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메카

2020. 3. 26. 14:59선교칼럼

죽어서도 메카

조귀삼(한세대 선교학 교수)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따라서 성경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의 정한 이치라고 말했다. 죽음이 싫은 중국의 황제는 백성들에게 불로초를 구하도록 명령했지만 결국 무덤만 남기고 세상을 고별하였다. 필자는 오늘 인간의 죽음과 장례예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도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는 힌두교와 불교의 장례식은 대부분 화장을 한다. 즉 그들이 항상 마음에 세긴 갠지스 강줄기 옆에서 생의 마지막 육신을 태우면서 윤회를 통해 새로운 환생을 바란다. 불교의 윤회란 밀린다의 왕문경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태어난 자는 이 세상에서 죽고, 이 세상에서 죽는 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며, 저 세상에서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죽고, 저저 세상에서 태어난 자는 다시 딴 세상에서 태어난다”라고 하면서 윤회를 기리며 장작더미 위에서 생을 소멸시킨다. 
   생과 사에 있어서 순결과 불결의 구분점이 강한 조로아스터교의 장례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신을 깨끗이 싰는 다음에 산위의 높이에 세워둔 큰 벽의 둘레의 고요의 탑(tower of Silence)에 올려놓아 독수리들이 먹게 한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씩 모아서 다 크마(Dakhma)의 중앙 우물에 넣어서 원소들의 작용에 의해서 가루가 되어서 소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왜 그럴까?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태울 경우 물과 공기의 오염을 가져오며, 땅에 매장을 할 경우에는 땅과 물이 오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슬림의 장례식은 다음과 같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하루 만에 장례를 지낸다.  먼저 사자(死者)의 몸을 깨끗이 싰어서 새마포에 싸매고 하관식과 함께 모스크로 향한다. 모스크의 이맘 앞에서 알라신에게 기도문을 낭독하고 평소에 사자가 쌓았던 선행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가족들의 증언도 청취한다. 기도를 마친 시신은 운구자에 의해서 매장지로 가게 된다. 이때 운구자는 운구의 선행을 통해서 죄의 용서에 따른 보상이 된다고 믿는다. 특이한 것은 매장지에는 여인들은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매장은 3~4m의 땅을 파고 시신만 매장하고 관은 계속 사용하게 된다. 이후 3~4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유골만 추려서 비석과 함께 가족묘에 안장된다. 이때에 머리는 메카 쪽을 향하도록 안장한다. 결국 죽어서도 메카를 향하는 그들의 종교성은 진리의 본체를 모르고 평생을 달려온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하는 부활에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모든 종교들 속에는 고린도 전서의 바울이 말한 부활은 없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같이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은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의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믿는 자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

2003년 10월 “교회와 연합 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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