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6. 14:33ㆍ선교칼럼
신의주 신학교
조귀삼(세계로 선교연구원)
북한이 열려지기를 기다리는 마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아마도 가정 먼저인 마음들은 아무래도 실향민 들일 것이다. 자의에 의해서 헤어진 것도 아닌데 벌써 50여 년을 생사조차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인간의 창조성과 기본권을 무시한 제도의 결함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기업일 것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확장을 도모하는 기업들에서는 벌써 군침이 돌 것이다. 우리민족 속에는 야무지고 영리하여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여타 나라의 국민성보다는 기업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들 이외에 필자의 마음은 그곳에 신학교를 세우기를 기대해 본다. 따라서 필자는 오늘의 제목을 “신의주 신학교”라고 정해 보았다. 이러한 마음의 근거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복음화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명령은 창세기 1:28에 나타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땅에 복음은 편만 하게 증거 되어야 한다. 모든 땅에 충만하게 번성해야할 복음의 씨앗이 북한에서는 지난 50년 동안에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사실 분단되기 이전의 북한 교회는 매우 힘이 있는 교회였다. 그리고 1900년대 초에 있었던 년에 “평양 대각성”운동은 지금도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설교된다.. 이제는 마른 뼈처럼 된 그곳 땅일지라도 새 생명의 능력이 다시 불붙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둘째는 복음의 능력만이 북한의 인간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인간의 어떤 제도나 경제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삶 자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항 가운데에서 복음의 능력만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삶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셋째는 신학교의 설립은 선교전략에 있어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신학의 중요성은 사역자로서의 소양을 기르는 교육과 함께 자신의 주변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 선교와 현대선교 속에서 신학교육 기관은 효율적인 사역의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단들이 신학교를 선교지에 세우므로 사역의 극대화를 시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신학교 설립에 따른 제언을 덧 부치고자 한다. 신학교는 범교단적인 선교 신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즉 교단주의가 팽배하면 다양한 면에서 분열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신의주를 복음화하기 위한 선교단체 및 교단들로 구성된 협의회를 통하여 적절한 통제, 유지, 발전의 기구가 구성될 수 있기를 제언한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좋은 호기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선교사 숫자가 일만 오천명이 넘어서 다양한 사역을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민족의 한 줄기인 그곳을 다시는 복음이 없는 암 흑지가 되지 않도록 멋있는 선교전략을 가져야 하겠다.
2002년 10월 “교회와 연합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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