학 교수)

   요즈음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삶이 혼돈해지고 있다. 심지어 삶의 목표까지 흔들린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표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사람은 누구나 소명을 받고 그 일을 행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보람과 정체성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선교사였던 바울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은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 소명이 그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갈라디아서 1:15-16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라고” 하였다. 이 말속에는 그의 사 도권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택정과 그의 은혜로 주님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였다. 택정(φορίσας) 했다는 말의 헬라어 동사는 원래 “구별 한다”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되었다(φωρισμνος)”고 말하는 로마서 1:1의 의미를 갖는다. 신학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를 나타냄과 아울러 하나님의 섭리 아래 어떤 목적이 있음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이러한 목적은 바울의 사도직을 말해주며, 특히 이방인의 사역(26:16-18; 1:16)을 위한 택정함을 시사하기도 한다. 바울 자신도 이러한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διά τς χάριτος υτο) 사도가 된 것이다”라고” 말하며 시종일관 그의 서신서들에서 이것을 내게 주신 은혜(χάρις δοθείσα μοι)”로 지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2:3;15:15; 고전 3:10; 2:9; 3:2,7,8).

  결국 바울의 소명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이방인의 선교를 위하여 특별히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서정운은 여러 가지 조건을 놓고 볼 때 그 당시에 하나님의 복음을 세계화하는 데 바울만큼 적절한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바울의 소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안디옥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안디옥은 B.C. 25년경 길리기아가 시리아와 합병되었을 때에는 수도로 남아 있었다. 이 도시는 바둑판 양식으로 계획된 도시로서 인구에 있어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많은 로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또한 안디옥은 정치적인 수도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수도이기도 했다. 시리아에서 생산되는 것들은 이 도시를 거쳐서 지중해 연안에 있는 다른 곳으로 수송되었다. 지정학 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세계와 동방 세계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당대에는 초대형의 도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안디옥의 교회 형성은 누가의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스데반의 순교(7:60) 이후에 흩어진 유대인들과 오순절 사건 이후에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에 의하여 전도와 아울러 교회가 형성되었다(행 11:19-21). 이때는 초대교회의 혼란기였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가 박해로 흩어진 일부 성도들이 안디옥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구브로와 구레네의 유대인들이 안디옥에 오면서부터 교회사적인 개혁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헬라에서 성장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보다 더 폭넓은 세계관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람세이(Wm. M. Ramsey)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그들은 헬라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회중에 영입시키고 성공적으로 말씀을 전파하였고, 둘째는 그러한 개혁이 서서히 이루어짐으로서 헬라인 개종자들이 말씀을 들을 장소인 회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Χρισιανούς)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브루스(F.F.Bruce)는 말하기를 이 명칭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혼돈이 있었음을 발견한다고 하였다. ,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당시에 아직까지 셈족의 메시아에 해당하는 기름 부 음을 받는 자였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것은 곧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라는 명칭은 단순히 예수를 다르게 부르는 것이었다.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는 아주 일상적인 노예 이름인 크레스 토스(Χρεστος;(Χρεστος; 라틴어 Chrestus)와 거의 같이 들렸다. 이에 대하여 람세이(Ramsey)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칭호는 그 도시에서 친숙한 화제가 되고 아마도 추문과 험담의 대상이 되었으리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명백히 교회 외부에서부터 불려졌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를 추종자에 의하여 섬기어 지는 하나의 이방 종교의 신들 중의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안디옥 교회는 성장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이 교회는 참으로 교회사에 있어서 선교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 초대 교회는 예루살렘에 집착하였기 때문에 구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말씀하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에 정면으로 위배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는 그 규모가 급속히 성장하여 예루살렘 교회와 맞먹는 대교회로 성장을 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를 전체적으로 보아서 그리스도인들의 모교회(母敎會)라고 한다면 안디옥교회는 특별히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바울을 이곳 교회를 통하여 이방인에 대한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바나바와 바울과의 만남은 세계선교역사에 하나의 분깃점이 되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11:24) 이었으며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로서 가장 뛰어난 자로서 통찰력이 있고, 사람의 마음의 깊은 곳까지 감동을 시키며 은혜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안디옥교회의 확장 소식에 접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그를 안디옥교회의 책임자로 보냈다(행 11:22). 바나바가 바울을 찾게 된 동기는 안디옥교회의 활동을 감독하는 일에 있어서 동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방인을 복음화시킨다는 바울의 소명을 알고 있었으며, 아마도 시시 때때로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관하여 길리기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나바는 바울을 찾기 위해 다소에 가서 그를 설득하여 동역을 이루었다. 이후 바울은 기독교 활동의 주류에 가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바나바와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을 마칠 때 까지 동역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팀 선교(Team Mission)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 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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