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3. 16:23ㆍ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의 이방인 이해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1. 이방인의 위치
지금까지 필자는 바울의 선교를 유대인의 특권과 인류 구속의 장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방인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다른 모든 민족들을 일컬어서 이방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민족을 선민으로 규정하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부여된 호칭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생각은 그들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고 이방 종교의 혼합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방인에 대한 정의와 그들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시며, 바울은 그들 이방인에 대해서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
1) 이방인의 정의
이방인은 히브리어로 고임(םוֹנּ)이다. 그리고 70인역 에서는 에드노스(ἕθνος)와 라오스(λαὀς)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민족들’ 혹은 ‘열방’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비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우리가 현대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국가나 나라에의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나 종족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 용어는 선민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종족, 인종단체, 민족들로서 그들은 각기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신학적인 의미로는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다.따라서 선민의식 속에서 생활했던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을 항상 무시하는 배타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방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태도들은 구약시대보다는 신약시대에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구약의 족장 시대에는 이방인에 대해서 심한 장벽을 구축하지 않았다. 비록 이방인과의 통혼이 금지(출 34:15)되었으나 만약 전쟁 중에 포로된 여인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몇 가지 규례를 만들어서 허용하였다. 다윗 왕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여부스 사람이 소유한 집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이는 이방인의 소유와 권리를 그의 점령지에서 그대로 인정해 주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삼하 24:16-25).
인류 복음화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도 종의 임무를 설명하면서 이방인(사 42:6; 49:6; 56:6,7)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되어 선교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선지적인 언급이다.
비록 이와 같은 노력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유대인의 사고는 선민의식 속에서 배타적인 태도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특히 포로 시기 이후에는 이러한 배타성이 더욱 조직화되었다. 이방인과의 결혼의 부당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명세하라고 말하고 있다(느 13:23-25). 말라기 선지자는 이방신의 딸과 결혼한 유대 백성을 여호와의 장막가운데에서 끊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다(말 2:11-12).
이방인은 설령 개종을 하여 유대교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전의 성소 안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방인의 뜰’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는 이방인 개종자들을 유대인의 전통적인 종교적 관습의 지킴이 없이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입교시키는 것에 대한 사상이었다.
이와 같은 유대인들의 사상은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이방인과 함께 하는 식사도 불결한 것으로 여겼다(행 10:28; 11:3; 요 18:28). 심지어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을 발견하고 꽁무니를 빼다가 바울 에게 야단을 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갈 2:11-14).
바울은 이방인은 돌감람 나무로 표현되어졌다.. 이는 구원에 있어서 반드시 참 감 남 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2) 이방인의 운명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전 인류를 향하신 그분의 은혜로운 행동 이셨다. 구약의 성경은 세계의 모든 족속들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 인류에의 관심은 열국의 목록(창 10장)과 노아와의 언약(창 9:9,10),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2:1-3) 그리고 계시의 극치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인류에의 영원히 인 치신 언약(고전 11:25)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만의 독점물이 아니며 모든 인류의 운명과 관계되어있다.
구약의 많은 부분들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속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표적인 사람을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한 민족(수 24:2)으로부터 열방을 위한 진정한 대표자로 부름을 받았다. 크래프트(Kraft)와 같은 선교신학자는 하나님은 이교적인 풍토 안에서 그의 구원의 과정을 시작하였다고 언급하면서 아브라함, 멜기세댁, 아비멜렉, 이드로, 발람, 욥 그리고 나아만을 이스라엘 외에 하나님이 구원 신앙을 불어넣어 주었던 사람들 중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그의 구속에 참여시킴과 아울러 그의 성업을 이룰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즉 이방인의 존립 목적은 이스라엘의 교정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출애굽 당시에 바로의 마음을 강퍅(출 7:13)하게 만듦으로써 종 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 땅에서 축출시킴으로써 결국 약속의 땅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볼 수 있다. 바로와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그의 완악한 마음이 하나님의 전능성을 애굽 땅에 나타낼 기회가 되었으며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족속들을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처럼 구원의 대상으로 처리 하셨다. 이에 관하여 헤드런드(Roger E. Hedlund)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선택은 만민을 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원수 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 주위의 앗수르와 애굽과의 관계를 정립해 놓는 성경의 구절들(사 19:24,25)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둘째는, 이방인들을 선민 안으로 수용할 가능성을 항상 언급하였다. 즉 이방인들이 할례(출 12:48)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을 먼저 징계하심으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신실하게 구원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때로는 주변의 국가나 민족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사 10:24,25). 마지막 네 번째는, 이방인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활동들을 증거 한다. 하나님의 활동은 그 민족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고 포로(렘 29:7, 단 2:27-30)가 되지만 결국 그의 백성을 견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경험토록 만들어 증거 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고 교제하시기를 원하신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진리를 알지 못하고 헤메는 가운데에서도 자기 백성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여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취가 도성인신 사건으로 나타났음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결국 방임이 아닌 궁극적인 견인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태도이기도 하다.
3) 사도 바울의 이방인 이해
바울은 이방인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비록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지만(갈 1:16) 이방인에 대한 그의 초기의 태도는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 자신이 유대교에서도 엄격한 바리새주의자로 철저한 선민사상과 율법주의 가운데에서 이방인을 처다 보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야말로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행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로 여겼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울의 사상들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이해뿐만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자들이 이방인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바울의 사역을 보면 초창기에는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변증적인 사역을 실시하였으나 점차적으로 이방인들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행 13:5,14,44-49).
바울의 이방인 이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류 구원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알았다. 따라서 복음이 이제는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의 지녀가 될 수 있다는 선교신학을 증거 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에게 복음의 효력은 동일하게 미치게 됨을 알았다(롬 1:14-17). 결국 바울은 이방인을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로 알게 되었다(엡 2:11; 3:21).
바울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게 된 목적임을 알았다. 하나님의 사랑(고후 5:14)과 인간의 비참함(롬 11:18-20)이 그의 선교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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