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서신서의 성격

2020. 6. 16. 19:13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 서신서의 성격

조귀삼 박사( 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초대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바울의 서신서들보다도 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한 문서는 없었다. 바울은 사역 중에 성령의 은혜 안에서 써 보낸 서신서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교회들에게 전달되어 깊고 넓게 선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였다. 바울 서신서 들이 읽히는 곳곳마다 기독교의 위대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의 서신서 들은 세계역사 속에서 새로운 사상이나 신학이 요청될 때마다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바울의 로마서의 한 구절(1:17)에서 새로운 구원을 깨닫고 전 세계를 요동치게 하는 선교의 역사를 이루었다. 또한 웨슬리(John Wesley)는 루터의 로마서서문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짐으로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창조하였다. 결국 초대교회의 바울 시대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바울의 서신서만큼 세계의 사상과 신앙에 영향력을 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서들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의 문서선교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바울 서신서들 속에서의 선교를 기술함에 있어서 먼저 두 가지의 전제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는 바울의 서신서들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성령님의 절대적인 영감과 감독아래 기록되었다는 것과 둘째는 바울의 서신서들을 역사신학이나 성경신학 그리고 조직신학의 입장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코로나로 힘들게 보내고 있는 모든 독자님들을 위해서 오늘은 바울 서신서의 성격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바울의 편지에 대하여 논의 하는 강의나 연구는 대부분 다이스만(Adolf Deissmann)의 편지(letter)와 서신(epistle)의 구분에서 시작한다. 또한 자이슬러(John Ziesler)바울의 글들은 신학적인 관점과 설교적인 관점이 아닌 편지 형태의 서신서이다"라고 분석하였다.이는 많은 바울의 글들이 개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 전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 한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제기된 주의 재림과 부활에 관한 교리를 답변한 글이었다(살전 1:2). 이러한 글속에는 바울의 사도직을 변호하면서 올바른 복음을 증거 한 것을 볼 수 있다(살전 1:6-9, 3:1-5, 4:12-20).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글에서는 교회의 분열 문제, 음행문제, 우상에게 드린 제물 문제, 부활문제(고전 7:1)와 악령과 이단으로부터의 성도가 보호(고후 1:15-2:11, 12:14-13:4)를 받아야 함을 위해 썼다. 특히 빌레몬서에서는 도망 나온 종인 오네시모를 옛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써 보낸 글이었다(1:9-15).

  바울의 서신서들에 나타난 편지의 성격은 글의 형식 자체는 개인들과 함께 그들 속에 내재한 다양한 상황들을 나누는 편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적이고, 교리적이며, 조직적인 필치로 구성된 성격의 서신이다. 물론 바울이 써 보낸 글들이 편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바울의 글은 일반적인 편지의 성격을 넘는 공적인 내용이 보다 깊게 내포되어 있다.

  서신서들이 비록 일반 지명과 인명을 수신처로 하여 기록했지만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교리와 삶의 실천 방향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이론에 근거하여 바울의 서신들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 권오현 박사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첫째의 특징으로는 바울 서신서의 내용은 일반에게 공개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며 주 대상은 일반대중이다.

  둘째 특징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다(살전 2:27; 1:2; 살전 1:1; 고전 1:2; 1-2절 등). 바울은 교회에 그의 서신을 써 보내면서 예배 시간에 읽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서신서의 서두와 결미에서 사도의 축복으로 시작되고(1:7; 살전 1:2; 몬3절), 사도의 축복으로 끝마친다는 것이다(15:33; 살전 5:28; 25). 교회에서 바울의 서신이 읽힘으로써 바울 자신의 언어보다 서신이 더 권위가 있다고 바울 자신도 인정하였다(고후 10:10).

  셋째 특징은 바울이 편지를 쓸 때에 사도로서 말하는 사도의 편지라는 것이다. 그는 사도로서 그의 신학적 입장을 세워 나가면서 서신서를 써 보냈다. 바울은 본인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고전 7:40)라고 말하며, 사도의 권위(1:1-6; 고전 1:1; 갈1:1로 사도의 임재(고후 13:10)를 대신하여 글을 써 보냈다.

  네 번째 특징은, 사도 바울 당시에 고도로 발달한 편지의 문학적 기교와 형태 그리고 구조와 문체를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체 때문에 서신서들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론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바울의 서신서들 중에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 10-13장은 변증 하는 형태의 사법적 수사학(judicial rhetorics)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는 칭찬과 책망을 섞은 권면의 편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신의 문체들이 바울 당시의 통용되던 편지의 문학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1세기에 바울의 서신서들을 읽는 사람들은 바울 서신의 구조들을 쉽게 이해하였다.

  마지막 다섯째는, 우리가 바울의 여러 서신서들을 읽을 때에 단순히 읽어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편집 과정에서 복음서 다음에 그리고 공동서신 앞에 넣어서 "바울을 가장 귀중한 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신약성경을 완성하였다. 즉 이것은 바울의 서신서들을 정경 안에서 읽어야 함을 말해준다.

  이상의 언급에서 우리는 바울의 서신서들이 개인적인 소식을 전하는 편지의 성격을 갖는 측면도 있지만, 이는 단순한 사신이 아니요 공적이며 교리적이며, 신앙의 실천적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매스컴이 발전한 시기는 아니었다. 비록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해서 닦여 있기는 했지만 그의 선교 커뮤니케이션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그가 써서 보낸 서신서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확고하게 변증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가르쳐 줌으로 수신자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적인 삶을 살도록 독려함은 어떤 선교의 방법보다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