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9. 16:23ㆍ선교학 강의
우리 교회의 좋은 선교사 만들기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며 사역 현장에서 승리한 소식들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들려질 때에 선교의 기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성도들의 선교 동참은 늘어나게 되고 종국에는 교회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선교를 위해서 교회는 좋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선교사란 어떠한 사람인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하나님은 오직 한 아들을 가지셨고, 그 아들을 선교사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최고의 선교사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의 문화권에서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의 문화권으로 초림 하셨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사역 도중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다. 이 명령을 따라서 초대교회 이후 세계의 모든 지역에 주님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따라서 선교의 명령은 교회가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할 필수적인 사역이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주님의 명령을 수종 들어야 하는가?
필자는 오늘 한국교회의 선교 천년을 위해서 선교사의 자격 문제를 기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할 때에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시키는 사역이 되며, 선교 현장에서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은 결국 선교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의 직임이 막대할수록 교회는 양질의 선교사를 파송해야 할 전략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1793년 영국의 윌리엄 케리가 인도에 선교사역을 시도할 때만 하더라도 선교사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해외 사역의 동경과 영웅주의적 신앙의 자세야 말로 선교사의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이미 선교지는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문명의 충돌, 자민족 중심주의에 따른 배타적 문화의 출현, 국제관계의 이해득실에 의한 정치적 변화, 세속주의에 따른 물질만능주의 같은 다양한 현상들이 내재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증거하고 복음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선교사의 자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대한 세계선교 역사를 기술했던 스티븐 니일은 ‘나는 다음과 같은 확신을 피력해야 할 것 같다. 선교지의 어려움은 언제나 국내 교회 사역의 어려움 보다 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결국 한국교회가 양질의 선교사를 육성하여 파송해야할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는 사역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며, 다음은 선교지의 어려운 사역 여건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서 성공적인 결과를 맺는 것이 선교를 공유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어서 교회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좋은 선교사의 자격을 허버트 케인의 이론을 빌려서 설명하고자 한다.
1. 건강한 선교사
건강은 인간의 삶에 기본이 된다.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챙길 수 없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지는 우리와는 다른 기후 조건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기후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지난 여름에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이집트의 남부의 룩소르, 아수완, 아부신전이 있는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곳의 기온은 섭시50도를 웃도는 기후로 마치 불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또한 동남아의 기후들을 생각해 보자.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은 거의 여름 날씨가 지속된다. 비가 올 때가 많아서 다습한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와 다른 기후를 가진 선교지에서의 사역은 건강한 몸이 아니고는 버틸 수 없다. 필자는 서구와 한국의 선교사들이 건강 때문에 사역을 하지 못하고 중단하여 귀국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건강한 신체를 가져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선교지 의료시설의 빈약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교지는 종합병원 같은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의료시설이 갖추어진 지역이라 할지라도 낙후된 의료진과 의약품 등으로 인해서 질병을 재 때 발견하지 못하거나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선교지에서 철수하거나 선교사 가족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선교사의 건강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심리적 안정성을 갖춘 선교사
심리적 자질이란 인격적 특성을 말한다. 인격적 특성은 사역의 역할에 따라서 중요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인격이 잘못 되었을 때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선교지의 공동체는 국내의 아파트 위주의 국내 주거 문화와는 달리 개방되어 있다. 선교본부나 사역지 주변을 중심으로 공동주택 단지를 이루며 생활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됨으로 인격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상호 검증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간인 이상 완벽한 인격적 특성을 갖는 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선교지에 적합한 인격적 특성을 소유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감정적 안정이다. 감정이란 분위기에 따라서 기복이 심한 것을 말한다. 특히 선교지에는 문화가 다른 환경 속에서 심한 스트레스와 피곤이 시간마다 겹쳐 온다. 사역자는 외부에서 받은 어려운 요인들을 가정에서 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습성은 급기야 부부간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선교지의 동료와의 관계, 선교지의 성도들 간의 관계를 파괴하기까지 이른다. 따라서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두 번째로 감정의 안정을 위해서는 유머 감각을 익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선교지에서는 심각한 상황을 유쾌하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머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활력소를 주는 보약과 같은 것이다. 유머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건전한 농담을 하는 것도 분위기의 반전을 가져올 수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서양 사람과 한국 사람의 다른 점은 유머의 차이 라고 생각된다. 서양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한다. 심지어 극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자연스러운 농담을 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전통적인 유교 문화와 남북 대치의 문화, 그리고 군사문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대화 문화 보다는 과묵한 문화에 길들여 있어서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 오히려 속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의 문화와는 부합하지 않지만, 적당한 유머 감각을 익히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 문화 적응이 가능한 선교사
필자가 연구한 문화란 ‘일단의 사람들이 장기간의 공동생활을 통해 체계화 되어 나온 관습’이라고 정의 내린다. 문화가 되는 요소는 집단화된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관습 들이 체계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선교사는 문화 적응자이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들은 단일 문화적 요소 안에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생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문화에 대해서 이해의 폭이 넓지 못하다.
필자의 선교 경험에서도 문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필리핀 바기오지역에서 북쪽으로 가면 산악 지역이 많이 나온다. 그곳의 식사 습관은 식탁에서 수저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어느 날 친구 사역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을 때 양념하지 않고 닭을 통 채로 삶아 놓은 음식이 나왔는데, 하필 나의 그릇 에는 닭의 머리 부분이 배당되었다. 비록 눈은 감고 있는 닭 머리였지만 맨손으로 그것을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일 문화권에서 성장한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우리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의 문화는 미개한 것이기 때문에 당장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들은 배타주의를 만들에 선교지에서의 적응을 방해한다.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 서구의 선교에서 문화 적응에 실패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서구 문화의 강제적인 이식으로 ‘숨겨진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의 숨겨진 문화란 교회 생활의 문화와 자신들 공동체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교회에 와서는 서구의 문화를 따른 것 같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의 문화 보존에 힘씀으로 식민지주의가 끝났을 때에는 ‘서구여 가라(양키 고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문화적응에 있어서 우월감의 배제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선교지의 문화나 생활상은 한국의 것과는 다르다. 생활용품의 종류만 해도 그렇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한국은 모든 제품들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보자. 선교지 대부분의 차량은 값이 비쌀 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고물들이 많다. 한국선교사들이 이런 차를 탈 때마다 선교지의 뒤떨어진 상황들을 비하하기 쉽다. 이러한 비하의 감정은 선교지의 사람들, 문화들, 환경들에게 까지 투사하기 쉽다. 그러나 문화는 서로 다를 뿐이지 우월한 지위가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장 고전적인 용어를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생각해야 하겠다.
4. 영적 자격이 있는 선교사
선교사역은 영적사역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기 이전에 성령 충만의 열매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즉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지바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선교사의 영적 자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온다. 니고데모는 당대의 종교 지도자로서 율법과 교리와 세상 지식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교사의 자질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회심을 통한 중생의 경험이다.
두 번째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들 수 있다. 선교사의 주된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기독교 세계의 사람들에게 증거 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성경이다. 선교사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에는 이교도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길 무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견해는 선교사로 파송될 모든 사람들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마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학교 과정을 통해서 더 깊은 성경의 지식과 하나님의 선교적 뜻을 알게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결단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단들마다 제도적인 선교사 파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단에서 파송을 받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훈련을 마친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
세 번째는 영적 승리의 능력을 가져야 하겠다. 선교지의 상황은 이교도나 무신론자 그리고 타 종교의 혼합 주의자들과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다. 만약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선교사역은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같은 예를 찾아야 하겠다. 바나바와 바울이 시작한 선교여행은 세계선교의 시험대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들이 구브로섬의 바보에 이르렀을 때에 바예수 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이었다. 이때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바예수를 꾸짖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맹인이 되게 하였다. 이 사건은 기독교의 세계화에 있어서 첫걸음을 내딛는 선교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영적 대결이었다. 선교사는 이러한 바울의 경험을 선교지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5. 수준 있는 학력을 갖춘 선교사
선교지의 지적 능력이 달리지고 있다. 현대 선교가 시작될 때만 해도 선교지에는 대부분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1세기 지구촌은 기초교육인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이 체계화되어있다.. 이러한 학력의 변화는 선교사에게도 고학력을 요구한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요건은 한국 선교사의 신학교육 시스템이다. 전임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학력은 다음과 같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신학전문대학원 과정인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을(M.Div)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후 신학석사과정(Th.M)과 박사과정(Ph.D)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박사과정까지 마쳐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현대의 선교 현지에서의 점점 높아지는 학련 인플레 현상은 자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에게도 자신들을 가르칠 수 있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교사의 고학력을 추구하는 현상은 대부분의 선교회를 통해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인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들도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역자를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은 선교지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님으로서 선교의 자생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고학력을 지닌 선교사의 파송은 한국교회의 자랑이기도 하다. 필자가 고문으로 있는 FM&C 선교회는 컴퓨터와 IT 분야의 높은 기술력을 가진 선교단체이다. 이 단체는 이미 외국에 컴퓨터 관련 연구소와 소규모의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전문 분야에서의 높은 기술력과 지식은 선교지에서 그들을 교육하고, 지도하기 때문에 환영을 받게 된다.
고학력 선교사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직업이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일 것이다. 그들은 국내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고소득을 뒤로한 채 열악한 선교지에서 헌신된 삶을 살기 때문에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기도 한다.
6. 분명한 선교의 동기를 가진 선교사
선교사역에 있어서 동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동기가 불분명 하거나, 불순한 동기를 가진 선교사는 선교사역에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게 된다. 선교신학자 베르카일은 불건전한 동기를 이야기하면서 상업적 동기와 교회 식민지주의적 동기를 들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19세기와 20세기의 서구선교의 잘못된 동기들을 꼬집는 표현으로 생각된다.
서구 선교학자의 견해이지만 한국 교회도 귀 기울여야 할 명언이라고 본다. 간혹 선교 현지에서 동기가 불분명한 선교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 영어권 선교지를 중간 기착지로 삼는 경우이다. 물론 유학생활을 통해서 공부와 선교사역을 동시에 할 수 있다. 하지만 동기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선교 전략상 선교사의 거주 여건이 문제가 되어 비자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될 경우에는 문제 될 수 없다. 그러나 공부를 목적으로 선교지에 나와서 사역은 하지 않는 상태로 선교사의 타이틀만 가지고 있다면 선교 동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오늘의 한국 교회 선교를 위해서 바람직한 선교사 상을 그려 보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지향점을 제시하는 선교학자의 의견이다. 위대한 신학자인 칼빈은 ‘너희가 진정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먼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준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인간은 누구도 없다. 즉 모든 조건에 충족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선교사의 기준도 이에 해당된다. 선교사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말씀과 기도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직 널리 증거 되지 않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경계를 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사가 수적으로는 30,000명이 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러한 수적 자부심과 함께 선교사의 질적 문제도 검토해야할 시기가 된 것 같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양질의 선교사 파송은 교회의 선교자원 동원과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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