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0. 15:59ㆍ선교학 강의
중도포기 없는 선교사 관리
조귀삼 교수(한세대 선교학)
들어가는 말
선교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임이다. 그러나 모든 선교사들이 끝까지 그 소명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중도에 사역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선교사들을 보기도 한다. 한국교회 파송 선교사가 22,000명이 넘는 현실 속에서 한 번쯤 짚어 보아야 할 주제가 바로 선교사의 중도포기 문제가 아닐까. 실제로 선교사들이 중도에 사역을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먼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또한 선교사를 파송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선교의 불을 소멸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시하며 필자는 중도포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대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분명한 소명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는 소명이다. 선교사는 선교에 대한 소명으로 불타야 한다. 선교에 대한 소명이 불확실할 경우, 하던 사역을 멈추고 선교지에서 이탈할 우려가 커진다.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한다. 이를 두 가지로 분류하면 일반적인 소명과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선교사라 할 수 있는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소명을 받았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 후 바울은 오랜 기간 선교의 길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바나바의 동역 제의를 받아들여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에 성령님에 의해서 파송을 받게 된다. 이후 세 차례의 선교여행과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까지 잡혀가 순교하기까지 그의 소명은 한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 초창기에는 바울과 같은 부르심을 인해 열정적으로 사역에 도전한다. 가족과 주변의 반대를 무릎 쓰고 선교지로 달려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일이 닥치고 생각만큼 사역이 잘 진행되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선교의 목표가 흔들리기 쉽다. 특히 선교지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선교사로서의 부르심과 사역의 성취에 대한 확신이 점점 소멸되어 종국에는 사역을 포기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선교의 소명이 약해지거나 사라질 때 우리는 제임스 찰머스(James Chalmers)의 사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세기 뉴기니 섬에서 사역했던 이 시대의 위대한 선교사 중 하나이다. 제임스 찰머스는 주일학교 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접했던 피지 선교사의 선교편지에 감동을 받아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작정하고 서원하였다. 그리고 서원 10년 만인 1866년 찰머스는 아내 제인(Jane Chalmers)을 데리고 런던 선교회의 파송 선교사로서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찰머스 가족은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인 남태평양의 라로통가를 떠나 1877년 뉴기니에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만 해도 뉴기니는 선교사가 안심하고 사역하기 어려운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다. 그곳은 식인습관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인간의 해골을 가지고 있는 것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길 만큼 문명과 동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찰머스 선교사 일행은 도착 직후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하였다. 첫째는 기후 조건의 어려움이었다. 뉴기니의 지형은 저지대의 습지 평야와 섬의 동부에서 서부 인도네시아까지 펼쳐진 높은 산으로 되어 있으며, 해발 1,500-3,000m 지역에 넓은 골짜기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국토의 70% 이상이 빽빽한 열대다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기후 조건으로 인해 찰머스 선교사의 아내 제인은 뉴기니에 도착한 지2년 만인 1879년에 숨지고 만다. 이후 찰머스는 다시 결혼하였지만 두 번째 부인 역시 열병으로 인해서 순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챨머스 선교사가 겪은 두 번째의 어려움은 살해의 위협이었다. 그 당시 뉴기니는 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식인 습관이 존속했다. 파푸아뉴기니에는 70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 따라서 부족 간의 갈등과 전쟁은 자연히 살인을 불러오게 되고, 낯선 이방인인 선교사는 모든 부족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원주민들과의 친밀함을 유지하였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챨머스 선교사에게 ‘타메이트’‘타 메이트’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이는 ‘권위적인 다른 선교사와는 달리 모든 사람과 어울리며 존경을 받는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나 존경받았던 챨머스 선교사도 1901년 봄, 젊은 동역자 톰킨즈(Tomkins)와 함께 사나운 식인 마을이 위치한 플라이 강(Fly River)을 정탐하던 중에 원주민들에 의해 살해되고,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 발견됨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세계는 챨머스의 순교 앞에 경악했지만 찰머스 선교사 자신은 항상 그것을 준비하며 살았던 강한 선교사였다.
챨머스와 같은 강한 선교의 마음은 분명한 소명에서 나온다. 결국 선교사를 모집하고 훈련시켜 선교지로 보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분명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 최종 점검하고 파송을 해야 중도포기가 사라질 것이다.
2. 충분한 선교 후원
두 번째 이유는 재정적 요인이다. 한국 선교사들을 위한 후원 체계는 매우 빈약한 현실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본국의 직장인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비용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족하고 연약한 보수마저도 후원 체계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교단과 파송 기관이 든든하여 선교사들을 위한 정책이 잘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래도 비교적 원활한 후원 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 선교단체에는 선교 지원자가 그의 모금활동을 지속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서장이 있다. 그들은 사역자들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헌신되어있기 때문에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도전을 주면서 지속적으로 선교사를 돕도록 만든다. 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말씀을 도전의 무기로 활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이와 같은 후원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사역지로 파송받거나,, 믿음으로 도전하는 선교의 길을 선택해 나간다. 이러한 신앙 선교(Faith Mission)를 통해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후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때, 선교 현지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선교지에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에 이웃의 누구에게도 필요한 재원을 차용할 수 없다. 결국 최악의 경우 재정적인 어려움은 선교를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대 선교에 있어서 재정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헤셀 그레이브는 그의 저서 『『현대 선교의 도전과 전망』에서 두 가지의 선교재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째로 선교비는 앞으로도 계속 치솟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선교지의 인플레이션이 상황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선교비의 인플레이션을 위해 교회 지도자들은 더욱 열심히 청지기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한 선교 지도자들은 보다 높은 책임감으로 응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셀 그레이브의 말을 빌리자면, 선교 인플레이션은 선교현장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선교 재정 정책을 교회가 세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회가 해외선교를 위한 사역비를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임이 분명하다.
허버트 케인은 선교 후원금을 모금해 주는 교단을 기독교연합선교회(Christians and Missionary Alliance)라고 말했다. 따라서 필자가 연구한 A.B 심슨(A.B. Simpson)의 기독교연합선교회의 재정정책은 철저한 신앙선교의 지침을 따르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후원되어진다’는 원리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도가 십일조나 기타 헌금을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일은 지역 교회의 목사님에 의해서 설교시간이나 강의 시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이와 같은 일이 성경적인 방법일 뿐만이 아니라 금전사용에 대한 영적 원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강조점은 믿음에 의한 헌금 작정으로 이어진다. 심슨은 선교 헌금을 ‘믿음의 서원’ (Faith Pledge)이라고 불렀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금을 드린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 주신다는 절대적인 믿음에 의해서 출발된 신앙이다.
선교사 바울은 선교비가 충당되지 않을 때에 자비량을 통해서 궁핍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따라서 그는 “부하고 궁핍한 경우에 처해보는 삶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고 고백한다. 이러한 바울의 삶의 비결은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일전에 이탈리아의 로마에 들렸을 때에 바울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순례객들은 그가 순교한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선교사에게 선교비를 충당하게 만드는 선교적인 교회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비우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교회야 말로 소외되고 영적으로 공허하고 삶에 지쳐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선교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만드는 기독교 최대의 과업이다.
3. 건강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
세 번째 요소는 선교사들의 건강 문제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지로 출발할 때에 신체검사를 받고 최선의 건강을 유지한 채 나아간다. 그러나 선교지는 선교사가 태어나 자란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기후나 삶의 조건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로 인한 신체적인 문제, 건강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된다.
선교사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건강이 나빠질 때 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역지는 대부분 한국보다 뒤떨어진 의료 체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쉽사리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참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 병을 키우게 되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필자의 지인 중에도 건강 문제로 인해 중도에 사역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대 선교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인도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William Carry)나 미얀마 선교 대부인 아도니람 저스든(Adoniram Judson) 같은 분도 선교지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둘씩이나 잃었던 아픔이 있다. 또한 중국 선교를 감당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역시 가족의 건강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선교사 가족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의료기관을 통해서 정기적인 검진은 물론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건강에 있어서 또 하나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영적 건강이다. 선교지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는 동안 성령의 역동적 삶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찾아오기도 한다. 나약한 영적 관리는 신체적인 부분에까지 손상을 입혀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파송 교회와 파송 기관에서는 선교사들이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바쁘고 분주한 사역 가운데서도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신앙 서적, 음악(CD), 동영상 자료 등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충전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선교지나 제3국 등지에서 정기적인 만남과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자존감을 고취시키고 피로를 풀어주는 전략도 필요하다.
4. 선교사의 자녀 교육
네 번째 이유는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문제이다. 사실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심각하다. 사역을 하는 당사자인 선교사 부부는 선교적 사명감으로 인해서 고생하면서도 모든 상황들을 감내할 수 있지만 자녀들의 경우는 다르다. 또한 교육이란 한 번 기회를 놓쳐 버리면 다른 문제들을 초래함으로써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서구 교회의 경우 선교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교지 거점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선교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문제를 시원스럽게 풀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사역했던 필리핀에는 미국인을 중심으로 서구 선교사 자녀들이 다니는 페이스 아카데미(Faith Academy)가 있으며, 한국 선교사 자녀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기관들은 대부분 본국의 교육 환경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교과 과정을 가지고 있다. 결국 타문화권에서의 교육이라는 제한된 요소들 속에서 비교우위를 계산하다가 사역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경우도 가끔 보게 된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자녀들을 한국에 보내 교육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선교사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는 자라나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냉담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들의 교육열과 자녀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파송 기관은 선교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한 재정도 고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첫 딸은 한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대전의 생명과학연구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선교지에서 국내로 돌아온 자녀를 받아줄 학교가 없었을 때, 심한 좌절감을 겪으며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한동대학에 선교사 자녀를 위한 특별 전형이 있었기에 필자의 딸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교의 재정과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에서도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한동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이 있다는 것은 선교학자로서도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한동대학교와 같은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을 위한 과정과 학교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5. 파송교회와의 불협화음
다섯 번째는 파송 기관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불협화음이다. 선교사와 파송 기관과의 불협화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일컬어진 윌리엄 케리와 허드슨 테일러도 파송 기관과 결별하고 신앙 선교를 선택해 선교를 하였다. 이러한 선교사와 파송 기관과의 갈등 문제는 오늘날에도 상존함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파송 기관은 선교사의 모든 사역을 본부의 정책에 따라 움직여 주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선교지와 파송 기관 책임자의 선교전략 사이클이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불협화음은 어쩔 수 없이 선교사와 파송 기관을 갈라서게 만든다. 그리고 파송 기관은 선교사의 퇴출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다. 오래전, 필자가 아는 한 태국 선교사는 파송 기관인 본국 교회의 목회 정책에 따라 귀국할 것을 종용받았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사역의 지속성과 효율성 문제로 당장 귀국을 하지 못했고, 교회는 불복종을 이유로 교회의 선교사 직임을 박탈했다. 이러한 안타까운 일은 선교지에서 가끔이지만 경험하게 되는 현실이다.
선교사를 해외 선교사역자로 파송했다면 파송 기관은 장기적 안목에서 선교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선교사가 현지에 적응을 마치기까지는 개인의 노력은 물론 선교 본부의 후원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선교사역을 위해 파송된 선교사를 국내 사역을 위해 철수시킨다면,, 아예 애초부터 파송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6. 주변 지인들로 오는 부정적인 요인들
마지막 여섯 번째 경우는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 인해서 오는 갈등이다. 특히 사모님들은 선교의 소명이나 마음을 점검하지 않은 채 남편을 따라 무작정 선교지로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기나긴 갈등의 시간을 거쳐 심지어 사역을 포기하게 된다.
아내가 선교지의 환경이나 선교사의 사역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남편은 심한 갈등과 부담 가운데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단회적인 불평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지속적인 반대로 이어진다면 남편의 마음도 따라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는 가족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선교사역의 길이 축복받는 길임을 먼저 인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사 부부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파송 기관이 노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 역시 선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며 귀한 사역인지 공감하며, 선교사들이 자신의 사역에 자긍심을 느끼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나가는 말
필자는 지금까지 단편적이나마 선교사들의 사역 중도포기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았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중도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선교에 대한 마인드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파송 기관과 교회는 선교사들을 선교지로 파송하기 이전에는 충분한 사명 확인과 훈련을 통해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파송 이후에는 충분한 후원과 관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사역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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