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신학의 구원 범위의 유대인과 이방인

2020. 7. 24. 14:03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 신학의 구원 범위의 유대인과 이방인

조귀삼 박사( 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바울은 두 종류의 세계에서 활동하였다. 따라서 바울 이야말로 이방 선교사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말하기를

  기독교가 온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독특한 인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여기에서 독특했다는 것은 그가 두 세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적으로는 철저히 유대인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로마와 헬라를 알았다. 하나님께서 두 세계간의 다리가 되고 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방편이 되는 다리가 될 자로 준비시킨 자가 과연 여기에 있다.

  이제 필자는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심 주제에 들어가고자 한다. 이는 바울의 인류 구원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이방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로마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언급하고 있다. 로마서의 9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사의 물줄기에 대해서 바울은 논증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에서부터 이방인에게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영원히 이스라엘을 버렸는가? 바울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이방 선교도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의 구원의 회복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1.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 바울은 그럴 수 없느 니라”라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세 가지 점에서 이스라엘이 택한 백성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구원의 증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베냐민의 지파인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롬 8:29)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으로 알았다. 두 번째는, 엘리야 시대(왕상 19:10,14)의 예를 들어서 남은 자(왕상 19:18)를 들어서 보존(구원)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했다. 바울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믿음을 따라서 택함을 받은 구원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유대인들 가운데에서도 은혜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며 결국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언약백성의 회복은 일시적인 배척을 넘어설 때에 이루어질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님을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이 받아드림은 생명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열망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결코 멸망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일곱 가지 영적 특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최갑종은 바울의 정체성에 대해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물줄기가 이방인 중심이 아니라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자신의 이방인 선교도 이스라엘 민족의 포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각오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로마서 11장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125-32은 바울이 1111절부터 특별히 논증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과 이방인의 구원,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종국적 회복 문제에 대한 결론일 분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바울이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과 관련하여 논증해 온 모든 것의 결론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의 구원의 완성은 이방인의 수가 충만하게 찬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들여도 그게 그들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크나큰 은혜 때문이라는 점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깨우치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채운 후에는 회복시키시는 주권적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신 것을 볼 수 있다.

2. 이방인의 구원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실족은 두 가지의 사건을 가져왔다. 첫째는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려고 함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 가운데에서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두 번씩이나 이방인에게로 돌아섰다(13:46; 18:6, 28:25-28).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특수한 지위를 밝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9:15; 1:16; 2:7-8; 3:8). 그리고 그 직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바울의 이러한 선언은 이방인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민족들이 시기 나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의 의도를 간과하지 말 것을 이방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은 동족인 유대인들로 시기 나게 하여(11:1)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고자 하려는 의도(9:1-4; 10:1)였음을 알리고 있다. 이와 같은 자들을 은혜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람지음을 한탄하시고(6:6) 이방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함(12:1-3)이 이스라엘 백성(출애굽을 통한)을 선택했다면 바울의 시대에는 유대인의 불순종은 이방인에의 구원 초대로 이어짐을 말한다. 결국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순종과 불순종의 관계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배척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열려지게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가운데서 아브라함의 축복들이 이방인들에게 넘치듯 부어지게 될 것임을 언급한다(3:14).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을 향해서 엄한 충고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너희도 아끼지 아니하리라(11:21)”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방인의 구원의 상태는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