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이후 선교신학

2020. 7. 30. 18:50선교학 강의

사도 바울 이후 선교신학

조귀삼 박사( 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현대의 선교 신학을 논함에 있어서 "선교 신학의 정의"를 언급함이 중요할 듯하다.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관계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학(Missiology)은 선교신학을 포함해서 선교역사, 선교문화 인류학, 선교전략, 비교종교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선교 신학을 어떻게 정의하여야 하는가? 본질적으로 선교신학은 선교에 관한 주제들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지칭하는 학문이다. 선교신학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아더 그러서는비기독교인들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사역을 위하여 가진 하나님의 관심으로 특징지어진 성서에 기초한 신학적인 성찰 체계"라고 말한다.앤더슨도 선교 신학을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세계 선교의 동기, 방법, 정책 그리고 목표를 결정짓는 기본 원리와 전제 조건에 대한 연구"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의 선교 신학을 보았을 때에 많은 선교적 주제들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바울 선교의 특징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임과 아울러 십자가의 구속적인 선교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선교의 방향성을 제공해 준다.

  바울의 순교 이후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 속에 국교로 자리 잡았다. 기독교 선교는 로마제국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도전을 주어 체질을 바꾸어 놓았다. 이후 야만인이라고 표현되는 이방 세계를 복음으로 점령하여 세계에서 가장 신사적인 민족들로 바꾸어 놓았다. 패트릭(Patrick)에 의해서 켈트(Celtic)족이 변화함으로 말미암아 유럽 전역이 환한 불빛 밑에 놓이게 되었다. 마이서(Gough Meisser)는 말하기를 세계는 원시 켈트족에게 빚을 졌다"라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가장 활발한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켈트족의 변화로 고올 지방, 네덜란드, 독일, 북부 이탈리아로 전진해 가면서, 가는 곳마다 십자가의 승리가 모든 토속신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중세를 지나오면서 가톨릭의 선교는 유럽 지역은 물로 아시아 지역에도 확장되어서 필리핀이 마젤란의 탐험 중에 발견되고 신부 레가스피(Legaspi)에 의해서 선교의 영토를 넓혔다.

  특히 가톨릭 선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네 개의 교단에 의한 선교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즉 아시시(Assisi)의 프란시스(1182-1226)가 설립한 프란시스코 수도회, 스페인 출신 수도승인 도미니크(1170-1221)가 세운 도미니칸 수도회, 1256년 교황 알렉산더 4세가 창립한 어거스틴 수도회, 1540년 스페인의 귀족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가 바로 그것들이다. 또 하나는 전략적인 선교이다. 이는 포교 성성(Sacred Congregation for the Propogation of the Faith)의 선포이다. 이를 통해서 카톨릭은 세계 선교를 전략적으로 감당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교회는 중세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접하게 됨으로 교리 신학의 급진적인 발전도 가져왔다. 루터의 뒤를 이어서 죤 칼빈, 쯔빙글리 같은 신학자들이 비록 당면한 교리적인 체계화 작업 때문에 선교 신학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음에도 진젠돌프가 이끌었던 모라비안들에 의해서 선교는 활력을 놓지 않았다. 이후 선교사였던 웨슬리의 부흥의 물결은 윌리암 케리를 인도에서 40여 년 동안을 선교하여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호칭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 일어났던 현대선교의 운동은 미국을 일으켜서 심슨(A.B Simpson)같은 미국의 선교전략가를 낳았다. 참으로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세기가 되었다. 이 불길은 계속 타올라 21세기가 되었지만 선교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교회는 이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