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와 선교

2020. 3. 19. 10:58선교칼럼

국기와 선교

조귀삼(한세대 교수, 세계로 선교연구원 원장)

   요즈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난을 당한 것이 미국의 국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가장 발전한 사업이 미국의 국기를 제조하는 회사라는 말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텔레비젼의 화면을 쳐다보면 매일 밤 뉴스 시간에 미국의 국기가 난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선교에 있어서도 국기와 십자가는 항상 같은 길을 갔었던 시대가 있었다. 라토렛이 말한 위대한 선교의 세기인 19세기는 또한 서구 유럽의 열강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아세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그리고 중동을 향해서 달려갔던 시기 였다. 이러한 확장 속에서 정치적 세력인 외교관, 경제적 추구를 우선시하는 상인, 그리고 문화 진보주의적 입장이 곧 선교라고 생각했던 선교사들이 방금 언급했던 지역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나갔다.

   선교학자 허버트 케인은 말하기를 지리적으로는 십자가가 국기의 뒤를 따랐다고 말했다. 이는 데니쉬-할레 선교회의 첫 개신교 선교사는 당시의 덴마크 식민지가 있던 인도 동부 해안의 트랜쿠바르로 갔다. 이후 19세기에 영국의 선교사들은 영국의 국기(Union Jack)를 따라서 인도와 아프리카로 갔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가장 광범위하게 성조기를 따라서 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 연대순으로 보면 국기가 십자가를 따라서 가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오세아니아에서 훌륭하게 정착하였는데, 이것이 영국과 프랑스가 그 지역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시작하기 오래전에 일이었다. 중앙 아프리카의 광대한 오지를 탐험하고 거기에 상업과 기독교의 길을 연 것은 식민지 개척자가 아니라 선교사들이었다. 사실상 아랍인들에 의해서 행해졌던 노예무역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유럽 열강을 아프리카로 끓어 들였던 것은 바로 선교사들이었다..

   중세시대에 십자군이 가졌던 깃발을 생각해 본다. 십자군의 깃발은 참으로 힘 있게 이교도들의 땅을 정복해 나갔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두 번째 대면하게 된 사건이며 이는 1095년과 1272년 사이의 일곱차례의 원정에서 비롯된다. 교황 우르반 II세는 1095년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는 비잔틴 황제인 알렉시우스(Alexius)의 서방세계의 요청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때 비쟌틴은 모슬렘으로부터 수없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성지 회복을 위하여 전쟁을 결심한 후 교황이 외쳤다. “이것은 거룩한 사업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십자군에 참여한 자는 모든 죄가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설교하였다. 군중들은 흥분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신다!”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 성지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이 남긴 영향은 너무나 커서 어쩌면 오늘까지 이슬람 세계와의 격리이다. 십자군 원정대의 극악성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한 것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십자군 사건이 잊혀 갔지만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처참한 과거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결코 선교의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처참한 전쟁들은 오늘 까지 상처가 남겨져서 문명의 충돌론이라는 새로운 용어와 함께 기독교 세계를 대표한 미국의 국기가 이슬람의 땅에서 찢기고,, 태워져서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수난을 당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십자가는 구원의 복음이지 다른 땅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깃발도 들려주지 않은 채로 제자들을 통해서 지중해 연안의 땅들을 복음화시켜 나갔다. 결국 복음과 국기를 분리하는 것이 복음이 복음이 되게 하는 것이다.

 

200211교회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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