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서신서 속의 선교

2020. 6. 19. 09:32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 서신서 속의 선교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바울의 서신서들을 연구함에 있어서 많은 신학자들이 단순하게 바울의 신학적인 측면만을 연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선교적인 관점에서 바울의 서신서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헤드런드(Roger E. Hedlund)는 말하기를 신생교회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를 단순한 신학적 논문으로만 다루는 학자들에 의하여 부당하게 연구되어 왔다"라고" 하였다. 전호진 은 바울서신은 교회가 처한 상황에 우선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현실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실천적이요 선교적이다"라고 말했다.

  바울이 기록한 13권의 성경 가운데 로마서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 이탈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예수를 ale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서신을 통해서 바울은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선교적 메시지를 실려 보냈다. 이 서신 속에는 인간의 죄 문제와 죄인에 대한 구원 그리고 성결한 삶과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봉사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써 보낸 로마서의 동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알리려고 하였다(15:24; 28-29; 19-21). 둘째는 자신이 전파하였던 복음을 완전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마도 로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관계 속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음을 천명하게 위함이었다.

  고린도서는 도시에서의 선교사명과 믿음을 타락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신생교회들의 저항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고전 1:11; 5:1; 6:1-11; 10:14; 고후 6:14).

  갈다리아서는 작은 로마서라고 볼 수 있는 기독교의 교리가 담긴 성경인데, 이 속에도 선교적인 내용들로 꽉 차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즉 율법과 은혜의 차이가 무엇이며 인간의 궁극적 구원은 자기 의를 가지고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2"1-21; 5:1-12).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의 의미들과 신생교회들을 위한 교회론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2:1-22; 3:6-10 4:1-16; 5:21-6:9).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이며, 인간의 성정을 가지고는 사랑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실제적으로 바울은 그가 강조한 "사랑"의 동사형인 "아가파오"를 아홉 번이나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 서신이 사랑으로 시작하여 (엡 1:4-6)1:4-6) 사랑으로 끝남을(6:23-24) 보여주고 있다. 사랑이야말로 선교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있고 능력 있는 선교사역이다.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으로서 선교사인 바울 자신이 육신의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간직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인내하며,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기쁘게(1:4, 24; 2:2; 4:1)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빌립보서 2:5-11에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도성 인신"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본체(μορψε)"의 표현은 바울이 쓴 헬라어 원어에 나타난다. , "동등(σα)"이라는 말은 중성으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후에도 신성은 그냥 존속하심을 뜻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신성을 강조한다. 온전한 신성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1:14; 2:9),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2:8).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마무리 지으셨다. 하늘의 문화권 속에서 인간의 문화권 속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 정수를 찾아볼 수 있다.

  골로새서는 이방적인 환경 속에서 오는 이단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보여 주므로 (1:18; 2:9), 신자들이 영적인 성숙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히 살아가기 위하여 바울이 기록하였다(1:28; 2:6-7). 골로새 교회의 이단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필로적 철학을 가진 유대인, 이교도의 철학도, 미드라 신자, 가현론자들, 에세네 금욕주의, 그노시스파 등 다양하다.

  바울이 골로새에 보낸 서신에 의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오늘날에도 선교 현지에는 수없이 많은 토속신 들과 다양한 이단들에 의해서 참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위협받고 있다. 바울이 행했던 것처럼 글로 쓴 서신을 통해서 모든 잘못된 신앙 사조들을 분명히 반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데살로니가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생교회들의 의심과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살전 4:13-5:11; 살후 2:1-12).재림은 우리 성도들의 승리의 잔치이다. 그러나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양한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24). 결국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선교를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팀 사역의 주역들에게 보낸 서신서이다. 이는 바울을 대신하여 사역을 감당하는 그들에게 지도력을 키우게 하기 위한 지침서이다(딤전 2:3-3:13; 5:1-22; 딤후 2:2; 1:5-9). 이들 목회서신들은 바울의 지상 생활을 마감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교회가 계속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도록 유익한 지침을 제자들에게 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빌레몬서는 바울의 친구인 빌레몬에게 개종자 오네시모를 부탁한 서신이다. 오네시모는 종이였으나 탈출한 자로서 로마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울은 이제 그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를 잘 부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서신서를 통해서 개인적인 관계 뿐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속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항상 복음에 대해 빚진 자 (1:14)”로 살았다.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선교사역의 요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