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0. 08:49ㆍ선교학 강의
신 복음주의 선교신학
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교수, 현 세계다문화진흥원 원장)
신 복음주의 선교관 이란 복음주의 선교관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된 선교관이라고 필자는 규정을 먼저 한다. 즉, 에큐메니칼 선교관은 사회 해방 전체를 표방하는 대전도 개념이며, 복음주의 전도관은 마태복음 28장의 지상 명령에 국한 시킨데 반하여 신 복음주의 선교관은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를 절충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교관은 선교를 타문화권 전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도와 사회봉사를 선교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다. 영국의 죤 스토트(John Stott)는 에큐메니칼 선교를 비판하면서도 에큐메니칼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의 양극화를 절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 전도와 사회 활동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선교관을 주장한다. 또한 에큐메니칼 선교관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교회는 ‘선교’란 말이 좋을 것 같으나 실상은 과장이다. 교회는 봉사의 단체일 뿐만 아니라 예배의 단체이며, 예배와 봉사가 서로 소속 적이긴 하지만 혼돈의 성질이 아니다. 이 말은 교회가 곧 선교라는 에큐메니칼 선교관을 부정한다.
로잔 대회 이후에 복음과 사회적 책임을 가지는 복음주의 선교관 정립을 위해 후속 조치로 모인 1982년 그랜드 래피드(Grand Rapids)의 협의회에서는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사회 활동은 복음 전도의 결과 이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는 수단이며,, 사람들이 새롭게 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물론 전도를 권 유해야 하듯이 사회봉사도 교회가 권장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 활동은복음 전도의 교량적 역할이다. 사회 봉사 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한 편견의 복을 허 물게 하고 닫힌 마음 문을 열도록 한다. 셋째,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은 서로에게 유 익을 끼치는 동반자와 같다. 그것은 바지의 두 가랭이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예수님의 사역에도 케리그마와 디아코니아가 병행한다.
허버트 케인(Herbert Kane)도 선교를 영혼 구원과 사회 봉사로 해석한다. 그는 “복음주의는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하여 영혼 구원은 잘하지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느린 방면, 자유 주의자들은 사회 봉사에서는 잘 하지만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양자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독일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작성한 프랑크푸르트 선언도 “선교, 설교, 성례, 봉사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증거하고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복음주의가 가진 약점을 보완해 줌으로써 다원적 의견을 절충하는 효과를 가져왔던 선교관이 신 복음주의 선교관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것을 총체적으로 결론을 지의면서 우리는 선교를 정의해야 하겠다. 선교란 타문화 권에서 복음 전도를 위한 교회의 모든 활동, 즉 교육 사업, 의료 사업, 개발 사업, 구제 사업 등 모든 교회의 봉사 활동을 선교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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