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9. 10:47ㆍ선교칼럼
단기 선교의 유용론
조귀삼(한세대 교수, 세계로 선교연구원 원장)
단기선교란 짧은 기간 자신의 신앙에 따라서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지역의 문화와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상황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선교 여행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들 에서는 방학 기간을 맞이하여 “단기선교”를 떠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단기선교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선교의 참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필자는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거쳐서 단기선교의 유용론과 보완론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단기선교의 유용론의 첫 번째 사항은 선교에의 비젼을 들 수 있겠다. 선교는 비젼의 산물이다. “비젼이 없는 민족이 망하듯이 비전이 없는 젊은이의 삶은 의미가 없다.” 젊은이에게 비젼을 심어주는 것은 자신의 환경을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줌을 통해서 그들의 의식이 성숙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혹은 교수님 등으로부터 받은 선교의 비전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고자 체험하는 단기 선교는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이어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경험이 된다..
두 번째는 타문화에의 경험이다. 우리 한국인 속에는 단일문화의 깊은 의식이 존재한다. 즉 타문화에 대해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세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21세기의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것이 있으면, 다른 민족의 것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고를 갖지 못할 때 점점 배타주의적 사고를 통해서 평생을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된 사고를 가지고 살게 되어진다.. 결국 타문화의 경험들을 통해서 자신의 문화적 벽을 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단기선교이다..
세 번째는 고난의 경험이다. 특히 한국의 가족계획 운동은 자녀를 적게 갖는 운동을 가져왔다. 이와 같은 핵가족화는 왕자병과 공주병 같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것들을 뒤늦게 교정하기 위하여 극기훈련 같은 것들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극기훈련도 단기 선교 속에 나타난 고난의 훈련만큼 중요한 경험이 될 수는 없다. 즉 평소에 먹던 밥 대신에 토스트 하나로 아침을 때워야 하고,, 평소에 사용하던 언어를 접는 것으로 말미암아 오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의 고통, 생애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지체험 이야말로 참으로 고난의 체험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고난이란 훈련은 마치 평생의 삶을 보장해 주는 보험과 같아서 사람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지름길과도 같은 것이다.
네 번째는 팀워크의 훈련이다.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것밖에 모른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형제와 형제간에, 급우와 급우 간에,, 부모님과 자신 간의 관계들을 상처 받게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팀윅의 훈련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이해하고 채워 주는 훈련이 된다. 사랑의 삽겹 줄의 유용성을 체험하게 된다. 팀워크를 통해서 지도력의 배양은 물론 어떤 조직들 속에서도 적응하는 훈련이 되며, 의견이 상충되어 충돌이 생기게 될 때에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다섯 번째는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란 곧 선교이다”라고 요하네스 부라우는 말했다. 젊은 청년들이 진리의 복음을 들고 하나님 앞에 순종의 경배를 통해서 세계 속에 자신을 드리는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이야말로 목사님의 선교신학 사상을 이루는 영적 군대가 행진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다. 정통한 선교잡지에 의하면 장기선교 헌신자의 대부분이 단기 선교를 경험한 사람들로 집계되었다. 결국 이 시대의 교회는 단기선교의 전략을 통해서 장기 선교사의 헌신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자! 이제 떠나보자.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름의 음성 앞에 우리를 드려보자. 짐을 꾸리고, 비행기 표를 들고, 화합의 찬송을 부르면서, 문화가 다르고 정치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그곳을 향해 우리의 행진을 시작하자. 보라! 거기에는 우리의 미래의 세계가 있다. 그 땅을 미리 밟아 보자.
2002년 11월 “교회연합신문 기고”
'선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생(相生)과 선교 (0) | 2020.03.19 |
---|---|
단기 선교의 보완론 (0) | 2020.03.19 |
karao 족의 장례문화 (0) | 2020.03.19 |
새해, 새 대통령, 새 선교 (0) | 2020.03.19 |
시제의 추모 예배 변환 제언 (0) | 202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